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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 서울 냉면

서울 사람, 서울 냉면>
2019.07

여행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미식 여행

서울 사람, 서울 냉면

음성·문자 지원

 

전 세계의 맛집이 모여드는 서울에서 찾아낸 진짜 서울의 맛을 만나보자.
음식 이야기꾼 박찬일이 선택한 첫 번째 서울 음식은 냉면이다.




설렁탕, 불고기, 갈비탕, 떡국, 해장국. 서울의 대표 음식이다. 보통 냉면은 들어가지 않는다. 평양 등 이북의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평안도를 지칭하는 관서 지방이 냉면의 본고장이다. 특히 평양은 도시의 여러 슬로건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냉면의 도시’라는 말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우리 대통령을 대접한 음식도 냉면이었다. 심지어 회담 장소에 제면기를 설치할 수 없어 차량으로 긴급 수송에 나서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냉면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차고 넘친다. 그렇지만 나는 서울 대표 음식에 냉면을 넣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냉면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는 데 평안도가 큰 몫을 하긴 했지만 냉면 그 자체는 이미 서울에서도 오랫동안 도시의 전통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흐르면서 냉면에 서울의 지분도 어느 정도 발생했다는 뜻이다. 서울에 개업한 평양식 냉면의 핏줄은 이북이다. 그러나 그 냉면을 소비하고 전통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손님은 꼭 이북 실향민만은 아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민이 모두 그 주인공이었다. 나 역시 북한과는 전혀 혈통적 연계가 없다. 하지만 50년 동안 냉면을 ‘서울에서’ 먹어왔다. 시중의 유명한 냉면집에서 백발의 손님을 보고 으레 실향민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다수가 서울 토박이와 서울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온 이주민(또는 그 후손)이다. 말하자면, 서울은 지금 냉면 열기가 가득 찬 메트로 시티다 .

냉면은 서울에서 이미 1800년대에 팔리고 있었다는 여러 근거가 있다. 1800년에 즉위한 조선의 왕 순조. 그가 밤에 민가에서 사들인 냉면을 먹는 이야기가 이유원의 <임하일기>라는 문집에 나온다. 고종은 또 어떤가. 소고기 고명을 올리고 배를 넣은 시원한 동치미냉면을 좋아했다는데, 이 냉면은 1903년 지금의 동아일보 자리에 문을 열었던 대형 요릿집 ‘명월관’에서도 팔렸다. 임금이 먹은 냉면, 즉 ‘고종냉면’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러니 서울의 냉면 역사를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1800년 순조 시기에 민가에서 냉면을 사들였다면, 그 이전부터 시중에서 냉면이 사랑받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만큼 서울의 냉면사(史)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냉면의 인기는 대단했다. 여름에는 지금처럼 외식 아이템으로 일등 가는 음식이었다. 배달도 많았다. 지체 높은 양반이나 아녀자들은 시중의 밥집을 출입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그들이 주로 배달을 시켰다. 냉면을 시켜 먹고 대금을 내지 않아 싸움이 일어난 뉴스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오염된 얼음 때문에 식중독이 생기거나 이상한 배합제를 써서 주인이 구속되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다 냉면이 인기가 좋아서 생긴 일이었다. 냉면은 단순한 메밀국수가 아니라 서울 시민이 적어도 200년 이상 사랑해 온 인기 절정의 음식이었다. 평양과 서울의 냉면이 결정적으로 차이를 보인 것은, 서울은 냉면을 밤참으로 먹었고 설탕을 치기도 했다는 점이었다.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서울사람 입맛에 따라 냉면도 변화해갔다.

냉면의 도시, 서울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에 평양의 많은 냉면집이 서울에 내려와서 장사를 했다. 기록으로는 관철동에 ‘부벽루’,단성사 쪽에 ‘백양루’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에 50여 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이 모두 평양에서 온 것은 아닐 수도 있다. 1800년 이전에도 이미 냉면집이 있던 서울이었으니까. 태평양전쟁이 격심해진 1943년 이후 서울의 냉면집은 물자 부족으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해방이 된 후 1946년에 ‘서북관’이라는 평양 음식점 겸 냉면집이 개업을 하는데, 이곳이 바로 ‘우래옥’의 전신이다. 한국전쟁 후 우래옥으로 개명해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우래옥은 평안도 출신들의 사랑방으로 유명하다. 주인이 평양 출신인 데다가, 가게를 운영하는 총지배인(김지억옹) 역시 평양 출신으로 구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홀을 지키며 실향민들을 응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해방 시기부터 1950년대 사이에 생긴 평안도 출신의 냉면집, 서울에서 일제강점기부터 장사하던 냉면집들(앞에 언급한 부벽루, 백양루 등)은 현재 찾아볼 길이 없다. 대중음식점을 민간 생활사의 일부로 보아 기록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고, 요식업을 오래 대를 물려 지속하려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없었던 까닭이다.

