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게, 더 부드럽게
세대에 따라 즐기는 음식은 변한다. 1960년대생인 우리는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대개 짜장면이었다. 졸업 또는 입학 시즌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물론 치킨(그때는 그저 통닭이라고 불렀던)은 언감생심이었다. 아버지의 엄청난 호의(?)를 받아야 먹을 수 있었다. 그것도 중산층 이상의 음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방마다 이런 특별한 음식은 큰 차이가 없었을 텐데, 서울은 불고기가 종종 등장한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시절, 그야말로 어쩌다 아버지가 한턱내는 날에는 불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 88 서울 올림픽을 치르고 국민 살림이 나아지면 서 불고기보다 더 비싼 소갈비를 먹는 계층도 있었지만. 불고기는 서울내기에게 가장 각별한 음식이었다. 우선 시내에 나가야 먹을 수 있었다. 유명한 가게들은 주로 종로와 을지로, 명동 같은 시내에 포진해 있었다. 가운데 가 불쑥 솟아나고 구멍이 숭숭 뚫린 불판에 양념한 불고기를 척척 얹어서 구워 먹었다. 이 불판은 국물받이가 있어서 거기에 밥을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때는 모르긴 몰라도 지금보다 더 달았다. 원래 귀중품이던 설탕이 막 양산되면서 가격이 많이 떨어진 까닭인 것 같다. 그 달콤하고 진한 국물에 비빈 밥은 지금도 다시 맛보고 싶은 ‘레어템’이다. 그 맛을 못 잊는 서울 시민이 얼마나 많았으면 ‘옛날 서울식’을 표방하는 불고기 가게가 10여년 전부터 생겨났겠는가. 그 가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랬다. “햐, 이거 딱 옛날 맛이네.” 여담이지만, 사람들은 음식도 옛날 것을 참 좋아한다. 옛날 짜장면, 옛날 칼국수, 옛날 단팥빵….
선조들의 잔칫상 단골 음식
여기 그림 한 장이 있다. 조선 후기 화가 성협이 그린 ‘야연(野宴)’이다. 들 야(野) 자에 잔치 연(宴) 자로, 들(집 밖)에서 잔치를 벌이는(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을 그렸다. ‘연’은 ‘연회석 완비’ 할 때의 그 연 자다. 그림에는 불판에 올린 고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숯불이 이글거리고 양념 그릇도 보인다. 막 나뭇가지를 잘라 만든 투박한 젓가락이 그림의 무대가 야외임을 말해준다. 등장인물은 저마다 복장이 다른데, 양반들이다. 양반의 의복에 탕건, 두건, 복건 등을 썼다. 권세 있고 돈 있는 양반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걸 알려준다. 소고기는 조선 시대에 아무나 먹을 수 없었다. 조선 시대의 민중 창작물에는 ‘이밥에 고깃국’이 먹고 싶은 음식의 상징으로 많이 나온다. 그만큼 먹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국도 아니고 구운 고기는 더더욱. 조선은 도우 금지령(소 잡으면 처벌)을 내리고, 별도의 관청도 운영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틈에서는 고기를 구웠다. 물론 조선 후기에는 이런 강제 조항도 유명무실해졌다. 성협의 그림은 그런 와중에 탄생한 것이다.
“음력 10월, 전골냄비에 소고기를 비롯한 여러 재료를 담고 육수를 부어 끓인 음식을 둘러앉아 먹던 풍속. 예전에는 숯불을 지핀 화로를 가운데에 놓고 번철을 올려 소고기에 기름,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로 조미해 굽거나 볶아서 둘러앉아 먹었는데, 이를 난로회(煖爐會)라 하였다.”
우리 불고기의 원류는 ‘설야멱’이라는 전통 음식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강하다. 설야멱은 원래 중국 송나라 태조가 ‘눈 내리는 밤(雪夜)’에 신하 조보를 ‘찾아가(覓)’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특이하게도 설야멱은 고기를 구운 후 몇 번이고 찬물에 담갔다가 다시 굽기를 반복하는 조리법으로 한국에 전해온다. 아마도 질긴 소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속까지 잘 익도록 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음식에 대한 기록이 비로소 활발해지고, 반가와 궁중 음식에 대한 기록도 생겨난다. 그중에 너비아니가 있다. 소고기를 너붓너붓하게 썰어서 간장을 발라 굽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것을 현대 불고기의 원류로 보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한국의 불고기는 맥적, 설야멱, 너비아니 등의 여러 조상(?)들을 거치면서 사회 변화에 의해 생겨난 것이 틀림없다.
