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은 주거와 산업이 혼재하는 준공업지다.
2005년 이후 수제화 제작 등 토착 산업이 쇠퇴하면서 문을 닫는 공장이 늘어났고 인구도 줄었다.
이 공간에 가난한 예술가, 사회적 기업이 찾아들고 서울형 도시 재생 시범 사업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새바람이 불고 있다.
성수동이 꿈꾸는 내일은 무엇일까?
마천루가 호위 무사처럼 덕수궁을 감싸고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뚝섬에서 뱃놀이와 수영을 하고, 지금 서울숲이 된 뚝섬경마장에서 마권을 주워서 소꿉놀이를 했어요.”
성수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페이퍼크라운 남경희 씨가 회상한 1970년대 초 성수동 모습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불과 50년 전 일. 물론 그 당시 지은 공장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1950년대 후반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뚝섬과 성수동 일대에 중소 규모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산업 부흥기인 1970년대에는 철강, 인쇄, 가발, 수제화 공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특히 1967년 금강제화가 금호동으로 이전하면서 명동·염천교·금호동에 흩어져 있던 관련 업체들이 성수동으로 모여들어 현재의 수제화 타운을 이루었다. 하지만 IMF 외환 위기와 중국산 구두의 공격으로 공장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이었다.
성수동의 수제화 산업에 변화의 바람이 분 건 2010년 즈음. 기업의 ‘구두 생산’에 실렸던 무게중심이 구두 장인들이 나서서 ‘구두를 만들어 파는 숍’으로 바뀌고, 여기에 지역의 뿌리 산업을 살리기 위한 서울시의 경제정책이 뒷받침하면서 성수동 일대가 ‘수제화 특화 산업’ 지역으로 지정된 것이다.
성수역사에 있는 ‘슈스팟’에서는 수제화 거리의 역사부터 작업 공정까지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고, 성수역 1번 출구에 있는 ‘프롬SS’와 판매장 ‘SSST’에서는 수제화 장인들의 독특하고 멋진 신발들을 구경하고 구입할 수 있다.
본격적인 수제화 거리의 시작은 성수역 4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연무장길’. 가죽 세공부터 밑창·장식·굽까지 수제화와 관련한 모든 업종을 만날 수 있다. 전태수 장인은 “국내구두 인프라의 85%가 이곳에 몰려 있다”고 말한다.
폐공장이 개성 넘치는 예술 작업실로 재탄생
성수동의 수제화 거리가 입소문 나면서 성수동에는 또 다른 변화가 싹트고 있다. 주머니 가벼운 예술가들, 신진 디자이너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회색빛 공장 지역에 예술적 색채를 더하고 있는 것. 페이퍼크라운 남경희 씨는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제되지 않은 성수동의 매력”이 젊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이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한다. 페이퍼크라운은 판화가로 유명한 남천우 작가의 공방이었는데, 판화 작업을 원하는 예술가들에게 문을 개방하면서 영리와 비영리 경계에 있는 카페 겸 공방이 됐다. 작업 시간을 피해서 북 콘서트, 인문학 강연, 음악회 등도 여는 문화 공간 역할도 하고 있으며, 성수동 주민을 위한 다양한 미술 체험 활동도 진행 중이다. 마을로 들어온 문화 예술 공간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고 있는 페이퍼크라운 같은 곳이 늘어난다면 문화 예술 도시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삶터, 일터, 쉼터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통합 재생
공장이 밀집한 좁은 골목길을 지나 탁 트인 골목 끝에 도착하면 서울에서 가장 큰 공원인 서울숲이 나온다. 임금의 사냥터, 군 검열장 등과 최초의 상수원 수원지, 골프장, 경마장, 체육 공원 등으로 활용되다 2005년 현재의 서울숲이 되었다. 서울숲공원 인근 주택가에서는 사회 혁신가, 젊은 상인들이 모여 새로운 거리를 만들고 있다. 개성을 살린 카페, 음식점, 공방, 디자인 숍, 사회적 기업의 코워킹(co-working) 공간 등이 들어서고 있는 것.
