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직접 하던’ 시대를 지나 게임을 ‘보고 즐기는’ e스포츠 시대가 뜨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e스포츠 종주국, 대한민국 그리고 서울이 있다.
게임이 아니다, e스포츠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 초 발표한 2018 e스포츠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e스포츠 시장 매출 규모는 9억6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8.3% 증가했다. 한국 e스포츠 시장도 973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4.2%의 성장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e스포츠의 이토록 무서운 성장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1997년 미국 게임 제작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출시한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를 탄생시킨 시초로 꼽힌다. 1998년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게이머 신주영 선수가 블리자드가 주최한 스타크래프트 경기에서 우승하며 대중에게 ‘게임하는 것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후 이기석, 임요환 등 1세대 프로게이머가 등장했고, 시대를 거듭하며 게임도 다양화해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LoL))’,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등에 수많은 프로 선수가 활동 중이다.
e스포츠란 각종 온라인 게임을 통해 사람 혹은 팀 간에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여느 스포츠처럼 세계 곳곳에서 매년 정규 리그가 개최된다. e스포츠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오락’이라고 불리며 기성세대의 홀대를 받곤 했다. 어른들은 PC방에 가는 학생들을 보며 “그렇게 게임만 하면 공부는 언제 할래?”라는 식의 핀잔을 놓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외 정규 리그는 물론 e스포츠 전용 경기장까지 우후죽순 생겨날 뿐만 아니라 산업 규모 또한 천문학적으로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e스포츠를 야구, 농구와 같은 스포츠이자 전자·통신·방송 기술이 결합된 융합형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보는 시각이 늘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서울에도 다양한 e스포츠 경기장, 전시 및 체험관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e스포츠를 견인하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에스플렉스센터’는 국내 e스포츠와 게임 산업의 중심으로 손꼽힌다.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이 설립·운영하는 복합 건물로, 한국e스포츠협회와 CJ ENM 게임채널 OGN을 비롯해 교통방송 등 다양한 IT·미디어 관련 기업이 입주해 있다. 과거 용산에 있던 e스포츠 스타디움 또한 에스플렉스센터 내에 더욱 거대한 규모로 옮겨왔다. ‘서울 OGN e스타디움’이라는 새 이름이 붙은 이곳은 다양한 e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전용 경기장으로서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을 반기고 있다.
서울 OGN e스타디움(이하 e스타디움)은 기가 아레나(주경기장), O스퀘어(보조 경기장), 서바이벌 아레나 등으로 조성돼 있다. 특히 총 700여 석 규모를 자랑하는 기가 아레나는 팀과 팀이 경쟁하는 유형의 e스포츠 경기가 주로 열리는 곳이다. 경기장에는 메인 스크린을 비롯해 총 3개의 스크린이 설치돼 있고, 중앙 무대 좌우 양쪽에 선수들이 경기를 진행하는 부스가 마련돼 있어 선수들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오는 10월에는 이곳에서 서울시 주최의 e스포츠 국제 대회인 ‘서울컵 OSM’도 열릴 예정이다.
e스포츠는 컴퓨터와 인터넷 등의 인프라가 조성돼 있어야만 원활한 경기가 가능하기에, e스포츠 경기장은 전자·통신 기술이 집약된 곳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또한 경기 모습이나 중계 장면을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대형 모니터로 송출해야 하므로 뛰어난 방송 기술 역시 필요하다. 기가 아레나를 비롯한 e스타디움은 게임 전문 방송국 OGN의 방송 기술과 노하우가 접목된 곳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e스포츠 경기 관람을 위한 최적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e스포츠의 종주국으로 손꼽히는 만큼, 다양한 국가에서 e스타디움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고, e스포츠 경기장을 조성하려는 많은 지자체에서도 이곳을 필수 코스처럼 들르곤 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에스플렉스센터에는 e스포츠의 역사와 그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e스포츠 명예의 전당 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e스포츠가 어떤 과정을 통해 태동하고 발전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전문가들의 투표로 뽑힌 전설의 프로게이머들의 모습도 관람할 수 있다. 또 ‘스페셜포스’라는 슈팅 게임을 직접 해볼 수 있는 VR 체험관, 화면 속 선수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히어로 포토 존, 이용객들의 경기 장면을 대형 스크린으로 다 같이 볼 수 있는 챌린저스 아레나 등 각종 체험 시설도 조성돼 있다. 평소 e스포츠에 관심이 있다면 이곳에서 즐거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e스포츠, 생생하게 즐기려면
e스포츠를 100배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직접 보는 것, 일명 ‘직관’이다. 이에 최근 e스포츠 중 가장 인기 있는 ‘롤’ 경기를 직관해봤다. 종로에 위치한 ‘롤파크’는 미국 게임 제작사 라이엇게임즈가 운영하는 e스포츠 복합 문화 공간이다. 롤파크에는 직접 e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PC방과 400석 규모의 e스포츠 경기장, 선수들을 꼭 닮은 모형과 다양한 전시물, 휴게 공간 등이 조성돼 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을 직관할 수 있는 전용 경기장이다 보니 국내 팬뿐만 아니라 e스포츠를 좋아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다. 이번에 직관한 경기는 롤 챔피언스 코리아 서머로, 이 리그의 우승 팀은 일명 ‘롤드컵’이라 불리는 2019 롤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할 수 있게 된다.
경기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휴게 공간에는 10~20대로 보이는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e스포츠가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가 되고 있다는 기사 속 문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이들은 롤파크 내 전시물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어떤 팬들은 경기장 밖에 마련된 종이와 매직으로 자신만의 응원 카드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껏 상기된 그들의 표정을 보니, 경기가 시작되기 전의 두근거림을 즐기는 듯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사람들이 경기장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원형 구조의 경기장 중앙부에는 3면의 대형 화면이 있어 모든 관람객이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경기 시작을 바로 앞둔 시간, 400석 좌석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관람객들이 빼곡히 자리했다. 관객들의 성별은 남녀가 거의 반반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 성별 불문의 e스포츠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마치 야구장처럼 관람객들이 한목소리로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했다. 경기 양상에 따라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하거나 탄식을 하기도 하고, 중계석의 유쾌한 해설에 다 같이 웃는 것은 물론 승리의 순간엔 두 손을 들고 환호하는 등 현장 열기가 뜨거웠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선수들의 격한 움직임이나 체력 싸움이 전제되는 데 비해 e스포츠는 선수들이 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모르는 이들이 보면 ‘저게 스포츠라고?’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직관을 하고 응원에 참여하다 보면 여타의 스포츠 경기만큼 뜨겁고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직관으로 e스포츠가 국내외 많은 이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인터넷과 통신 기술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PC방이라는 공간을 만들었고 e스포츠 또한 발전시켰다. 한국 사람들의 게임 실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이라 해외 e스포츠 선수들이 서울로 전지훈련을 온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라니,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이여, 진정한 e스포츠를 즐겨보고 싶다면 이곳, 서울로 오라.
SNS로 보는 서울 속 다양한 e스포츠 경기장
e스포츠의 상징, 에스플렉스센터 자세히 보기
서울 OGN e스타디움
※ e스포츠 스타디움 투어
e스포츠 명예의 전당 전시관
글 이선사진 정원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