소불고기의 대중화 시작
지금 불고기와 그 시절 불고기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우선 고기가 다르다. 옛날 불고기는 부위가 좋아야 했다. 요즘처럼 마블링 좋은 고기가 아니니 질겼을 것이다. 양념에 재운다 해도 등심이나 안심은 되어야 먹을 만했을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전동식 슬라이서(육절기)가 보급되면서 구워 먹기 힘든 부위도 가능해졌다. 질긴 부위도 얇게 썰어 양념에 재우면 술술 넘어갔다. 불고기가 1970년대 들어 크게 상업화되고, 가게가 늘어난 것은 이런 기술적 변화와 관련이 깊다.
그렇게 불고기 발전사가 진행되면서 또 한 번의 결정적인 정치사회적 외풍이 불었다. 바로 소고기 수입이다. 수입 소고기는 월등하게 싼 가격으로 ‘누구나’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게 했다. 대중식당에 점심 식사로 1인분씩 파는 뚝배기 불고기가 나왔다. 그 전까지 불고기는 1인분 주문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고깃집에서 1인분은 팔지 않는 문화와 같다. 그 귀한 불고기가, 그것도 찌개백반 가격에, 그것도 1인분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급기야는 급식에 가장 흔하게 나오는 기본 음식이 되었다.
불고기는 오랫동안 어른들의 음식이었고, 가족 음식이었다. 그런 문화의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청년들이 불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독자적 구매 능력으로, 제 또래 모임에 먹는 음식으로 불고기를 선택했다. 그 배경에는 값싼 수입 소고기가 크게 한몫했다.
불고기는 그 모습과 방식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유전자에 공급되는 유력한 음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불고기는 특히나 전형적으로 기쁘고 즐거운 자리의 음식이다. 불고기의 그런 의미는 오래도록 남아 서 후대로 전해질 게 틀림없다.
서울에서 즐기는 서울 불고기
‘육수’부터 ‘바싹’까지
취향 따라 불고기 #TMI
역전회관
#서울미래유산
4대째 이어오는 역전회관의 불고기는 강한 불에 재빠르게 구워 육즙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불 맛이 살아 있는 고기 맛이 인기 비결이다. 용산 역전회관에서 처음 개발한 바싹불고기는 얇게 저민 고기를 양념에 며칠간 숙성시킨 후 석쇠를 이용해 넓게 펴가면서 빠르게 구워낸다. 고기를 다져 만든 떡갈비와 달리 육즙이 풍성한 데다 놋그릇에 담아내 빨리 식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불고기는 깻잎에 싸 먹는 것을 추천한다.
산더미불고기
#가성비파불고기
쟁반 가득 탑처럼 쌓여 나오는 이곳의 불고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만큼 만족감을 준다. 외국인들이 손꼽는 K푸드의 대명사 불고기를 재해석한 이곳의 인기 메뉴는 상호명대로 당면, 버섯, 생불고기, 파채를 차례대로 층층이 쌓아 올린 산더미불고기. 육수를 채운 불고기 판이 달궈지면 파채부터 익혀 육수의 깊은 맛을 더하고, 볼록한 부분에 생불고기를 올려 익힌 후 이 집의 비법인 간장 소스에 살짝 찍어 먹는다. 넉넉한 양으로 가성비가 뛰어나 유명한 이곳의 불고기는 다 먹고 나서 달큰한 육수에 당면을 익혀 먹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좋다.
보건옥
#을지로노포
이곳이야말로 뉴트로가 아닌 레트로를 경험할 수 있는 서울식 육수불고기 맛집이다. 방산시장 인근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보건옥은 정육점으로 시작했기에 뛰어난 고기 품질로 유명하다. 신선한 국내산 한우 뒷다리 살만 사용하는데, 주문과 동시에 바로 고기를 얇게 저며 숙성 없이 가볍게 양념한 뒤 손님상에 올린다. 고깃집답게 설렁탕 육수로 익히는 불고기는 담백하며, 푹 익힌 쪽파김치와도 잘 어울린다.
소들녘
#불고기먹고된장먹고
까다로운 입맛으로 정평 난 서초동에서도 품질과 맛으로 인정받고 있는 소들녘. 아버지의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최고의 재료만 고집하는 철학 덕분에 이미 갈비 명가로 소문난 곳이다. 북적이는 점심시간의 일등 공신은 이곳만의 별미인 된장불고기. 주문 즉시 양념한 생불고기와 된장찌개를 별도로 내오는데, 불고기를 먼저 구워 먹다가 절반쯤 남았을 때 된장찌개를 부어 두번째 요리를 즐기는 것. 그야말로 고기도 먹고 찌개도 먹고,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글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한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