냉면은 이제 서울의 음식이다. 대한민국에서 냉면집이 제일 많으며, 계절을 불문하고 냉면을 즐기는 이들의 ‘냉면 이야기’가 끊임없이 유통되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박찬일

박찬일

부침을 거듭한 끝에 현재 남아 있는 냉면집은 대부분 19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생겨난 곳들이다. 당시로서는 신흥가게였지만 이젠 노포 반열에 든다. 4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의정부 ‘평양면옥’의 자제들이 세운 ‘을지면옥’과 ‘필동면옥’, 장충동의 ‘평양면옥’이 장안의 다크호스가 되었다. 서울에서 냉면 좀 먹는다는 식도락가들이 몇 안 되는 냉면집들을 열심히 다녔고, 실향민들도 많이 드나들면서 가게에 뼈대가 잡히고 분위기가 고양되었다.

서울 시내의 미식가들이 이 새로운 집들을 다니면서 널리 회자되었고, 나중에 그 정보가 소위 블로거들에게 전달되면서 서울 냉면은 신화를 이루게 되었다. ‘선주후면’이라는 평안도식 식사법(제육이나 편육, 만두 등을 소주 안주로 먹고 냉면으로 입가심을 하는 방식)이 서울내기들에게 퍼져 나가고, 냉면집의 계열을 따지거나 스타일에 대한 갑론을박도 벌어졌다. 혈통은 평양이되 이미 서울의 냉면으로 자리를 잡아간 역사가 이루어진 셈이다.

서울 냉면에서 절대 빠뜨리면 안 되는 것이 함흥냉면이다.흔히 함흥엔 냉면이 없었고, ‘오장동함흥냉면’ 창업주에 의해 ‘냉면’이란 이름을 걸게 되었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원래는 그냥 국수였다. 그리 차갑게 먹는 음식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음식은 서울이라는 인문적, 자연적 조건에 의해 냉면이 되었다. 여름에 이 맵고 화끈한 비빔국수를 먹다 보면 땀이 나고 시원해진다. 시원한 육수는 아니지만, 냉면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새터민들의 말에 의하면 함경도에서 지금은 물냉면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팔리는 함흥냉면은 독자성을 지닌 서울 냉면으로서 함흥과 연결된다. 과거 함흥에서 먹던, 해물무침을 얹은 비빔국수의 전통 위에 가오리나 홍어 등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고명으로 올려 서울식 냉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세월과 사람의 호응이 중첩되면 그것이 전통이 된다. ‘민속’ 전통이란 예외 없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우리가 함흥냉면을 이북의 유전자를 지닌 서울 냉면으로서 사랑해 마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이리라.

냉면은 이제 서울의 음식이다. 세계에서 냉면이 가장 많이 팔리고(평양과 통계를 비교할 자료는 없다), 냉면집 숫자도 제일 많으며, 냉면에 대한 책도 매년 몇 권씩 출간되고, 언론 생산 기사와 SNS에서 유통되는 개인 포스팅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양의 ‘냉면 이야기’가 유통되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서울의 저널리스트들은 냉면의 원류를 찾아 중국 옌볜과 일본 모리오카, 오사카를 이어가며 냉면 디아스포라의 지도를 만들고 있다. ‘면스플레인’(냉면 먹는 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행위)과 ‘냉면꼰대’(그 면스플레인을 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적 야유)라는 말까지 유통되는 것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냉면이 이미 시민들의 일상에 접촉선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지금 서울은 다시 냉면의 도시다.

박찬일

박찬일
1965년 서울생. 어려서부터 무시로 서울시내 냉면집을 다녔다. 그 경험을 모아 냉면 노포 등을 취재한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까지 쓰게 됐다. 사계절 내내 냉면을 사 먹거나 최소한 만들어 먹는다. 술을 한잔 한 후에 냉면을 먹는 선주후면의 오랜 민족 전통을 사랑한다.





서울 맛 지도

취향대로 골라 먹는 재미

냉면 어디까지 먹어봤니?

