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전통시장은 대체로 한국전쟁 후에 확장되어 알려져온 곳이 많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광장시장 등이 그런 오래된 시장에 속한다. 반면 서울에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며 자연스레 형성된 전통시장도 있다. 우리가 지금 만나볼 목동깨비시장이다.
시작은 도깨비시장으로부터
“1970년에 개장했어요. 등촌동 일대가 뒤늦게 개발된 신흥주택 지역인데, 시장의 필요성이 있었지요. 가게들이 하나둘씩 작게 시작해서 점차 골목으로 모여들며 이루어진 시장이 오늘에 이른 겁니다.”
상인회장의 말이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곡물상을 이어 받은 2세다. 시장에서 나서 시장에서 살아가는 젊은 상인이자, ‘찐’ 목동깨비시장 사람이다.
목동깨비시장은 목3동에 위치한다. 지하철 9호선 등촌역이 바로 앞에 있어 등촌시장이라고도 불린다.
목동깨비시장은 도깨비시장이란 이름에서 왔다. 즉 정식 시장은 아니었는데, 잠깐씩 반짝 판매를 하는 상인들이 모이면서 번듯한 시장을 이루었다. 그래서 시장 전용 건물이 없고, 차가 지나다니는 큰 폭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골목을 형성한다. 보기 드문 진짜 골목 시장인 셈이다. 시장 중심부에 들어선 높은 쇼핑 타운, 병원이 많이 입주해 있는 소규모 건물이 시장의 축선을 이룬다. 그 옆으로 실핏줄처럼 작은 골목이 이어지고, 여기에도 시장의 상권 영향력 아래 있는 가게들이 입주해 있다. 그래서 실제로는 200개 정도의 점포가 있는 중형 규모의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이어지던 무렵 시장 한쪽 골목에 저렴한 임대료를 겨냥해 식당과 술집이 들어섰는데, 그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맛집이 많은 시장으로 인기를 누린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맛집이 많은 시장이라 젊은이들이나 지역 사람들이 삼삼오오 찾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시장에 포진해 있는 다양한 맛집
목동깨비시장은 역사가 아주 길지 않은 시장인데, 나름 노포급의 맛집이 포진해 있다. ‘할범탕수육’은 그 대표 격 중 하나다. 탕수육은 원래 중국요릿집에서 먹는 고급 음식이던 시대가 오래 지속되었는데, 1980년대를 지나면서 식용유 가격 하락, 탕수육 조리 기술의 대중화로 탕수육만 저렴하게 파는 가게들이 전국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할범탕수육은 그런 배경에서 생겨나 현재도 서울의 다른 지역 시민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인기가 높은 곳이다. 맛있는데 가격도 파격적이니 좋을 수밖에.
‘매콤한 강떡순’도 그런 가게로, 닭강정과 닭똥집튀김을 맛있고 싸게 제공한다. 추어탕이 맛있는 ‘능이랑추어랑’, 오래되지 않았지만 맛있는 생선구이와 조림 및 알탕으로 시장 상인들에게 맛집으로 추앙받고 있는 ‘홍익시래기’도 일품이다.
훌륭한 품질의 물건들
시장이 ‘잘나가는지’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있다고 필자는 말한 적이 있다. 바로 생선 가게와 과일 가게다. 또 양곡 가게가 좋은지도 그런 지표에 들어간다. 놀랍게도 과일가게에서는 백화점에서도 아직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고급 과일인 장희 품종의 딸기를 팔고 있다. 이 품종은 아주 맛있지만 재배가 까다롭고, 과육이 쉽게 물러서 잘 유통되지 않는 특이종이다. 값도 매우 비싸다. 그런 과일이 넉넉히 놓여있다. 황금향 같은 고급 제주 밀감류 등도 마찬가지. 풍성하고 윤기가 흐르는 게 이 시장의 과일 가게들이다.
“원래 이 동네에는 공항(김포)에서 일하는 기장, 승무원, 기타 요원이 많이 살아요. 김포공항에서 일하는 분들이 빨리 출퇴근하기에 이 동네만큼 좋은 곳이 드물었죠. 그렇다 보니 소득수준이 높은 주민이 많아지고, 그 수요에 맞추기 위해 백화점급 물건의 질을 갖추고 있는 가게가 많아요.”
