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에 담긴 맛과 정감에 그저 마음이 따스해진다.
쫄깃쫄깃한 면발과 후후 불며 마시는 뜨끈한 국물이면 충분하다. 칼국수가 더 특별한 이유는 삶과 추억이라는 양념으로 한층 진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찬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니 뜨끈하게 속을 덥혀줄 칼국수 생각에 군침이 돈다. 이맘때쯤이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칼국숫집에 구수한 국물 맛이 온기처럼 퍼진다. 꾹꾹 잘 치댄 반죽이 말랑해지면 얇게 편 후 돌돌 말아 곱게 썰어 밀가루 탈탈 털어낸 뽀얀 면발을 끓는 육수에 넣고 우르르 끓여 먹는 맛. 문득문득 생각날 때 언제든 찾아가 먹을 수 있는 일상의 음식, 이것이 바로 칼국수의 매력이다. 손맛으로 대변되는 칼국수는 정신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솔 푸드인 것이다. 오래된 문헌에는 칼국수가 아닌 밀가루 국수라고 해서 ‘밀국수’로 칭하고 있다. 밀은 원래 우리나라에서 귀한 식재료였지만, 1969년 혼·분식 장려 정책에 따라 미국에서 건너온 값싼 밀가루를 사용하면서 칼국수와 국수, 짜장면 등이 대중화됐다. 집집마다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고, 그 시기에 들어선 칼국숫집은 가장 인기 있는 외식업체가 되기도 했다. 명동에 칼국수의 상징인 ‘명동교자(명동칼국수)’가 개업한 것도 그 당시다. 정부 정책과 맞물려 정치인이 줄을 이었고, 평일에는 직장인, 주말에는 가족의 외식 장소로 명성이 높아졌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일본 관광객이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았다.
육수, 재료, 동네에 따른 맛의 차별화
칼국수를 끓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육수로, 멸치·해물·닭·사골·소고기 등 육수를 내는 재료에 따라 맛이 다르다. 또 밀 재배가 가능한 이남 지역은 메밀에 밀가루를 섞거나 밀가루 면을 치대 칼로 썬 칼국수가 발달했다. 칼국수는 고장마다 지역색을 띠는데, 농촌 지역에서는 닭 육수에 애호박과 감자 등을 넣어 끓였고, 산간 지방에서는 멸치 국물, 해안 지방에서는 바지락 국물로 칼국수를 끓였다. 깨끗하게 손질한 닭을 대파와 감자 등과 함께 푹 끓여 고추 양념장에 찍어 먹는 ‘닭한마리칼국수’도 있다. 초창기에는 닭 육수나 소고기 육수를 주로 사용했으나, 1990년에 들어 바지락칼국수와 해물칼국수가 유행하며 전국으로 퍼졌다. 칼국수는 들어가는 재료와 국물 베이스, 식당 위치 등에 따라 맛과 이름이 달라진다. 버섯칼국수, 해물칼국수, 호박칼국수, 팥칼국수, 만두칼국수는 재료에 따라 붙은 이름이다. 동네 이름을 딴 칼국숫집도 많다. 명동을 비롯해 성북동, 혜화동, 연희동, 등촌동 등이 대표적이다.
명동교자
깔끔한 닭 육수, 최고급 생면, 천일염, 암퇘지 생고기 등 품질 좋은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맛의 비결이다. 특히 마늘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가 알싸한 맛의 겉절이는 별미다. 면은 반죽 후 2∼3시간의 숙성을 거쳐 오래 끓여도 퍼지지 않고 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칼국수를 다 먹은 뒤 국물에 말아 먹는 차조밥, 곱게 다진 돼지 살코기와 호부추·조선부추에 참기름을 섞어 만든 만두도 인기 있다.
주소 중구 명동10길 29 문의 02-776-5348
종로할머니칼국수
멸치와 무, 파뿌리, 다시마 등을 우린 구수한 국물에 물과 밀가루, 소금을 넣어 치대 잘 숙성시킨 반죽을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칼로 직접 썰어 넣어 끓여낸다. 이곳의 면발은 칼로 썰어 굵기가 제각각이지만 씹는 재미와 쫄깃함은 일품이다. 감자와 파, 채 썬 호박, 김가루가 들어간 손칼국수에 아삭한 겉절이를 곁들여 먹는 맛이 별미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섞은 칼제비도 유명하다.주소 종로구 돈화문로11다길 14-2 문의 02-744-9548
연희동칼국수
12시간 푹 우려낸 진한 사골 국물에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면발이 조화를 이룬다. 파, 지단, 당근채가 고명의 전부지만 깊은 맛과 속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푸근한 맛을 자랑한다. 우윳빛 나는 사골 국물은 고소하고 진하다.
남은 사골 국물에 공깃밥을 말아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백김치는 달달하면서 짜지 않아 상큼하고, 겉절이는 약간 매콤해 칼국수와 궁합이 좋다. 주차 공간이 넉넉해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주소 서대문구 연희맛로 37 문의 02-333-3955
글 양인실 사진 문덕관, 홍하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