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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처마가 어깨를 맞댄 익선동 한옥거리

외국 관광객들의 필수 서울 관광 코스가 된 익선동. 단체 관광객뿐만 아니라 가족여행객도 많다.

한옥 외관을 그대로 살린 상점들

한옥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청수당의 디저트
종로3가역 4번 출구를 나와 몇 걸음 걸으면 어깨가 닿을 듯 좁은 골목이 나타나 여기부터 익선동이라고 말합니다. 혹은 낙원상가 옆 낙원떡집과 아귀찜 식당 사이의 도로를 따라 종로세무서 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낮은 처마의 낡은 한옥들이 익선동으로 길을 안내합니다. 한옥거리로 유명한 익선동은 종로구 낙원동에서 종로3가 사이에 있는 동네입니다. 2014년 이전까지는 조용한 주거지역이었는데, 지금은 행락객의 발길이 요란한 서울의 대표 ‘핫 플레이스’가 됐죠.
도대체 익선동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내국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까지 줄지어 찾는 걸까요? 익선동의 매력은 새로움보다 ‘겹침’에 있습니다. 1920년대 도시형 한옥으로 시작한 주거지, 재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흔들리던 골목,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침체기, 그리고 뉴트로 열풍 속에서 다시 열린 다양한 상점들과 외국 관광객까지, 골목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는 참으로 깁니다.
낮에는 한옥 카페의 커피 향과 대숲의 물소리가, 밤에는 골목 야장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익선동을 채웁니다. 낮에는 외국 관광객과 나이 지긋한 중년들이 서울의 오래된 정서와 추억을 산책하고, 밤에는 피 끓는 청춘들이 고깃집과 포장마차에 모여 앉아 젊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서 변한 것은 집이 아니라 그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이었네요.
도시형 한옥의 탄생


종로의 번영을 상징했던 낙원악기상가와 허리우드극장

익선동의 흥망성쇠를 기억하고 있는 60년 역사의 찬양집

2005년 익선동 골목 ⓒ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익선동이 뉴트로 열풍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 ‘핫 플레이스’로 부상한 이유 중 하나는 ‘한옥거리’이다. 그런데 익선동의 한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옥과는 사뭇 다르다. 북촌처럼 양반가의 한옥이 아니라 서민들이 살기에 적합한 도시형 한옥인 것. 익선동은 원래 철종이 태어나고, 그 후손이 살던 누동궁이 자리한 지역이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청계천 이남에 주로 거주하던 일본인이 종로 진출을 본격화하자 이를 막기 위해 도시 개발업자였던 ‘건축왕’ 정세권이 이 일대에 당시 생활에 맞는 도시형 한옥 마을을 만들었다. 10평 남짓한 땅에 본채와 행랑채를 배치하고, 마루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함석 챙을 잇댄 실용적 퓨전 한옥이었다. 그래서 해방 이후 가난한 인텔리들이 선호했던 익선동은, 특히 1970년 대 악기 전문 상가인 낙원상가와 허리우드극장이 생기면서 전국적으로 예술인들이 찾는 거리가 되었고, 근처에 있는 한복 거리와 귀금속 골목 때문에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귀금속 세공사들이 목구멍에 낀 먼지 떨어내려고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생겨난 곳이 갈매기살 골목이에요.” 종삼육, 미갈매기살, 광주집 등과 함께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대포집 이선희 사장은 “지금은 야장 문화를 즐기려는 젊은 층이 주요 고객이 됐다”라며 “골목 곳곳에 고깃집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라고 갈매기살 골목의 역사를 들려줬다.
뉴트로 방식으로 재탄생

오랜 시간 익선동을 지키고 있는 노포들


담장, 지붕 등은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고 내부만 가게 특색에 맞게 바꿨다.
그러나 익선동의 시간이 언제나 반짝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한옥들은 세월이 흐르며 낡았고, 주변 도심이 개발되는 동안 익선동은 한동안 뒤처진 동네가 되었다. 2004년 익선동 일대가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는 아예 시간이 멈춰 버렸다. 2014년에 재개발이 해제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한옥이 그대로 방치되다시피 했고, 서울 한복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낙후되었다. 그런데 그 멈춤이 반전을 만들었다. 청년들이 들어온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공간기획팀 익선다다. 박한아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익선동을 처음 만났을 때 “아지트에 온 것 같은 설렘”을 느꼈고, 이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간과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골목이었기 때문에 거리를 살려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익선다다는 방치된 한옥을 임대해 뼈대를 살린 채 고쳐 쓰는 방식으로 카페와 식당을 잇따라 열며 한옥의 문법을 바꿨다. 그렇게 한옥을 색다르게 해석한 익동다방, 열두달, 경양식 1920 등이 입소문이 나면서 유행에 민감한 트렌드세터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고, 뉴트로 열풍과 맞아떨어지면서 익선동은 서울의 이색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늘도 짙은 법.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르며 터를 일군 가게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몸살이 찾아왔고, 코로나19 시기에는 외출과 관광이 줄며 상권이 흔들리기도 했다. 익선동은 너무 빠르게 뜬 동네였고, 그래서 더 빠르게 피로를 겪은 동네이기도 했다.
다시 차오른 골목, 오늘의 익선동


