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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음악으로, 골목에서 세계로

그림에서 음악으로, 골목에서 세계로
2026.09

문화

로컬의 시간

그림에서 음악으로, 골목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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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홍익대학교 #인디음악 #거리문화 #레드로드

어울마당로

과거 주차장거리에서 쇼핑·공연·축제 중심 공간으로 재탄생한 어울마당로

“홍대 앞에 간다”라는 말의 의미는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미술 도구와 재료를 사거나 입시 미술 학원에 가기 위해 찾는 곳이었습니다. 즉석떡볶이와 파르페를 먹고, 천장에 매달린 그네로 유명했던 카페 ‘흙과 두남자’ 등 개성 넘치는 카페를 찾아가는 동네이기도 했습니다. 청기와주유소와 소극장 산울림 등은 약속 장소를 설명하는 홍대 앞의 익숙한 이정표였습니다. 1990~2000년대에 “홍대 앞에 간다”라는 말은 클럽에 간다는 의미였습니다. 강남의 나이트클럽과 달리 작은 지하 공간에서 인디 밴드와 록 밴드가 라이브 공연을 펼치고, 젊은이들은 음악을 듣거나 춤을 추는 등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미술의 거리였던 홍대가 음악과 클럽 문화의 중심지로 다시금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홍대 앞을 찾는 목적은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K-팝과 패션, 뷰티, 음식과 거리 문화를 즐기기 위해 모여들고, 골목마다 서로 다른 취향과 문화가 뒤섞여 있습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는 곳. 한강 변 외곽에서 서울의 문화 발전소로 성장하기까지 “홍대 앞에 간다”라는 말 속에 쌓인 시간을 따라가 봅니다.

‘수상한베이글’의 인테리어 소품

상수동 방향의 카페 거리에는 주택을 개조한 개성 강한 카페가 즐비하다. 사진은 ‘수상한베이글’의 인테리어 소품

미대 앞 캐리커처

미대 앞이라는 특징 덕분에 곳곳에서 캐리커처 작가를 만날 수 있다.

홍대 댄스버스킹

K-팝 성지인 홍대에는 매일 밤 노래와 댄스 버스킹이 펼쳐진다.

증축하기 이전인 1996년 홍익대학교 정문 앞 전경

증축하기 이전인 1996년 홍익대학교 정문 앞 전경
ⓒ 서울 1996 도시 형태와 경관, 서울특별시


복합문화공간 ‘그림동네’로 재탄생한 옛 홍대놀이터

복합문화공간 ‘그림동네’로 재탄생한 옛 홍대놀이터

이야기 하나 / 고급 주택지에서 미대 학생들의 작업실 동네로

20세기 초 지금의 홍대 앞은 당인리 화력발전소로 무연탄을 운반하는 당인선 철길을 따라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지역이었다. 해방 이후 서교 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면서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이 있을 정도로 고급 주거지였다.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동룡이네 집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조용하던 주택가의 성격을 바꾼 것은 홍익대학교였다. 1955년 홍익대가 이전하면서 대학가 문화가 형성됐고, 미술대학이 성장해 1970년대부터 미술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미대생과 건축 학도의 작업실이 주택가로 스며들고, 보증금과 월세를 그대로 따 ‘108작업실’, ‘208화실’처럼 이름 붙인 공동 작업실도 생겼다. 작업실을 따라 화방과 미술 재료점, 전문 서점과 공방이 모였고 미술 학원도 빠르게 늘었다. 그 흔적을 지금까지 이어가는 대표적인 곳이 호미화방이다. 1975년에 문을 연 호미화방은 반세기 동안 물감과 붓, 종이 등 다양한 미술 재료를 공급하며 미대생과 작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것을 그리고 만들던 사람들이 골목을 채우면서 홍대에서는 일찍부터 ‘남과 달라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훗날 인디 음악과 클럽, 독립 출판과 거리 문화가 홍대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토양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미디어 아트가 시선을 끄는 홍대입구역 역사

미디어 아트가 시선을 끄는 홍대입구역 역사

홍대입구 길거리

어느 방향으로 걷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홍대 입구


패션과 개성 넘치는 상점이 이어지는 홍대 골목

패션과 개성 넘치는 상점이 이어지는 홍대 골목

이야기 둘 / 미대 앞 골목에서 시작된 자유

그림으로 시작한 홍대의 자유는 1990년대 음악으로 번졌다. 1992년 최초의 홍대 앞 클럽 ‘발전소’, 1995년에 노브레인과 크라잉넛 등 인디 음악의 산실인 라이브 클럽 ‘드럭’이 문을 열면서 홍대의 밤은 새로운 음악을 실험하는 거대한 무대로 변했다. 정점은 2001년 시작된 ‘클럽데이’와 2002년 한일 월드컵 전후. 클럽데이는 티켓 한 장으로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는 행사였는데, 한때 20여 개 클럽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지면서 홍대 클럽 문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주말이면 특별히 약속이 없어도 홍대 앞에 갔어요. 힙합에, 테크노에, 댄스까지 모든 장르를 즐길 수 있었거든요.” 학창 시절 주말을 홍대 앞에서 보내다시피 했다는 김창호 씨는 “클럽에 들어가지 않아도 거리에 음악과 춤이 넘쳐났다”며 “클럽 하나가 아니라 홍대 앞 전체가 하나의 문화 공간 같았다”라고 술회했다.

