조선의 모자, 갓이 전통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며 세계에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21세기에 갓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새로고침’ 해보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돋보이는 시대, 세계는 지금 한국 전통 모자 ‘갓’에 열광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한국 복식 문화 중 모자에 집중한 전시가 처음 열렸다. 스토니브룩에 자리한 찰스 B. 왕 센터에서 개최한 전시 <조선 : 모자의 나라>는 조선 시대에 유행한 모자 130여 점을 소개했으며,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위크 <수묵의 독백> 전에서는 무형문화재 박창영 갓일 보유자와 박형박 갓일 이수자가 광택이 나는 실로 만든 갓을 출품해 이목을 끌었다. 갓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서울에서만 갓을 주제로 한 2개의 전시가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공평도시 유적전시관에서는 <운종가 입전 : 조선의 갓을 팔다> 전시를 준비 중이며, 코리아나미술관은 <時時刻갓> 전시를 진행 중이다.
새로운 한류 열풍의 중심에 선 갓
세계는 왜 갓을 주목했을까. 그 시작은 지난해 1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한국형 좀비 드라마 <킹덤>이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된 후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한국인은 드라마를 보며 줄거리와 영상미를 눈여겨본 반면, 외국인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한국 전통 복식에 반한 것이다. 특히 등장인물이 쓰고 나온 모자는 신분과 상황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 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발음이 ‘갓(God)’과 비슷한 부분도 재미로 작용해 ‘오 마이 갓(Oh My Gat)’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갓의 인기는 온라인에서 두드러졌다. 미국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는 ‘한국 전통 모자’나 ‘한국 드라마 <킹덤> 모자’라는 키워드로 갓을 거래한다. 갓을 구매한 한 고객은 “한국 파티에서 한복을 입고 갓을 썼는데, 내 머리에는 조금 작았다”며 솔직한 리뷰를 남기기도 했다. 미국 SF 소설가 존 호너 제이콥스는 트위터에 드라마 장면을 올리고 “<킹덤>에 등장하는 다양한 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모자를 설명해줄 한국 역사학자가 필요하다”는 글을 남겼다. 이후에도 그는 <킹덤> 모자에 관한 게시물을 연달아 10여 개 업로드하며 관심을 표했다.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한 조선 시대 모자
드라마 <킹덤>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우리 모자는 국내 사극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조선 시대의 모자는 수백 가지가 넘고, 갓은 이 중 일부일 뿐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정효진 학예연구사는 “엄밀히 말해 갓은 ‘삿갓 립(笠)’ 자로 표기하는 종류를 의미하며, 크게 초립·백립·주립·흑립·전립·사립 등 으로 구분한다”고 설명한다. 즉 양반이 일반적으로 외출할 때나 집에 방문한 손님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주로 쓰던 말총 또는 대나무로 만든 검은 갓은 ‘흑립’이라 부르고, 상을 당했을 때 쓰는 흰색 갓은 ‘백립’이라고 한다. 가는 풀이나 대오리를 엮어 만드는 ‘초립’은 관례를 치른 후 흑립을 쓰기 전까지 쓰던 모자로, 계층의 구분 없이 사용되었으나 신분에 따라 재료의 질이 달랐다. ‘사립’은 흔히 말하는 삿갓이며, ‘전립’은 화살이 뚫지 못할 정도로 단단해 무관이 주로 착용했다. 그 외에는 신분이나 의례에 따라 격식을 갖출 때 쓰던 관모와 문무백관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사모로 분류하면 이해하기 쉽다.
갓이 역사에 처음 남은 것은 <삼국유사>로, 신라 원성왕 때 ‘갓을 썼다(着素笠)’는 기록이 있다. 이후 고려 말 공민왕이 갓을 관모로 제정하면서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조선 초에 패랭이와 초립 형태를 거쳐 중기에 지금의 갓 모습을 갖추었다. 조선 시대 양반의 머리 위를 지켜온 갓은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자 유일한 패션 아이템이었다. 시대에 따라 갓의 모양새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모자 부분인 ‘대우’는 후기로 갈수록 가늘면서 높게 솟아올랐고, 차양인 ‘양태’는 쓰는 사람의 어깨를 덮을 정도로 커져 17세기 효종 때는 문을 드나들 때 방해가 될 정도로 큰 갓이 유행했다. 19세기 초 순조 대에 이르러 갓의 크기는 점차 작아졌고, 고종 때 의관 개혁을 단행해 양태가 좁은 소형 갓이 되었다.