역시 그런 이유가 있었다. 생선 가게에 놓인 제철 대구는 싱싱했고, 고등어·삼치 같은 커다란 고급 어종들을 취급하고 있다.
골목형 시장의 중요성
양천구 일대에는 8개의 재래시장이 있는데, 이 시장들은 시의 지원 사업 대상이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규모와 활성도가 있다는 뜻이다. 전통시장이 전체적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이런 시장의 분투가 특히나 중요하다. 역사가 있는 대형시장도 의미가 있지만, 이런 골목 상권의 주민 밀착형 시장도 살아나야 한다. 시장의 생활화는 작은 골목형 시장이 살아날 때 가능하다. 목동깨비시장은 그렇게 살아 있다. 양곡점에 들러 나물 몇 가지, 기능성 혼합 잡곡을 사 들고 취재를 마쳤다. 돌아설 때 뿌듯한 마음이 든다면 그 시장은 좋은 시장이란 뜻이다. 다시 가고 싶은 시장이다.
정겨운 분위기, 먹음직스러운 음식 목동깨비시장 맛집
착한 가격에 배 터지는 구성 ‘할범탕수육’
1,000원 몇 장만 있으면 알찬 구성의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진정한 서민 식당. 할범 세트를 주문하면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먹던 맛의 떡볶이와 새콤한 소스가 일품인 탕수육, 속 재료의 맛이 살아 있는 모둠 튀김이 담긴 한 접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치국수까지 나온다. 착한 가격에 맞는 소박한 양을 상상했던 사람이라면 ‘할범탕수육’의 푸짐한 인심에 놀랄지도 모른다.
가격 1인분 할범 세트(탕수육, 떡볶이, 튀김, 국수) 6,000원 / 돈가스 정식(돈가스, 밥, 반찬, 국물) 6,000
익숙하면서도 강력한 그 맛 ‘매콤한 강떡순’
고소한 기름 냄새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바로 깨끗하고 신선한 기름에 튀긴 ‘매콤한 강떡순’의 옛날 통닭과 닭강정 때문. 매콤한 소스에 버무린 닭강정은 닭똥집튀김의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포장 주문으로 음식을 기다려야 한다면 찬 바람 부는 날 더욱 맛있는 어묵꼬치를 맛보는 것도 좋다.
가격 닭강정·닭똥집튀김 1만2,000원(대), 6,000원(중), 4,000원(소) / 옛날 통닭 8,000원(1마리), 1만5,000원(2마리)
정성과 영양이 가득 ‘능이랑추어랑’
목동깨비시장 중심 거리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자리한 ‘능이랑추어랑’은 일대에서 소문난 맛집이다. 뜨끈한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능이삼계탕은 마음을 보답하고 싶은 소중한 이들과 함께 가면 더 좋을 법하다. 또 다른 대표 메뉴 추어탕은 돌솥밥과 찰밥 중 선택 가능하다. 영양이 듬뿍 담긴 진한 국물과 귀한 재료가 가득한 이곳에서 먹는 한 그릇이라면 남녀노소 몸보신은 보장한다.
가격 돌솥밥 추어탕 1만1,000원 / 능이삼계탕 1만5,000원 / 능이버섯오리백숙 6만9,000원
생선과 시래기의 담백한 만남 ‘홍익시래기’
‘홍익시래기’의 대표 메뉴 시래기고등어조림은 칼칼한 특제 양념과 말린 시래기, 고등어, 무조림의 환상 조합으로 ‘밥도둑’이라고 불린다. 얼큰하고 시원한 콩나물로 국물 맛을 낸 알탕은 해장용으로도, 술안주용으로도 제격인 만능 메뉴다. 가게 한편에는 백미밥과 잡곡밥, 샐러드와 각종 반찬이 준비된 셀프 바가 있어 입맛 따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가격 바짝 졸인 시래기고등어조림 1만3,000원 / 얼큰한 알탕 1만3,000원 / 길쭉이 갈치구이 1만8,000원
글 박찬일 취재 조서현 사진 김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