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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에 여름이 멈춘다. 진짜 젤라토를 찾아서

한 입에 여름이 멈춘다. 진짜 젤라토를 찾아서
2026.07

여행

취향의 발견

한 입에 여름이 멈춘다. 진짜 젤라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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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문자 지원

뙤약볕 아래 걷다가 들어간 젤라토 가게.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그 한 입이 입안에서 녹는 순간, 여름은 잠깐 다른 온도가 된다.
〈로마의 휴일〉 속 오드리 헵번이 로마의 스페인 계단에 앉아 젤라토를 베어 물던 그 장면처럼,
여름과 젤라토는 늘 그런 식으로 기억된다.
차갑고, 달고, 순간적이지만 오래 남는 감각으로.

공기를 최소화해 만든 젤라토

공기를 최소화해 만든 젤라토는 아이스크림보다 묵직해 입안에서 녹는 순간 재료의 향미가 한꺼번에 터진다.

차가운 것에도 계보가 있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스크림에 대한 첫 기억은 이럴 것이다. 골목을 돌며 종을 울리던 아이스께끼 장수, 구멍가게 냉동고 속에서 제멋대로 엉겨 붙어 있던 하드. 차갑기만 하면 됐고, 그걸로 더위는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다음 세대에게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맥도날드와 롯데리아 카운터 옆에서 돌아가던 기계, 그 앞에 줄을 서며 설레던 기억. 배스킨라빈스가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31가지 맛이라는 숫자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의 세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 고급스럽고 정통에 가까운 무언가를 찾는 수요가 생겼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이 젤라토였다. 2003년 구스티모가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문을 열면서 이탈리아 정통 젤라토가 서울에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밀도 있는 질감,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농밀함. 그러나 낯설고 비싼 탓에 대중화되지 못한 채 한동안 미식가들만의 영역으로 남았다. 변화가 생긴 건 2010년대 중반을 전후해서였다. 해외에서 제대로 된 젤라토를 경험하고 돌아온 이들이 수입 브랜드의 레시피를 그대로 들여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본토의 제조 방식에 충실하되 한국의 제철 재료와 자신만의 감각을 더한 가게를 골목 안쪽에 열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의 젤라토가 단순한 수입 디저트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건 그 무렵부터다.

젤라토는 공학이다

젤라토를 아이스크림과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재료가 아니라 공기다. 아이스크림은 제조 과정에서 부피의 50% 이상을 공기로 채운다. 이를 오버런(overrun)이라 하는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가볍고 부드러운 질감이 나오는 대신 재료 본연의 맛이 희석된다. 젤라토의 오버런은 20~30%에 그친다. 공기가 적은 만큼 밀도가 높고, 같은 크기의 컵이라도 손에 쥐면 묵직하다. 보관 온도 역시 다르다. 아이스크림이 영하 18℃ 이하에서 단단하게 얼어 있다면, 젤라토는 영하 11~14℃로 관리되어 입에 닿는 순간 더 빠르게 녹으며 재료의 향미를 단번에 풀어낸다. 설탕 하나도 변수가 된다. 자당·포도당·과당은 각각 어는점이 다르고, 비율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완성된 젤라토의 질감과 녹는 속도가 달라진다. 차가움이 맛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맛이 차가움을 타고 오는 것, 그 설계가 젤라토의 본질이다. 이탈리아 볼로냐에 젤라토 전문 대학이 따로 존재하는 이유다.

권정혜 대표를 만나러 강남구청역 골목 안쪽으로 들어선 것은 그런 생각들을 품고 있던 날이었다. 젠제로(ZENZERO). 이탈리아어로 ‘생강’이라는 뜻이란다. “세 음절로 끝나는 듣기 좋은 이름을 짓고 싶었고, 무엇보다 차가운 젤라토 안에 생강의 온기를 담고 싶었어요.” 이 가게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설명하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2017년 삼성동 골목 안쪽에 문을 열 때부터 젠제로는 입소문으로만 성장했다. 화려한 마케팅도, SNS 바이럴도 없었다. 한번 먹어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데려오는 방식으로, 지금은 미식가들과 셰프들이 가장 즐겨 찾는 가게가 됐다. 진열대 앞에 서면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피스타치오 젤라토는 으레 기대하는 선명한 초록이 아니라 탁한 올리브빛이다. 인공색소를 넣지 않은 재료 그대로의 색이다. 고르곤졸라와 밤꿀의 조합, 바다 향이 배어 있는 감태 카라멜까지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색적인 조합이 돋보였다. “이론적으로는 거의 모든 식재료를 젤라토로 구현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납득이 가고 매력적인 맛이어야만 메뉴로 내놓을 수 있죠.” 권 대표의 말처럼, 이 가게의 메뉴판은 실험실 노트에 가깝다. 자체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제철 재료를 가공 단계부터 다루고, 그 결과물만 진열대에 오른다. 올여름 선보이는 방아젤라토도 그렇게 탄생했다.

신메뉴를 먼저 맛보는 기쁨과 함께 한 스쿠프를 받아 들었다. 청량하고 풋풋한 방아 특유의 향이 먼저 코끝을 스치고, 그 뒤를 무겁지 않은 단맛이 조용히 받쳤다. 혀 위에 녹아드는 동안 맛의 결이 달라졌는데, 차가울 때와 퍼질 때가 전혀 달랐다. 그 짧고 섬세한 변화 안에 젤라토라는 음식이 가진 모든 이유가 담겨 있었다. 오드리 헵번이 스페인 계단에 앉았던 것도,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서였을지 모른다.

