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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담긴 더불어 사는 삶의 뜻

나무에 담긴 더불어 사는 삶의 뜻
2026.06

에세이

서울의 소울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나무 인문학자

나무에 담긴 더불어 사는 삶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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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문자 지원

서울의 땅 한 평이 지닌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꿈의 자리이고,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삶터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기대어 설 마지막 울타리다.
그래서 한 그루 나무가 서울 한복판에 넉넉한 땅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그 자리가 우연히 남은 빈터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부러 내어준 자리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무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너른 땅을 차지한 채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은행나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흥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나무 높이나 줄기의 굵기 등 규모보다는 높이 솟은 고층 아파트 사이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서 있던 그 존재감이 건넨 감흥은 여느 큰 나무에서 받았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높이 25m, 가슴높이직경이 10.7m에 이른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정밀 측정에 따르면 수령은 550년쯤 됐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이보다 더 크고 더 오래된 은행나무가 하고하다. 높이 40m를 훌쩍 넘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도 있고, 가슴높이직경 15m가 넘는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도 있으며, 1,200년쯤 살았다고 전하는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도 있다. 그럼에도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가 내게 남긴 감흥은 남달랐다. 여기는 서울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평생 자기 땅 1평 마련하기 어려운 ‘비싼’ 도시다. 집과 길과 상가와 아파트가 여백을 밀치고 빽빽이 들어서는 곳이다. 그런 도시 한가운데에서 토지세 한 푼 내지 않는 나무가 넓은 자리를 얻어 홀로 서 있다는 사실은 내게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왔다. 오로지 나무 한 그루의 보금자리로 마련된 공간은 나무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해주었다. 즐비한 고층 건물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고 제 품을 펼치는 나무의 융융한 자태는 여느 큰 나무와도 견주기 어려울 만큼 묵직한 존재감을 지녔다.

나무에 자리는 곧 목숨이다. 사람이나 동물은 살던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먹이를 찾아 길을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무는 그러지 못한다. 한번 뿌리내린 자리가 평생 보금자리다. 그늘이 짙어지면 이를 견뎌야 하고, 땅이 굳어지면 굳은 흙 속에 뿌리를 밀어 넣어야 한다. 바람길이 막히면 막힌 바람 속에서 잎을 나부껴야 한다. 나무의 운명은 뿌리내린 자리의 너그러움과 냉정함에 단단히 묶인다.

방학동 은행나무도 한때 그런 시간이 있었다. 1990년대 들어 나무 곁으로 사람들의 삶터가 가까이 다가오던 때였다. 빌라와 아파트가 들어서고, 살림집의 울타리가 나무 가까이 놓였다. 사람살이의 당연한 확장이지만, 나무로서는 생명의 위협이었다. 햇빛은 줄고, 바람길이 막혔으며, 뿌리 둘레의 흙은 숨 쉴 틈 없이 눌렸다. 순식간에 나무의 생육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일부러 해치려 한 건 아니지만, 사람살이가 조금씩 넓어지는 사이에 하릴없이 맞이한 사정이다. 금싸라기 서울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나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나무

방학동 은행나무가 특별해진 것은 그다음부터다. 사람들은 나무의 안위를 걱정했고, 나무를 살릴 묘책을 떠올리며 지자체와 숙의했다. 구청에서는 병든 가지를 다듬고, 썩어 빈 곳을 메우는 외과 수술을 시행하며 나무의 생육을 도왔다. 그래도 나무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몇 차례의 외과 수술과 영양제를 보충하는 정도로 좋아지는 걸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정밀 진단 결과 나무 곁의 건물이 뿌리 생육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무에 금싸라기 땅을 내줄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이때 도봉구는 빌라 두 동 12가구를 매입해 철거하고 나무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기적 같은 결정을 내렸다. 총 40억 원 넘는 예산을 들여 약 1,421m²(약 430평) 규모의 공원을 조성했다.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면적은 548m²에 이른다. 각박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 오래된 생명에게 내어준 것이다.

방학동 은행나무는 지역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나무라는 점을 인정받아 2013년에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제 살림의 일부를 물리고, 나무의 생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는 특별함이 서울을 대표하는 나무로 지정한 이유일 게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나무와 더불어 살기 위한 도시의 결정이 방학동 은행나무를 마침내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나무 앞에서 다른 어떤 은행나무와는 다른 감흥을 느낀 이유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줄기 한쪽에는 썩어 들어간 자리가 있고, 외과 수술로 메운 흔적도 남아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나뭇가지는 지지대의 도움을 받는다. 부러질 듯하면서도 버티고, 비어 있으면서도 다시 차오르는 생명의 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흠 하나 없이 완전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도 다시 하루를 살아내기에 귀한 것이다.

서울은 빠르게 풍경이 바뀌며 사람살이가 이어지는 도시다. 오늘의 풍경이 내일이면 달라지고, 오래된 것은 새것에 자리를 내어준다. 오래된 나무 그늘에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지나갔고, 누군가의 느린 발걸음이 머물렀으며, 수많은 계절의 빛과 비와 바람이 겹겹이 쌓였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 앞에 서면 더불어 산다는 것이 결국 서로에게 조금씩이라도 자리를 내주는 일이라는 것을 돌아보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고,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도 그렇다. 한 뼘의 그늘과 한 줄기 바람이 드나드는 길을 남겨두는 마음은 결국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사람살이를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짓는 결정적 바탕이다. 방학동 은행나무는 세상에 홀로 아름다운 생명은 없다는 지엄한 사실을 곰곰 짚어보게 하는 서울의 큰 나무다.

글, 사진.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이자 나무 인문학자.
전국의 노거수와 특별한 나무들을 기록하며, 그 안에 담긴 사람과 지역의 이야기를 전해 왔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이 땅의 큰 나무>, <나무가 말하였네> 등 37권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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