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대학 문화를 대표하는 거리는 신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도시재생을 시작으로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신촌의 부활이 시작됐다.
사진작가 문덕관 씨는 요즘도 신촌에 가면 록 카페 ‘우드스탁’에 들른다. 청년 시절 아지트였던 곳이라 감회가 남다르다고. 1960~1970년대 록 음악을 LP판으로 틀었던 우드스탁은 1990년대 신촌 문화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했다.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이 대학가를 휩쓸던 1980년대, 신촌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다. 민주화 이후 X세대가 등장하는 1990년대는 록 음악을 즐기며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던 곳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롤링스톤즈, 우드스탁 등의 록 카페가 성업했다. 1980~90년대 신촌은 음악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들국화가 도원결의했고, 신촌블루스가 태어났다. 음악뿐 아니라 연극 전용 소극장도 꽤 많았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파는 작은 서점도 여러 곳 있었다. 당시 신촌은 연극, 젊음과 지성, 학생 운동을 상징했고, 이대 앞길은 우리나라 로드 숍 붐을 일으키며 패션 문화 거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1969년 신촌로터리 전경, 독수리다방 내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인 경의선 신촌역,
최루탄 라면으로 유명한 훼드라와 5천명의 주민이 재개발 철거에서 살려낸 홍익문고
문화 평론가 정윤수 씨는 어느 주간지 칼럼에서 “신촌은 90 년대가 전성기였다. (중략) 그때 ‘대학 문화’가 형성되면서 신촌도 크게 부상했다. 당대를 주도하지는 못했지만 신촌 이 있어서 고집스러운 음악 문화가 형성되었고, 신촌블루스 와 진짜 록 카페가 존립할 수 있었다. (중략) 그러나 신촌은 1990년대 이후 혼잡하고 개성 없고 교통 체증만 극심한 거리로 전락했다”라고 썼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음악은 홍대·합정으로, 패션은 동대문으로 넘어갔어요. 신촌은 문 화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만 가득 차 상권의 특색을 잃었죠.”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신촌을 고스란히 체험한 신촌 토박 이 김봉수 씨는 “‘신촌스러움’이 사라진 신촌은 대학가라기 보다는 유흥가에 가깝다”고 한숨지었다. 그러나 그는 신촌 이 예전처럼 희망과 문화가 넘치는 젊음의 거리로 재탄생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연세대 정문에서 지하철 2호선 신촌 역까지 이어지는 연세로가 걷기 좋은 거리로 탈바꿈한 데다, 2013년 말 방영한 <응답하라 1994>의 배경 지역으로 새삼 주 목을 받으면서 근 10년 만에 활기를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복고 열풍에 힘입어 ‘독수리다방’도 부활했다. 1971년 음악다방으로 처음 오픈한 독수리다방은 1970~1980년대 대학생들의 아지트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휴대폰과 삐삐가 없던 시절에는 약속 변경 메모지가 벽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연락의 공간이기도 했다. 애칭 독다방은 청춘들의 만남·연애 장소로, 문학적 감상과 시대적 고민을 나누는 토론 공간으로 33년의 긴 세월을 버티다가 운영난으로 2005년 문을 닫았다. 그리고 8년 뒤인 2013년에 손자 손영득 씨가 재개장했다. “젊은 층의 소통 공간으로 상징성을 되살리고 싶다”는뜻에서였다.
독다방은 50원짜리 커피(개업 초기)만큼이나 공짜 빵이 유명했다. 원래 주인인 김정희 할머니는 “배고픈 학생들이 안쓰러워 매일 아침 찐빵을 쪄서 나눠줬는데, 나중엔 커피는 안 시키고 엽차와 빵으로만 배를 채우고 가는 단골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독수리다방처럼 청춘들의 주린 배와 허기진 민주화 염원을 채워주던 곳이 또 있었다. 최루탄 라면으로 유명한 운동권 학생들의 사랑방 ‘훼드라’다. 운동권 학생들은 값싼 콩나물 해장 라면과 막걸리를 시켜놓고 밤새워 시국을 토로하며, 목소리 높여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다. 지금은 돌아가신 조현숙 사장은 학생들이 감옥에 가면 만사 제쳐두고 공판을 방청하러 다녔다. 학생들이 밤에 몰래 들어와 밥 먹고 잠잘 수 있도록 영업이 끝나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본부로도 쓰였다. 현재 사장은 그 뜻을이어받아 예전 모습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다만 메뉴만 라면으로 바뀌었다. 최루탄 라면은 최루탄이 터졌을 때처럼 눈물 콧물 다 뺄 정도로 맵다는 의미다.
“신촌에는 신촌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 많지 않아요. 얼마전에 25년간 신촌을 지키던 ‘향 음악사’가 폐업했고 이제는독수리다방, 훼드라, 홍익문고, 형제갈비, 우드스탁, 창천교회 정도만 남았네요.”
김봉수 씨는 “역사의 장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며 “남은 공간만이라도 지속적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수많은 인파가 모였던 맥주축제와 물총총제. 연세로 일대가 마비가 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곳인지 궁금해요박지원(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도시 재생 중에서도 특히 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처음 접한 곳이 신촌이라 애정이 각별하죠. 과연 신촌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곳인지 늘 궁금해서 워킹 그룹 ‘신촌민회’와 함께 신촌의 도시 재생과 지속 가능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신촌을 만들 겁니다이태영(신촌민회 사무국장)
청년과 지역이 함께하는 신촌 만들기
연세대 정문 앞 지하보도에 개관한 창작놀이센터와 창업카페. 쓸모없던 공간의 활용이 돋보인다.
경인선 철길 아래 굴다리
창업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지원해 주는 '이화 스타트업 52번가'
서울에서 제일 멋진 컬처 밸리를 꿈꿔요김봉수(신촌 도시재생주민협의체 간사)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았으니 근 50년을 신촌 바닥에서 보냈네요. 현대백화점이 들어서기 전 신촌시장부터 지금은 없어진 쌍굴다리, 국수 공장, 신촌역 개통 등이 눈에 선합니다. 고향인 신촌이 점점 제 모습을 잃고 쇠락해가는 것을 보며 참 안타까웠어요. 그러던 중 도시 재생 지역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관이 주도하기보다는 주민이 앞장서서 주도해야겠다는 생각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신촌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마을 잡지도 만들고, 어르신들을 통해 옛날 사진도 모아서 사진첩도 냈지요. 모두 신촌의 뿌리를 찾고자 한 일이었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재생도 잘되지 않겠습니까? 신촌을 청년들의 창업 밸리로 만든다고 하는데, 적극 찬성입니다. 여기에 홍대, 이대, 연희동을 연결해 거대한 컬처 밸리를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대는 패션, 신촌은 창업, 홍대는 음악, 상수ㆍ합정은 예술, 연남ㆍ연희는 음식. 이렇게 지역을 특화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서울에서 제일 멋진 컬처 밸리가 되지 않을까요?
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 홍하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