이렇듯 지하에서 만들어진 문화는 거리로 이어졌다. 1993년 홍익대 미대생들이 시작한 거리미술전에서는 학교 밖 골목이 전시장이 됐고, 이후 벽화와 퍼포먼스 등으로 영역이 확장됐다. 2002년부터 홍대놀이터, 지금의 홍익문화공원에서는 ‘홍대 앞 예술 시장 프리마켓’이 열렸다. 공연장이 없어도 노래하고, 갤러리가 없어도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문화 거리. 그렇게 홍대는 무언가를 ‘보러 가는 동네’에서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참여할 수 있는 동네로 바뀌었다.

홍익대학교

1975년 문을 연 호미화방

홍익대학교와 1975년 문을 연 호미화방

홍대거리

늦은 밤까지 쇼핑 아이템과 먹거리, 즐길 거리가 넘친다.


인디 밴드 성지인 롤링홀

인디 밴드 성지인 롤링홀

이야기 셋 / 골목마다 다른 홍대 입구, 끊임없는 재창조

이곳이 흥미로운 점은, 하나의 중심 거리만으로 동네를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어느 방향으로 걷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홍대를 만나게 되는 것. 대형 상업 시설과 관광객이 몰리는 거리에서 조금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카페와 작업실이 나타나고, 다시 대학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미술 학원과 화방 등 미대 앞 동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러 개의 작은 동네가 ‘홍대’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겹쳐 있는 셈이다.

홍대입구역 주변은 오늘날 홍대로 들어가는 가장 분주한 관문이다. 지하철 2호선과 경의중앙선, 공항철도가 만나는 역을 중심으로 대형 상업 시설과 음식점, 패션·뷰티 매장이 빼곡하고 캐리어를 끌고 가는 외국인 관광객도 쉽게 만난다. 이곳에서 홍익대학교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홍익대학교 정문 주변에는 학생들이 오가는 대학가의 일상과 함께 미술 학원, 화방 등 홍대 미술 문화의 흔적이 이어진다. 오늘날 홍대라는 이름을 만든 출발점에 가장 가까운 풍경이다. 반면, 서교동 안쪽과 상수동에서는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최근에는 K-팝과 K-뷰티, 쇼핑과 문화 체험을 즐기려는 젊은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홍대 앞 풍경도 한층 국제적으로 변했다.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공유 숙박과 스테이도 늘어나며 홍대 앞은 잠시 들르는 곳을 넘어 머물면서 즐기는 체류형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다. 취향의 동네답게 문화 공간도 다양하다. 홍대입구역에서 이어지는 레드로드는 ‘홍대 문화예술관광특구’의 대표 공간으로 공연과 축제, 쇼핑과 관광이 뒤섞인 현재 홍대의 얼굴이다.

R1부터 R6까지 이어지는 구간 곳곳에 버스킹과 공연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KT&G 상상마당 홍대에서는 전시와 영화, 음악, 디자인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고, 무신사 개러지에서는 콘서트와 내한 공연, 쇼케이스 등 새로운 세대의 라이브 무대가 열린다. 1995년 시작한 롤링홀은 2026년 개관 31주년을 맞아 여전히 인디 음악과 대중음악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소극장 산울림도 꾸준히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책과 출판 문화도 남아 있어 1984, 문지살롱, 까페창비 같은 공간에서는 책을 매개로 전시와 북 토크, 독서와 만남이 이루어진다.

발전소와 철길이 지나던 서울 외곽에서 미술의 거리로, 인디 음악의 문화 해방구에서 전 세계 젊은이들이 찾는 동네로 홍대 풍경은 쉼 없이 변해왔다. 지금도 역 앞의 화려한 거리와 조용한 골목, 오래된 문화 공간과 새로운 가게들이 ‘홍대 입구’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저마다 취향을 품고 공존하고 있다. 어느 한 시대의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다른 취향과 문화가 공존하거나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야 말로 홍대 앞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홍대 연극 문화를 싹틔운 소극장 산울림

홍대 연극 문화를 싹틔운 소극장 산울림

창작자의 작품을 직접 만나는 홍대의 플리마켓

창작자의 작품을 직접 만나는 홍대의 플리마켓

공연과 축제를 위한 광장이 마련된 레드로드

공연과 축제를 위한 광장이 마련된 레드로드

전시·영화·공연·디자인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KT&G 상상마당 홍대

전시·영화·공연·디자인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KT&G 상상마당 홍대

출판 문화를 간직한 북 카페 1984

출판 문화를 간직한 북 카페 1984

글 이정은 사진 정지원 참고 자료 <서울의 문화발전소 홍대앞>(서울역사박물관), 뉴시스 ‘고급주거지에서 문화발전소로…홍대앞의 어제와 오늘’, 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홍대앞 이야기’, 서울시, 마포구, 서울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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