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식 작가의 작품은 금속판을 겹겹이 쌓아 높낮이를 달리한 입체적 초상이다.
얼굴 상을 보고 운명과 재수(財數)를 판단하는 관상학에서는 “사람의 얼굴에 삼라만상이 모두 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초상화를 즐겨 그리는 화가가 많다. 목이 긴 여자 얼굴에 집착한 모딜리아니, 평생 자화상을 그린 프리다 칼로, 서민적 초상화를 즐겨 그린 렘브란트…. 팝과 클래식,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젊은 작가 정운식도 얼굴을 주목한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잖아요. 역사 속 인물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요. 저는 저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기억할 때 가장 먼저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얼굴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정운식 작가의 작품은 금속판을 겹겹이 쌓아 높낮이를 달리한 입체적 초상이다. 처음 볼 때는 앤디 워홀의 유명인 실크 스크린 초상화를 입체로 전환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레이저 커팅한 알루미늄 조각을 도색해 볼트와 너트로 이어 붙이는 그의 작업은 단순해 보이지만 지난하다. 먼저 작업할 얼굴을 사진에 담거나 스케치한다. 이것을 CAD(캐드) 도면으로 만들어 수십 개의 조각으로 분해한다. 조각 안에는 표정도 있고, 그림자도 있고, 주름살도 있다. 레이저 커팅한 각각의 조각에 색을 입혀 말린 후 조각을 하나씩 볼트와 너트를 이용해 겹치듯 연결한다. 때론 촘촘하게, 때론 간격을 벌려 6중 7중으로 겹치다 보면 얼굴에 공간감과 깊이가 더해진다. 철 구조물과 나사로 건물을 짓듯 얼굴을 짓는 것이다.“처음에는 지금처럼 조각이 많지 않았어요. 가령 눈을 만들때 흰자위와 눈동자만 만들었죠. 그런데 이제는 눈동자만 조금씩 다른 색깔로 2~3조각 만들어요. 이렇게 해야 깊이 있는 눈동자가 완성되더라고요. 재료도 아크릴, 한지 등으로 점차 다양해지고 있어요. 끊임없이 진화하는 거죠.”
공간감으로 더욱 깊어지는 정운식의 ‘얼굴’
Matilda purple 430x90x570mm aluminum·graffiti paint, 2016
Gogh ver.3 330×80×530mm aluminum·graffiti paint·oil paint, 2016
Picasso 43×20×77cm steel·oil pastel·oil paint· ureatane paint, 2015
My muse 2000×1400×70mm aluminum·urethane· acrylic·oil·gouache·quick-dry paint·brass powder, 2016
For you 760×760×1780mm aluminum·graffiti paint, 2016
‘광화문에서…’ 410×110×620mm aluminum·graffiti paint, 2016
서울은 예술적 영감이 가득한 곳
미켈란젤로, 피카소, 로베르 콩바스, 앤디 워홀, 오드리 헵번, 영화 <레옹>의 마틸다, 엘비스 프레 슬리 등 그가 작업하는 인물은 미술을 선택하고 작가로 살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예술가와 평소 좋아하는 유명인이다. 서른 초반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올드한 취향 탓에 좋아하는 인물도 거의 1950~1960년대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60세 이상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관람객은 오드리 헵번 작품을 보면서 함께 영화를 보던 첫사랑을 떠올리고, 비틀스를 보면서 장발 시절을 그리는 등 자신만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다. 정운식 작가는 요즘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바로 세종대왕과 광화문이다.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작업하면서 생활한 지 3년 정도 됐네요. 경남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날 바로 내려갈 뻔했어요.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 무섭더라고요.”
그래도 그럭저럭 견디다 보니 이제는 서울 사람이다 됐다. 오히려 역동적이고 복합적이어서 예술적 영감을 얻기 좋다고. ‘내가 살고 있는 곳, 우리만의 것’을 작업해보고 싶어 아이템을 찾다가 광화문을 떠올렸고, 세종대왕으로 연결됐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작업실 근처 어린이대공원의 놀이 기구와 롯데타워를 만들 계획이다. 학부에서는 미술 교육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야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정운식 작가는 늦게 시작했기에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고민하고 작업했다고 한다. 5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차세대 유망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저력은 바로 그 부지런함과 몰두였다. 현대 팝아트의 거장인 제프 쿤스, 앤디 워홀을 떠올리게 하며 호기심과 예술적 감성을 자극한다는 평가를 받는 정운식 작가. 오는 6월 3일부터 10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조각페스타 2017’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글 이정은 사진홍하얀사진정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