갓의 이유 있는 변신
갓의 인기는 생활에도 파고들었다. 갓 모양으로 배지 등 액세서리를 제작해 판매하기도 하고, 갓을 응용한 모자를 패션쇼에서 선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뉴욕 패션위크에서 최지원 디자이너의 패션쇼 무대에 등장한 갓은 세련된 현대적 복식을 더욱 멋스럽게 완성했다. 갓끈을 리본처럼 묶거나 긴 띠를 사방으로 늘어뜨린 모자는 시선을 집중시켰다. 국내에서 한복과 갓을 친근한 소재로 여기게 하는 디자이너의 활동도 활발하다. 박상준 ‘희노애락’ 한복 디자이너는 평소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으며 생활에서 한복과 갓의 매력을 증명한다. 2015년 서울 패션위크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자신이 만든 무채색 생활한복에 흑립을 쓰고, 빨간 보스턴백을 매치해 파파라치들로부터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여전히 트렌디한 생활한복을 짓고, 입는다. 갓에 대한 관심도 많다. “남자 한복에서 마무리는 갓이라고 생각해요. 5년 전 그날은 우리나라의 제일 큰 패션 잔치이기에 예를 갖추기 위해 갓을 쓴 것이었어요. 다르게 생각하면 갓은 망사 모자와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바람이 있다면 우리 갓을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것이라고 여겼던 우리 갓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운 좋게도 한 사극 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덕분에 그 가치를 깨달았다. 갓의 붐은 단순한 유행 그 이상이다. 가장 한국적인 우리 전통문화의 가능성을 현대에, 세계에 입증하는 것이다.
박상준
‘희노애락’ 한복 디자이너
“지금 갓이 유행하면서 우리 전통 복장도 자연스레 알려지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해요. 국내에서 한복은 생활한복으로 변화하며 입지를 다졌지만, 한복과 함께하던 장신구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이 기회에 갓이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도록 다른 소재로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옛 서울 골목길에서 갓을 추억하다! <운종가 입전 : 조선의 갓을 팔다>전
조선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는 서울 골목길과 건물터가 그 시대를 추억한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공평동 도시환경정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옛 유적을 발견해 보존하고자 조성한 박물관이다. 실내로 들어서니 투명한 바닥 아래 보이는 집터와 골목길의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하다. 지금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들어선 자리는 조선의 상권을 쥐락펴락한 시전행랑이 있던 상점가인 ‘운종가’의 북쪽지역이다. 당시 사람과 재물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는 운종가에 조선 시대 양반의 필수품인 갓을 판매하는 ‘입전’이 자리한 것은 당연했다. 이에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이 거리에서 갓을 팔던 상점을 주목한 <운종가 입전 : 조선의 갓을 팔다>전을 9월 27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는 조선 시대 운종가와 입전을 주목하고, 갓을 만드는 재료를 비롯해 제작 과정, 시대별로 변화하는 갓의 모습을 고루 다루어 갓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전시실 중앙에는 눈비를 피하고자 쓰던 삿갓과 고위 관리가 쓰던 모자로, 모자 꼭대기에 옥으로 만든 해오라기 장식을 단 옥로립과 갓을 보관하는 갓집 등을 전시해 눈길을 끈다. 특히 갓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5분 남짓한 영상은 갓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깊은 정성이 담겨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길 추천한다. 전시 후반부에는 조선 시대 갓의 변천사를 인포그래픽으로 도식화해 살피는 재미도 있다.
정효진
서울역사박물관 도시유적전시과 학예연구사
“우리에게 갓은 익숙해도 갓을 판매하는 입전은 낯섭니다. 입전은 흑립전·백립전·사립전 등으로 크게 구분하는데요, 한 입전에서 한 종류의 갓만 취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조선 시대 도시 유적을 보존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당시의 예법과 풍습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빛깔로 제작하던 조선의 갓을 만나보세요. 사전 예약 관람제로 무료로 운영하니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에서 예약을 부탁드립니다.”
※ 전시 일정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니 시설 재개관 등 이용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하세요.
조선 시대 갓의 변천사
시대에 따라 갓도 유행을 탔다. 그 시절에 많은 이가 썼던 갓의 모습을 살펴보자.
시기를 대표할 뿐 같은 시대에도 다양한 갓의 형태가 공존했다.
성종(1469~1494년)
대우 꼭대기가 둥글어 패랭이 모양과 유사하다.
연산군(1494~1506년)
대우 꼭대기가 뾰족하고 높이가 낮은 모양이다.
선조(1567~1608년)
대우가 높고, 양태가 좁아졌다.
광해군(1608~1623년)
양태가 넓어지고, 대우가 아주 낮아졌다.
인조(1623~1649년)
대우가 높아져 크기가 커졌다.
영·정조(1724~1800년)
양태가 비교적 넓고, 갓끈을 가슴 밑으로 길게 늘어뜨려 그 멋이 한층 더해졌다.
순조(1800~1834년 말)
양태가 매우 넓어져 직경이 70~80cm 정도였다.
대한제국 말~20세기
양태도 좁고, 대우도 낮다.
글 이내경 사진 한상무 일러스트 한성원 사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