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81m의 바위와 흙길이 조화를 이룬 곳, 삼성산. 다양한 조망과 전망을 자랑하는 삼성산은 가볍게 떠나는 여행길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대중교통과 접하기 쉬운 곳에 위치해 있고 지리적으로도 여러 곳에서 오를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여기에 더해 쌍둥이처럼 나란히 선 관악산과도 이어져 있어 연계 산행이나 종주를 노리는 등산객들에게도 사랑 받는다. 산행의 묘미는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예술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점. 그것만으로도 보람 있는 하루가 될 것이다.
초입부터 남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산
삼성산은 사실 관악산의 한 봉우리다. 그래서 대부분의 등산객은 두 산을 합쳐 종주한다. 하지만 삼성산과 달리 험악한 관악산까지 종주하려면 제법 힘이 들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기에는 아무래도 삼성산 쪽만 공략하는 것이 좋다. 삼성산에 오르는 등산객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안양유원지 에서 들머리를 잡는다. 안양유원지 안쪽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무 길로나 들어서면 곧바로 산행이 시작된다.
염불사로 향하는 등산로 아래쪽에 안양예술공원의 작품이 몇 점 있는데 그중에서도 미국 아콘치 스튜디오의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이 눈길을 끈다. 주차장과 야외 공연장 그리고 이를 잇는 산책로를 포함하는 복합 시설물인데 이곳을 이용해서 등산로 초입까지 갈 수도 있다. 다만 통풍이 안 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찜통 같은 더위를 각오해야 한다.
그 밖에도 정글짐을 축소해 놓은 듯한 <철제 파이프 큐브>(스위스 파브리스 지지 작품), 일본 작가 켄고 쿠마의 <종이뱀> 등 자연 속에 들어앉은 독특한 현대 조형물들이 다른 산행 초입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을 준다.
들머리 인근은 이처럼 독특한 매력이 있지만 등산로 초입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가파르고 다소 불편한 길이 이어진다. 염불사 인근까지는 자동차로 갈 수 있지만, 제대로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차는 버려두고 천천히 올라보자.
절이 많지만 절이 전부는 아닌 산
염불사는 연주암, 삼막사와 함께 삼성산의 3대 사찰로 꼽히는 곳이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날 때 좌선 중이던 능정대사의 법력에 탄복하여 절을 창건하도록 명했는데 이것이 염불사의 전신이라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퇴락했던 것을 1956년에 중수한 것으로 그 규모가 크지는 않다. 비천상 무늬가 새겨진 범종각과 수령 500년 된 거대한 아름드리 보리수나무(도지정 보호수 5-2) 정도가 볼거리. 하지만 염불사 뒤편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숨겨진 비경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칠성각과 높이 8m의 미륵불이 그것이다. 1947년 주지로 부임했던 스님이 낡고 퇴락한 전각을 안타까워하며 불사를 준비하던 중 꿈에 미륵보살이 나타나 점지해준 바에 따라 5년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 삼성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천천히 사찰을 둘러보면서 본격적인 삼성산 정복을 준비한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로 했다면 염불사에서 향할 곳은 오직 하나다. 바로 삼막사. 물론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고 국기봉으로 곧장 향할 수도 있지만 삼성산에 와서 삼막사를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정찬에서 메인 요리를 건너뛰는 것과 같다. 삼막사는 삼성산의 이름이 유래한 곳. 신라 문무왕 때 원효, 의상, 윤필 세 스님이 함께 작은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정진하면서 삼막사의 ‘전설’이 시작됐다. 전설을 만나는 길이 어렵지는 않다. 다만 예상보다 가파른 산세가 준비되지 않은 방문객들의 발목을 잡는 정도. 암석이 많고 군데군데 미끄러운 흙길이 있어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올랐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다. 어렵지 않은 등산로지만 등산화 정도는 꼭 준비하자.
염불사에서 1km 오르면 국기봉과 삼막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능선을 따라 삼성산을 왼쪽으로 돌면서 삼막사에 도착할 수 있다. 이 길은 적당한 내리막과 평평한 길로 되어 있어 숨이 턱 끝까지 찬 초보 등산객들에겐 환호성을 불러일으킨다. 삼막사를 찍고 삼성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코스가 다소 돌아가는 형태라 산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환영 받지 못한다. 제대로 산을 타고 싶다면 역시 국기봉 방향으로 코스를 잡는 게 좋다. 주의할 점은 표지판만 보고 나무 데크로 오르면 암벽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삼성산에 처음 오른 사람이라면 더 이상 길이 없는 돌 덩어리를 마주하고 다리가 풀릴지도 모른다. 요즘 말로 ‘멘붕’을 겪지 않으려면 암벽 코스 옆으로 난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 500m 정도 우회로를 따라 전진하면 477m 높이의 국기봉에 도달. 정상에는 이름처럼 국기가 꽂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삼막사의 풍경 또한 일품이다.
골라서 하산하는 재미가 있는 산
삼성산은 하산 코스도 다양한데 그 이유는 바로 관악산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너미고개를 넘어 학바위 능선을 타면 관악산 정상 연주대로 이어진다. 거리는 3km가 조금 넘는데 관악산 종주까지 각오하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들머리와 가까운 곳으로 하산길을 잡으려면 국기봉까지 올라왔던 길을 반대로 가다 천인암 능선 방향으로 빠지는 방법이 있다. 능선을 따라 부엉골로 내려오면 관악수목원 우회 등산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안양시의 풍경도 제법 괜찮다. 관악수목원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데 희한하게도 들어가는 것은 안 되고 등산로를 따라 내려온 경우에만 수목원을 통과해 나갈 수 있다. 차를 이용해 삼성산을 찾은 경우나 하산길에 안양예술공원에 들를 계획이라면 이 코스가 알맞다.
산을 넘는데 왔던 길로 되돌아올 수 없다는 등산객이라면 다시 국기봉부터 출발이다. 국기봉에서 조망을 마치고 얼굴바위를 지나 제2깔딱고개, 철쭉동산을 지나면 관악산 야외 식물원이 나타난다. 그대로 서울대학교 정문 방향으로 하산하는 게 일반적인 루트다.
산을 좀 더 즐기고 싶다면 국기봉에서 북쪽을 바라봤을 때 왼쪽 방향인 장군 능선을 타보도록 하자. 제법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등산로가 길게 이어진다. 장군봉에서는 다시흔들바위나 노고리 약수터, 호압사, 불영사 등을 목적지로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장군봉에서 호압사 쪽으로 향하다 갈림길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면 불영사다. 불영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적 제343호 한우물이다. 길이 22m, 너비 12m의 작은 연못인데, 다양한 유래가 전해진다. 이곳에 성이 있었는데 그 안에 연못을 두어 가물 때 비를 빌었다는 설, 임진왜란 때 이 부근에 진을 쳐 군대의 음료로 사용했다는 설, 조선 초 한양천도 후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물을 담아 두었다는 설 등이다. 한우물까지 보았다면 호암터널 방향으로 쉽게 하산할 수 있다.
삼성산은 그다지 높지 않고 작은 산이라는 점 때문에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경인교육대 경기캠퍼스에서 삼막사 계곡을 통해 삼막사로 곧장 오르는 코스도 있으며, 관악산과 연계해 관악산 - 삼성산 종주 코스로 다녀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또한 종교적인 이유로 삼성산을 찾는 등산객들도 많다. 서울의 남쪽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삼성산. 올여름, 산 타기에 도전해보겠다면 이곳부터 출발해보자. 상쾌한 산행이 시작될 것이다.
글 최대규 사진 나영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