신혼 시절부터 성수동에서 살았다는 윤연주 씨는 “공장 지역인 데다 주택도 노후돼서 분위기가 어두웠는데 젊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멋진 가게도 생기니 동네가 밝아졌다”며 “더 많은 젊은이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공장 지역이라 재개발하기도 쉽지 않았던 성수동에는 1970~1980년대에 지은 노후된 주택이 많다. 여기에 공장이 도산해 일자리마저 줄면서 주민도 줄고 있다.이에 성수동 살리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성수동 일대를 서울시 도시 재생 시범 사업 지역으로 선정해 삶터, 일터, 쉼터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통합 재생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수동만의 특색을 살려 토착 산업을 살리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해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사회 혁신 단체 및 사회적 기업, 문화인과 예술인이 공유·협업 할 수 있는 문화 예술 지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수도시재생지원센터’도 운영 중이다.
1980년대 미국 제조업의 쇠퇴로 뉴욕 브루클린의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다. 삭막하기 짝이 없던 이 지역에 가난한 예술가와 스타트업이 모여들었고, 뉴욕 시는 적극적으로 문화 예술 활동을 지원해 가장 트렌디한 뉴욕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됐다. 매캐한 약품 냄새와 날카로운 기계 소음, 낡은 공장과 주택…. 성수동은 과연 서울의 브루클린이 될 수 있을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성수동이 변화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전각과 후원을 돌아본 후 연경당에서 차와 다과를 즐기며 전통 공연을 관람한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 신진 디자이너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회색빛의 공장 지역에 예술의 색채를 더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숲. 빽빽한 숲 속을 걷다 보면 저절로 치유되는 느낌이다.
[ 성수동을말하다 ]
성수동은 대한민국 구두의 역사지요
수제화 장인 전태수(전태수 슈즈 디자인연구소)
예전에는 구두 공장만 1,000여 개가 있었어요. 그런데 IMF 폭격으로 많은 공장이 도산하고 중국 제품이 밀려들어오면서 지금은 250개 정도만 남아 있지요. 저 역시 IMF 외환 위기 이전에 제법 큰 구두 공장을 운영하다가 파산하고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신발로 재기했습니다. 신발은 제 운명인가 봐요. 수제화다 보니 단골손님이 많은데, 발 모양이 특이한 사람이 대부분이죠. 요즘은 걸 그룹이나 댄스 가수도 찾아오는데 가수 싸이 씨는 단골이에요. 바닥이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만들어줬더니 색깔별로 맞춰 가더라고요. 하하. 수제화 거리 조성 등으로 수제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더 활성화되려면 전문 숍이 많이 늘어나야 해요. 다들 노력하고 있으니 조만간 그렇게 되겠죠?
[ 성수동을말하다 ]
서울에서 제일 멋진 동네가 됐으면 좋겠어요
성수동 주민 윤연주 씨
성수동에서 산 지 40년이 넘었네요. 성수역이 생긴 자리에 개천이 흐를 때였으니까. 옛날에는 약품 냄새도 심하고 시끄러워서 참 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많이들 떠났죠. 그 친구들이 저보고 왜 이사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전 성수동이 좋아요. 이제는 서울숲이 생겨서 전망도 좋아졌고요. 성수1가 1동·2동, 성수2가 1동·3동을 재개발을 하는 게 아니라 재생시킨다는데 전 찬성이에요. 아파트가 들어서면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수많은 서민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주거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고 주거 시설을 늘려 동네 주민뿐 아니라 인근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까지 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예쁜 가게도 만들고 멋진 일도 하던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흐뭇합니다. 예술 문화 테마 거리를 조성해 서울에서 제일 멋진 동네가 됐으면 좋겠어요.
프롬SS
성동구청의 인증을 받은 수제화 장인 8명이 ‘유니크’한 구두를 만드는 곳이다.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공장과 소매점을 직접 연결하기 때문에 수제화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문의 070-4418-6283
카페 페이퍼크라운
공방 유지는 물론 젊은 작가들의 아르바이트 공간도 되는 카페.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하고 직접 그린 문구, 휴대폰 케이스, 초콜릿 등의 소품도 판매한다.