익선동의 상권을 확대한 온천집과 청수당

독보적인 겉바속촉으로 늘 대기 줄이 긴 자연도 소금빵
그러나 익선동의 침체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0년 초반에는 한옥거리 중심으로 카페, 음식점 등의 상권이 형성되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가게들이 동네 주변까지 들어차고 있다. 그 중심에 공간기획팀인 글로우서울이 있다. 프랑스식 식당 ‘글로우키친’을 열며 익선다다와 함께 익선동에 입성한 글로우서울은 매장이 들어찬 한옥 거리 앞쪽 대신 임대료가 저렴하고 빈집이 많았던 뒷골목으로 눈을 돌렸다. 한옥 여러 채를 묶어 대나무숲과 물길을 만들고 일본의 온천장처럼 인테리어를 바꿨다. 한옥과 잘 어울리는 콘셉트였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베이커리 카페 청수당과 샤브샤브집인 온천집으로 익선동 한옥 골목이 ‘보는 공간’에서 ‘경험하는 공간’ 으로 바뀐 계기이기도 했다.
현재 익선동의 큰 변화는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 “트렌드에 민감한 MZ는 익선동을 떠나 성수동으로 옮겨 갔죠.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이 훨씬 더 많이 찾아와요. 아예 여행 코스에 익선동이 포함되어 있더라고요.” 익선동이 꿈틀대기 시작한 2016년부터 줄곧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와인 바 기러기둥지의 김대현 사장은 “한옥·골목·음식·사진·야장 문화가 한 동선 안에 압축돼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서울을 체험할 수 있어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라며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소품 상점, 게임장 등이 너무 많아져 익선동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골목과 야장이 함께 살아나는 시간

불금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갈매기살 골목

종로3가역 앞에 진을 친 포장마차 군단

한옥 감성의 소품도 인기가 많다.
그럼에도 익선동에는 다양한 연령과 국적의 사람들이 밤낮없이 찾아와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문전성시를 이룬다. 청수당과 온천집은 여전히 골목의 대표 주자이고, 갓 구운 소금빵에 긴 줄이 늘어서는 자연도 소금빵과 기찻길이 인상적인 낙원역은 골목의 새 얼굴로 떠올랐다. 여행객들은 이런 분위기와 감성에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캐리커처 공방과 사진관, 레트로 소품 숍에서는 이 동네의 시간을 기념품처럼 건진다. “익선동 안에서도 비교적 조용한 골목, 넓은 공간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둥지를 틀었어요.” 아로마 공예와 쿠킹 클래스를 체험할 수 있는 익선공방의 최소영 대표는 “익선동에는 소품 숍과 음식점만이 아니라, 직접 만들고 체험하며 머물 수 있는 공방도 있다”라며 “익선동만의 고즈넉한 매력도 즐겨보라”라고 권한다.
해가 지면 익선동의 시간은 골목 경계 밖으로 번진다. 낙원동과 돈의동으로 이어지는 종로3가역 일대에 포장마차가 하나둘 세워지고, 닭발과 달걀말이, 해물파전을 앞에 둔 젊은 인파가 야시장 같은 활기를 만든다. 좁은 갈매기살 골목에도 테이블이 다닥다닥 놓이고, 고기 굽는 연기와 술잔 부딪치는 소리, 목청껏 떠드는 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운다. 이렇게 밤바람과 함께 두런두런 잔을 기울이는 야장 문화는 이제 익선동 일대의 밤을 정의하는 풍경이 되었다. 100년 전 나무꾼들이 국밥으로 허기를 달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의 청춘들이 잔을 부딪친다. 골목은 그대로다. 시간을 건너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다.
익선동에서 만났어요

김대현(기러기둥지)
한옥에 둥지 같은 편안한 공간을 만들었어요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구성환 추천 메뉴로 ‘트러플 크림 뇨키’가 소개되면서 최근 인지도가 급상승한 와인 바 ‘기러기둥지’는 2016년부터 익선동을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종로에서 바텐더로 요식업계에 발을 디뎠죠. 타지에서 서울로 온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골목 안쪽 오래된 한옥에 와인 바를 열었어요.”
그래서 가게 이름도 ‘기러기둥지’로 지었다는 김대현 대표는 “익선동의 흥망과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라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게는 서너 곳밖에 안 된다”라고 아쉬워했다. 한때 와인 바로 이름을 알렸지만 바비큐와 트러플 크림 뇨키를 중심으로 한 캐주얼 레스토랑으로 조금씩 선택지를 넓히고 있는 기러기둥지가 더 오래도록 남아 익선동의 명맥을 이어가길 바란다.
글 이정은사진정지원 참고자료 서울한옥포털, 네이버 지식백과 ‘골목이야기’,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한국영상자료원, 익선다다, 글로우서울, 서울관광재단,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