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잃은 시절, 사람들은 거리와 마을 이름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마음을 새겼다.
해방의 환희와 순국의 슬픔, 자주독립을 향한 의지는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서울의 몇몇 동네 이름에는 광복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염원과 나라를 지키고자 한 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해방과 함께 시작된 남산 아래 마을 -> 해방촌 解放村 _용산구

‘풀 해(解)’, ‘놓을 방(放)’을 쓰는 해방촌은 말 그대로 광복 이후에 형성된 마을이다. 1945년 해방을 맞아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와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남산 자락에 모여 살면서 이 일대는 자연스럽게 해방촌으로 불렸다. 나라를 되찾은 기쁨과 새 삶을 꾸려야 하는 절박함이 함께 모인 동네였던 셈이다. 남산 아래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작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섰고, 사람들은 서로 기대며 마을을 일구었다. 행정동 이름은 용산동2가에 속하지만, 해방촌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이곳을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지명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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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는 신흥시장이다. 6·25전쟁 이후 주민들의 생활을 떠받치던 재래시장이었지만, 최근에는 작은 식당과 카페, 공방이 들어서며 오래된 골목과 새로운 감각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충신을 기리던 제단에서 비롯된 이름 -> 장충동 奬忠洞 _중구

‘장려할 장(奬)’, ‘충성 충(忠)’을 쓰는 장충동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던 제단, 장충단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1900년에 고종황제는 을미사변 때 순사한 이경직과 홍계훈을 비롯한 장졸을 배향해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할 목적으로 장충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제는 장충단을 없애고 벚꽃을 심는 등 유원지를 조성했다. 해방 이후 이준의 동상과 사명대사의 동상이 건립되는 등 항일운동과 관련한 기념물이 다수 있다. 나라를 잃고 국권이 흔들리던 시기, 사람들은 제단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장충동이라 부르며 충절과 애국의 기억을 공간에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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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공원 일대는 승정전·관성묘·와룡묘 등 국가유산을 비롯해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만해 한용운 시비와 유관순·이준 열사, 김용환 선생 동상 등 항일운동과 관련한 애국 충정이 깃든 민족 공원이라 할 수 있다.
을사늑약에 맞선 충정공의 이름 -> 충정로 忠正路 _서대문구

‘충성 충(忠)’, ‘바를 정(正)’을 쓰는 충정로는 대한제국 충신 민영환의 시호 ‘충정’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민영환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나라의 독립을 호소했다. 이에 해방 이후 서울시는 충정로로 이름을 바꾸었다. 거리 이름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 식민지의 흔적을 지우고, 나라를 지키려 한 인물을 도심의 길 위에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식민 지배에 맞선 한 사람의 선택이 도로 이름으로 남고, 다시 동네 이름으로 확장되면서 충정로는 근대 지식인과 시민의 저항 정신을 품은 동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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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 종근당 사옥 근처에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동상이 있다. 원래 1957년 자택이 있던 종로 안국동 사거리에 세웠는데,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긴 뒤 이곳에 안착했다. 동상의 방향도 경복궁을 향함으로써 자결로 일본에 항거하고 죽어서도 임금과 나라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충정공의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다.
자주독립의 뜻을 세운 문 -> 독립문 獨立門 _서대문구

‘홀로 독(獨)’, ‘설 립(立)’을 쓰는 독립문은 자주독립의 뜻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이 자리에는 본래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있었다. 조선 시대 사대 외교의 상징이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 것은 나라의 위상을 새롭게 하려는 선언과도 같았다. 독립문은 1890년대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건립되었으며, 외세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한때 이 일대에는 ‘독립문동’이라는 동명도 쓰였다. 지금은 행정동 이름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독립문이라는 지명과 공간은 여전히 서대문 일대의 역사적 정체성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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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인근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공원이 있다. 지하철역 출구를 나와 공원으로 이어지는 짧은 길은 도시의 일상에서 ‘독립’과 ‘자주’의 의미를 다시금 묻게 하는 작은 역사 산책로다.
글 이정은 일러스트 강명주 참고자료〈서울 지명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각 구청 지명 유래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