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다. 짙은 녹음이 드리운 서울숲을 거닐어도 더위가 가시질 않는다.
갈증이 절정에 달할 무렵 마주친, 커다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시원스럽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장인 뚝도수원지의 시설물을 기반으로 만든 수도박물관의 입구를 알리는 조형물이 반갑기만 하다.
우리나라 수돗물 역사는 100년이 훌쩍 넘는다. 1908년 9월 1일부터 하루 1만2,500톤의 수돗물을 서울 시민 12만5,000명에게 공급한 것이 시초였다고 하니 당시 서울 인구가 27만 명 정도이던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보급률이었다. 이후 상수도 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해 한국전쟁 전에는 70%를 상회했지만, 전쟁 이후 기반 시설 파괴와 폭발적 인구 유입으로 시민은 급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현재 물 걱정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돗물은 보편화되었다.
박물관은 옛 송수 펌프실로 사용했다는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과 현대적으로 지은 전시관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수돗물 시설이 넓은 잔디밭 아래 숨어 있다. 바로 여과지와 정수지다. 한강에서 끌어온 물을 모래와 자갈을 깔아놓은 저수조를 통과시키며 정화하던 공정은 무엇보다 친환경적인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공급 취수가 어느 정도 깨끗해야 가능한 것이니 당시 한강의 수질이 좋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이렇게 여과지를 통과한 물은 정수지를 거쳐 수돗물이 되어 송수 펌프실에서 성동의 대현산 배수지로 보내 시민에게 공급했다. 비록 부촌과용산의 일본군 주둔지를 우선시했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박물관에는 수돗물을 맛볼 수 있는 여러 시설을 설치해놓았다. 그 가운데 일반 자동판매기처럼 생긴 기계는 동전을 넣지 않아도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시원한 아리수 페트병이 나온다. 아리수 한 병을 들고 박물관을 나서니 다시 뜨거운 공기가 훅 끼쳐 오는데, 손에 든 차가운 페트병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값비싼 외산 생수가 무의미해진다.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순간 시원한 수돗물이 이토록 달콤할 줄이야! 한강 발원지라는 강원도 태백의 검룡소 물맛이 이렇지 않을까. 잠깐 동안 그 먼 곳의 청명한 자연을 상상하며 다시금 한강 물로 만든 수돗물을 들이켰다.
주소 성동구 왕십리로 27
홈페이지 arisumuseum.seoul.go.kr
관람 시간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무, 3~10월(하절기) 평일 오전 10시~오후 8시, 토·일요일·공휴일
오전 10시~오후 7시, 11~2월(동절기) 평일 오전 10시~오후 7시, 토·일요일·공휴일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 예약 및 문의 02-3146-5921
이장희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사연이 있는 나무 이야기> 저자. 다양한 매체에 글과 그림을 싣고 있다.
글·일러스트 이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