젠제로 권정혜 대표와 박준우 셰프

젠제로 권정혜 대표와 박준우 셰프. 재료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손에 든 젤라토가 녹아 있었다.


글. 박준우

벨기에에서 제과·제빵과 쇼콜라티를, 파리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 1 준우승과 <냉장고를 부탁해>,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1> 출연으로 대중과 만났다. 스스로를 ‘셰프보다는 기자’라 불리길 원하는 그는 <맛있는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푸드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현재 서촌에서 유럽 정통 디저트 카페 ‘오쁘띠베르’를 운영하며 음식의 철학과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글을 이어가고 있다.

+ 헷갈리는 빙과류, 제대로 알기

젤라토(gelato)

이탈리아어로 ‘얼린 것’을 뜻하며, 우유를 베이스로 공기를 최소화해 만드는 이탈리아식 빙과다. 유지방 함량이 4~8%로 아이스크림보다 낮지만 밀도가 높아 재료 본연의 맛이 훨씬 진하게 살아난 영하 11~14℃에서 서빙되어 입안에서 빠르게 녹으며 향미를 단번에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소르베토(sorbetto)

유제품을 전혀 쓰지 않고 과일 퓌레나 과즙, 설탕, 물만으로 만드는 빙과다. 영어권에서는 셔벗(sherbet)이라 부르기도 하며, 재료 본연의 맛이 가장 날것에 가깝게 살아난다. 여름 제철 과일의 풍미를 가장 정직하게 담아내는 형식.


아이스크림(ice cream)

크림을 베이스로 유지방 10% 이상, 오버런 50% 이상으로 만드는 빙과류의 표준형. 공기가 많이 들어가 가볍고 부드러우며 풍부한 단맛이 특징이다. 젤라토보다 낮은 온도에서 단단하게 유지되고 천천히 녹으면서 차가움이 먼저 혀를 지배한다.


그라니타(granita)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유래한 빙과로, 과즙이나 커피 등을 얼리면서 주기적으로 긁어 거친 얼음 결정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젤라토나 소르베토보다 투박하고 서걱서걱한 식감이지만, 그 거칠고 투명한 한 입이 시칠리아 여름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름 온도를 낮추는 법

더위에 지친 날, 평범한 아이스크림 대신 색다른 선택을 해보자.
한 컵을 위해 찾아가고 싶어지는 곳, 먹고 나서 시원함이 아니라
그 집만의 맛이 기억에 남는 곳. 서울의 젤라토가 여기까지 왔다.

젠제로의 젤라토

서울에서 가장 개성 있는 젤라토

젠제로

강남구청역 골목 안쪽에 자리한 젤라테리아. 이탈리아어로 ‘생강’을 뜻하는 이름처럼 차가운 한 컵 안에 묘한 온기가 남는 곳이다. 2017년 오픈 이래 자체 농장에서 재배한 제철 재료를 고집하며, 구운 피스타치오, 밤꿀 고르곤졸라, 감태 카라멜 등 예상을 벗어나는 조합으로 셰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올여름에는 완두콩, 박하, 방아, 말차로 만든 시즌 젤라토를 선보일 예정이다.

대표 메뉴 세 가지 맛 2만5,000원, 네 가지 맛 3만4,000원(배달, 본점 픽업 가능)
위치 강남구 삼성동(본점), 압구정동
인스타그램 @zenzero.seoul

젠제로 내부


아이스크림 소사이어티의 아이스크림

미쉐린 출신 셰프가 담은 한 스쿠프

아이스크림 소사이어티

미쉐린 레스토랑 출신 김호윤 셰프가 파인다이닝의 감각을 한 컵에 담았다. 매일 신선한 재료를 직접 손질해 인공 향료 없이 만드는 것이 원칙이며, 마스카르포네 치즈와 올리브 오일을 배합한 스페셜 플레이버가 시그너처다. 민트 초코 크런치, 자스민 망고, 레몬 요거트 등 클래식 라인도 탄탄하게 갖췄다.

대표 메뉴 싱글 컵 6,800원, 쿼터(네 가지 맛) 1만8,000원, 싱글 와플콘 7,800원
위치 서초구 반포동
인스타그램 @icecream__society

아이스크림 소사이어티의 내부



녹기 전에의 아이스크림

위트 있는 이야기 한 컵

녹기 전에

2017년 익선동에서 출발해 지금은 마포구 염리동에 자리 잡은 수제 아이스크림 전문점. 카이스트 전기전자과 출신의 박정수 대표가 재료의 물성을 연구하듯 매일 다른 메뉴를 내놓는다. ‘인귀만점(인절미+귀리)’, ‘아파트(아로니아+파인애플+민트)’ 같은 위트 있는 이름과 인공 첨가물 없는 쫀득한 식감이 이 집만의 특징이다. 2025년 성북동에 ‘낱점’을 추가로 열었다.

대표 메뉴 두 가지 맛 5,000원, 세 가지 맛(포장) 1만8,000원
위치 마포구 염리동(본점), 성북구 성북동(낱점)
인스타그램 @before.it.melts

녹기 전에의 내부


이혜리 사진 심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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