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문화의 거리, 젊은이의 거리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닌 신사동 가로수길. 그러나 이곳을 생업의 터로 잡은 사람들에게 이 거리는 말 그대로 출근길이다. 오전 10시, 11시 가게 영업 시간에 맞추어 장사 준비로 분주한 가로수길 사람들. 이들에게 가로수길은 ‘삶의 거리’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신사동 주변 직장인들은 가로수길 골목골목, 일명 ‘세로수길’의 밥집으로 향한다. 주로 고급 식당이 자리한 가로수길과 달리 백반집, 분식집 등 지갑 얇은 직장인들의 속사정 잘 아는 식당이 많은 세로수길. 가로수길 옆 세로수길은 이심전심, ‘점심의 거리’다.
창(窓)이란 참으로 묘한 재주를 지녔다. 창은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마주 보게 하고 이야기하게 하고 또 듣게 한다. 볕 좋은 오후. 창가에 앉아 사람을 즐기고,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 창이 있는 가로수길은 ‘이야기의 거리’다.
누군가는 가로수길에서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이미 맺은 인연을 이어가며, 누군가는 떠난 인연을 기억한다. 계절도 마찬가지. 길 위로 노란빛을 뿌리는 은행나무는 가을과의 이별을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세상의 어제와 오늘, 내일이 존재하는 가로수길은 ‘시간의 거리’다.
여러 이름을 붙여본다 한들 가로수길과 패션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은 없다. 크고 작은 상점 앞 발길이 분주하고, 옷걸이 사이사이, 액세서리 사이사이 손길이 분주하며, 거리를 배경으로 화보를 촬영하는 셔터 소리가 분주하다. ‘옷 좀 입는다’ 하는 이들의 까다로운 손길이 닿는 가로수길은 역시 ‘패션 문화의 거리’다.
젊음이 있는 곳에 음악이 빠질 리 없다. 경쾌한 라이브 음악이 있고, 카페 안에는 분위기 있는 발라드·재즈 음악이 있으며, 도로에는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럽 음악이 있는 거리. 귓가마저 즐거운 가로수길은 ‘음악의 거리’다.
두 볼에 꽃잎을 얹은 젊은 남녀와 두 어깨에 고된 한 주를 걸친 직장인. 모두가 가로수길에 모여 이 밤의 끝을 불태운다. 저마다의 불빛으로, 그리고 낯빛으로 화려한 가로수길의 밤. 늦은 밤 가로수길은 ‘불빛의 거리’다.
글 이성미 사진 이서연(AZA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