냉면지도

평양냉면

① 우래옥 소 한 마리 육수 - 중구 창경궁로 62-29
② 평양면옥 맑고 투명한 육수 - 중구 장충단로 207
③ 을지면옥 실향민이 뽑은 평냉집 - 중구 충무로14길 2-1
④ 을밀대 살얼음 육수 - 마포구 숭문길 24
⑤ 필동면옥 고춧가루 팍팍 - 중구 서애로 26
⑥ 평래옥 얼갈이배추 고명과 닭 육수 - 중구 마른내로 21-1
⑦ 봉피양 갈비와 찰떡궁합 - 송파구 양재대로 71길 1-4
⑧ 동무밥상 옥류관 출신의 손맛 - 마포구 양화진길 10
⑨ 서북면옥 투박하지만 진한 맛 - 광진구 자양로 199-1
⑩ 정인면옥 메밀 순면의 구수함 - 영등포구 국회대로 76길 10



별미냉면

① 서초면옥 비빔냉면 맛집 - 서초구 반포대로 28길 46
② 동아냉면 입맛 당기는 매운 단맛 - 용산구 우사단로 5
③ 해주냉면 매운 냉면으로 서울 1등 - 송파구 백제고분로7길 8-16
④ 깃대봉냉면 매운 정도 선택 가능 - 종로구 지봉로12길 3
⑤ 골목냉면 해물 육수에 칼칼한 양념장 물냉 - 성동구 독서당로 295-7
⑥ 황재코다리냉면 큼직한 코다리 고명 - 영등포구 영등포로 86
⑦ 설악산칡냉면 얼음 육수에 진한 칡면 - 양천구 목동중앙남로3가길 59
⑧ 유천냉면 감칠맛 가득한 칡냉면 - 송파구 강동대로3길 22
⑨ 부산밀면 밀가루 면으로 맛보는 냉면 - 송파구 가락로43
⑩ 평택고여사집냉면 평냉과 함냉 사이 - 서대문구 연희로 81-9



함흥냉면

① 흥남집 쫄깃한 면발에 간재미회 맛 - 중구 마른내로 114
② 함흥곰보냉면 입맛 당기는 빨간 맛 - 종로구 창경궁로 109 세운스퀘어
③ 아소정 함흥물냉면 맛집 - 마포구 백범로25길 9
④ 함흥에겨울냉면 신선한 회무침 고명 - 중구 장충동2가 187-14
⑤ 강남면옥 입소문난 물냉면 - 송파구 올림픽로8길 21
⑥ 청송본관 함흥냉면 전문점 <맛있는 녀석들>의 선택 - 서대문구 연희맛로 6
⑦ 명동함흥면옥 외국 관광객 입맛까지 OK - 중구 명동 10길 35-19
⑧ 우학면옥 특제 양념장의 홍어회 - 강서구 공항대로 261
⑨ 오복함흥냉면 <골목식당> 맛집 - 용산구 한강대로 84길 4





#전통강자

남포면옥

남포면옥

평양 남포 출신의 아버지가 시작해 아들로 이어져 내려온 서울의 노포. 매일 담가 언제나 같은 맛을 내는 동치미가 한우 육수와 만나 쨍하면서도 깊은 평양냉면을 완성한다. 처음 문을 열었던 때의 한옥 틀을 그대로 살린 멋스러운 실내 분위기에 푸짐한 평양냉면과 따뜻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수육한 접시가 일품이다.
주소 중구 을지로3길 24





#신세대평냉

능라도

능라도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뜬 한국 평양냉면집이 바로 능라도다. 평양 능라도 출신인 아버지의 유품 중에 냉면 레시피가 있어 이를 바탕으로 능라도를 창업했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식당 안쪽의 방앗간에서 직접 메밀 면을 뽑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삶은 달걀 대신 지단을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주소 강남구 언주로 107길 7





#원조함냉

오장동함흥냉면

오장동함흥냉면

고구마나 메밀로 국수를 만들고 그것에 홍어나 가자미를 양념해 매콤하게 올린 함흥냉면. 오장동함흥냉면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빨간 양념을 올린 냉면이 나오면 설탕, 식초, 겨자를 넣고 맨 마지막에 참기름을 살짝 뿌려 먹어보자. 그야말로 입안에서 매콤 달콤하게 톡 쏘는 맛의 잔치가 열린다
주소 중구 마른내로 108

박찬일취재 김시웅사진 장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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