문의 02-547-5954
자그마치
디지털 조명 공방 겸 이벤트 홀이자 카페다.
라몽떼에서 가져온 빵, 글래머러스 펭귄의 디저트와 커피 리브레에서 가져오는 커피를 판다.
문의070-4409-7700
대림창고
성수동을 단번에 핫 플레이스로 만든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정미소였는데 한동안은 물건 보관 창고로 활용되다가 어느 순간엔가 패션 브랜드의 트렌디한 행사를 개최하는 핫 플레이스로 변했다.
문의02-498-7474
우콘카레
일본 정통 가정식 카레를 만든다. 우콘은 울금, 강황 등을 가리키는 일본 말.
치자를 우려낸 물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과 건더기 없는 카레 국물, 카레 위 달걀 프라이가 인상적이다.
문의 070-4124-8769
베란다 인더스트리얼
대문의 그라피티가 인상적인 곳.
그림, 조명 등 아트 작업을 하는 김정한 작가의 작업실이자 갤러리, 그리고 최근에는 촬영 공간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을 때는 누구나 들어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문의070-7527-1778
성수문화복지회관
성수문화복지회관은 성수동의 랜드마크다.
성수동 주민들은 이곳에서 연극도 보고 공부도 하고 재활 치료도 한다.
옥상 정원에 올라가면 성수동 일대와 한강,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문의02-2204-7560
카우앤독
카페 겸 코워킹 공간. 2층은 회의실로 사용하기 좋게 방으로 나뉘어 있고 1층에는 널찍한 테이블이 자리해 업무를 볼 수 있다.
‘함께 좋은 일을 하다(Co Work & Do Good)’라는 의미대로 ‘사회 혁신’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문의 cowndog.com
앨리 버거
갈비 골목 옆 좁은 샛길에 있는 햄버거집. 육즙 가득한 패티와 진득한 치즈, 사각거리는 채소가 고소하고 달다.
불갈비 맛, 매콤청양 맛, 옥수수 콘 맛 중에서 고를 수 있는, 수제 소시지를 넣어 만든 핫도그도 별미다.
문의 070-7572-4345
보난자 베이커리
버터, 우유, 달걀, 설탕을 넣지 않고 천연 발효시키는 프랑스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정오와 오후 3시, 오후 6시에 각각 빵을 구워낸다.
인기 메뉴는 치즈볼과 나초코, 크랜베리 호두.
문의 070-4799-5025
뚝떡
뚝섬에 있는 떡볶이집이라서 뚝떡.
달콤한 첫맛과 뒤이어 급습하는 매콤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뚝떡’이 시그너처 메뉴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양념만두튀김. 그냥 만두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문의070-7795-7209
대성갈비
성수동의 유명한 갈비 골목에서도 지존인 집. 5시부터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맛집이다.
양념이 쏙쏙 밴 갈빗살도 맛있지만,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끓인 김치찌개가 더 별미다.
문의02-464-3012
펜두카 & 스마테리아
공정 무역 기업인 더페어스토리가 운영하는 가게.
펜두카에선 아프리카 나미비아 현지 여성들이 만든 가내 수공예품을, 스마테리아에선 낡은 오토바이 시트나 플라스틱 폐품 등을 활용해 만든 파우치, 지갑, 패션잡화를 판다.
문의 070-4473-3370
녹색공유센터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운영하는 곳으로 시민들이 원하고 계획한 ‘녹색 공유’ 활동을 한다.
센터 주차장을 활용해 만든 도시 농업 지원 센터 그린플러스의 매장 ‘오고가게’에는 호미부터 상토 흙까지 텃밭을 일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문의 02-403-0378
그라운드 M
존귀함을 회복해야 하는 사람들을 재조명하는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에서 운영하는 곳.
첫 프로젝트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심리 치료의 일환으로 그린 꽃 그림.
플라워 패턴을 재해석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문의 070-4245-8865
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램프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