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서울의 역사를 함께 써내려온 ‘오래가게’들.
새롭게 선정된 용산·동작·강북구의 오래가게들을 소개한다.
용산구
표구 장인의 민화 박물관, 대성표구사 개업 1971
한국적 멋이 듬뿍 묻어나는 그림 액자와 병풍, 족자들로 가득 찬 이태원의 오래된 표구점이다. 선반 위에는 사장님이 수십 년간 모아온 민화, 풍속도, 초상화가 가득하고 책장에는 수많은 도록이 겹겹이 쌓여 있어 마치 하나의 작은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이곳에는 100년이 넘은 작품들도 있다. 가게 안쪽에 놓인 닳고 닳은 작업 도구들은 이 가게가 쌓아온 오랜 세월을 말없이 보여준다. 사장님이 죽어서도 관에 함께 가지고 가야겠다고 할 만큼 깊은 애착을 가진 오래된 도구들이다. 50년 가까이 이곳을 운영해온 이명운 사장이 딸과 함께 여전히 가게를 지키고 있고, 아들 이상은 사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표구 작업을 도맡고 있다. 1970~1980년대에는 미군덕분에 무척 바빴다. 지금도 찾아오는 손님의 반 이상이 한국 문화에 관심 많은 외국인들이다. 주로 주재원이나 대사관 관계자들이 액자, 병풍 등을 주문하거나 근처를 지나던 관광객들이 맘에 드는 그림을 한두 장씩 사가곤 한다.
주소 용산구 이태원로 238
영업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7시
문의 02-794-3681
엄마 같은 사장님이 반겨주는 가게, 합덕수퍼 개업 1971
구석구석 젊은 감성의 가게들이 들어찬 이태원의 골목에서 1970년대 옛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구멍가게다. 김효태·장묘순 사장 부부는 이곳이 온통 비탈길뿐인 시골 골목이던 시절부터 50년 가까이 매일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열어왔다. 젊어서는 종일 아이를 업고 가게를 보며 힘들게 삼 남매를 길러냈다. 그동안 동네가 너무 많이 변한 터라 이제 예전 단골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이태원에 놀러 오는 젊은 손님들이 떠난 옛 이웃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편의점이 익숙한 젊은 손님들에게는 이곳이 신기하고, 장묘순 사장님의 눈에는 찾아오는 젊은 손님들이 마냥예쁘기만 하다. 엄마 같은 사장님의 따뜻한 잔소리에 손님들은 한참을 웃다 나간다. 발이 아픈 것을 꾹 참고 예쁜 새 구두를 신고 나온 손님들을 위해 슈퍼 입구에는 늘 상처용 밴드를 마련해두고 있다.
주소 용산구 이태원로42길 20
영업시간 아침부터 새벽까지
문의 02-793-8720
동작구
외유내강 사장님의 오랜 삶터, 설화철물 개업 1980
녹슬고 빛바랜 간판에서 세월의 정취가 짙게 느껴지는 작고 오래된 철물점이다. 각종 물건이 어지럽게 가득 쌓여 있는 것 같지만, 박화자 사장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필요한 물건을 쏙쏙 찾아낸다. 그러고는 낡은 나무 돈통 위에 계산기 대신 주판을 얹고 능숙한 주산으로 물건값을 계산해준다. 박화자 사장은 젊은 시절에는 남동생들과 함께 이곳을 운영했고, 남편이 퇴직한 후에는 부부가 함께 일을 했다. 지금은 아픈 남편 대신 혼자서 철물점의 모든 일을 도맡고 있다. 그는 1톤 트럭에 손수 물건을 싣고 배달을 나가기도 한다. 이 골목을 오랫동안 지켜온 터줏대감답게 가게 앞을 나서면 길 가던 이웃들이 쉴 새 없이 인사를 건넨다. 일이 고될 법도 하지만 다정한 사장님은 웃음을 잃지 않고 모든 이웃과 친근하게 수다를 나눈다
주소 동작구 사당로16길 7
영업시간 오전 6시 30분~오후 7시
문의 02-582-1971
그 시절 분위기를 함께 마시는 다방, 터방내 개업 1983
붉은 벽돌과 아치형 입구, 잔잔한 조명등과 낡은 소파까지 198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중앙대학교 앞추억의 다방이다. 터방내 커피의 가장 특별한 매력은 진공식 커피 추출 기구 ‘사이펀’으로 커피를 내린다는 점이다. 알코올램프로 가열하면 물이 거꾸로 올라가며 커피 가루와 만나는 독특한 방식이다. 메뉴판에는 나 폴레옹이 즐겨 마셨다는 푸른 불꽃의 ‘카페 로얄’, 피곤할 때 마시면 활력을 얻는다는 ‘커피 펀치’, 아이스크림이 들었지만 사계절 내내 인기 있는 ‘파르페’와 ‘커피플롯트’ 등 요즘 카페에서 보기 힘든 신기한 메뉴들이 가득하다. 2008년 이후 가격을 올린 적이 없어 모든 메뉴를 3000원 안팎으로 맛볼 수 있다. 신입생이 “여기가 우리 엄마 단골집이었다더라”라며 들어오기도 하고, 대학생 시절부터 드나들던 오래된 단골이 교수가돼 제자들을 데려오기도 한다. 물론 이곳의 레트로 분위기를 즐기러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
주소 동작구 흑석로 101-7
영업시간 오전 11시~밤 12시
문의 02-813-4434
강북구
대를 이은 ‘사진 사랑’, 서울스튜디오 개업 1973
1970년대부터 동네 주민들의 세월과 역사를 차곡차곡 담아온 사진관이다. 46년 전 ‘서울사진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어 현재는 아버지와 아들, 2대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취미도 사진”이라 말하는 아버지 나복균 사장은 긴 세월 동안 오직 사진에 몰두해왔다. 그 남다른 ‘사진 사랑’이 대를 이어 아들 나승보 사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사진관의 장비와 내부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사진에 대한 이들 부자의 열정만은 변함이 없다. 서울스튜디오에는 정겨운 아날로그 감성도 남아 있다. 이곳에서 백일사진을 찍으면 옛날 방식대로 사진 위에 ‘百日記念’이란 글자를 붓글씨로 새겨준다. 오래전 나복균 사장에게 백일사진을 찍었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녀를 데려오기도 하고, 나승보 사장에게 결혼식 사진을 찍었던 부부가 새로 늘어난 식구들과 가족사진을 찍으러 오기도 한다.
주소 강북구 삼양로 245
영업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8시(주말 상이)
문의 02-980-6970
골목의 정겨운 터줏대감, 황해이발관 개업 1970
삼양동 골목에서 50년간 주민들과 살갑게 부대껴온 오래된 이발관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은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의 베테랑 이발사 이우태 사장은 투박한 세면대를 가리키며 “멀리서 물을 길어다 쓰던 예전에 비하면 정말 편해졌다”며 허허 웃는다. 손님이 들어오자 그는 오랜친구를 맞이하듯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건네며 자연스레 이발을 시작한다. 30년간 이곳에서 머리를 깎았다는 손님은 어떤 설명도 필요없다는 듯 50년 내공의 이발사에게 편안히 머리를 맡긴다. 정 많은 사장님 덕분에 이발관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이웃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오랜 단골이 길 가다 잠시 들러 사장님과 차 한잔 나누고 가기도 한다.
주소 강북구 솔매로 35-1
영업시간 오전 7시~오후 9시(수요일 제외)
문의 010-3189-9212
글 전하영 사진 정원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