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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의 계보 '레트로 디저트', 그 달콤한 기억

단맛의 계보 레트로 디저트, 그 달콤한 기억
2026.06

여행

취향의 발견

단맛의 계보 '레트로 디저트', 그 달콤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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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문자 지원

어릴 적 동네 빵집 쇼윈도를 들여다보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화려한 크림으로 장식된 홀케이크가 진열장 안에서 빛나던 순간, 우리는 이미 그 달콤함의 계보 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유학파 파티시에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한국만의 방식으로 뿌리내린 레트로 디저트는 여전히 남녀노소의 마음 한편을 두드린다.
그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보다 훨씬 깊고 단단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박준우 셰프가 서울의 디저트 명가를 찾아 ‘서울 디저트 로드’를 연재합니다.
한식 디저트부터 유럽 정통 파티스리까지, 각 디저트에 담긴 철학과 문화적 배경,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장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일본을 건너온 달콤함

오늘날 파티시에들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파리의 에콜 페랑디나 르코르동 블뢰에서 기초를 익히고 돌아온 이들이 지금의 서울 카페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나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다. 한국 제과·제빵 1세대는 일본을 통해 서양 기술을 받아들인 이들로, 프랑스 제과를 일본이 먼저 소화하고, 그 일본에서 배운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와 빵집을 열었다. 직수입이 아닌 ‘경유’의 맛. 그래서 한국의 레트로 빵집들이 품은 풍미는 어딘가 독특하다. 프랑스도 일본도 아닌, 한국만의 방식으로 토착화된 달콤함이랄까.
그 맛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 빵집 진열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단팥빵, 크림빵, 초코빵, 소라빵, 사라다빵까지 저마다의 속재료와 모양으로 줄지어 놓여 있던 것들. 당시에는 ‘디저트’라기보다는 ‘간식’에 가까웠고, 접시 위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봉투에 담겨 손에 들려 가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들도 좋아하는 맘모스빵, 생일날에야 겨우 받을 수 있었던 홀케이크 같은 것 말이다. 요즘에야 어딜 가도 흔하지만, 그 시절 쇼윈도 앞에서 두근거리던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동네 빵집에서 피낭시에나 마들렌이라 불리던 것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파운드케이크 반죽을 다른 모양의 틀에 구워낸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먹으라면 좀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했던 시절이었으니 이나마 다행이랄까.

나폴레옹과자점의시그너처 아이템인 초코체리생크림 케이크

나폴레옹과자점의 시그너처 아이템인 초코체리생크림 케이크.
동물성 생크림 100%와 고급 커버처 초콜릿을 갈아 깊은 맛이 남다르다.

제과 ·제빵 사관학교

1968년 문을 연 나폴레옹과자점을 빼놓고 한국 레트로 디저트를 말할 수는 없다. 서울 3대, 4대 빵집을 꼽는 자리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이름이고, 장인 정신과 역사성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빵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이 진정으로 대단하다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어서가 아니다. 이 집에서 손을 단련하고 떠나간 사람들이 대한민국 제과의 지형도를 다시 그렸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4년까지 국가가 공인한 제과 명장은 전국에 16명. 그중 7명이 나폴레옹과자점 출신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권상범(리치몬드과자점), 서정웅(코른베르그), 김영모(김영모과자점), 홍종흔(골드헤겔), 인재홍(빵과당신), 최형일(엘리제과자점), 마옥천(베비에르) 등 각자의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 뿌리를 내린 이들이 모두 나폴레옹과자점이라는 한지붕 아래에서 반죽을 치댔다.
사관학교라는 비유가 어쩌면 정확하다. 장인 한 명이 아니라 명장의 세대를 길러낸 곳, 그것이 나폴레옹과자점의 진짜 유산이다.

나폴레옹과자점과 나 사이에 직접적 인연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친할머니가 이 집을 정말 좋아하셨다.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커피 한 잔 드신 뒤 나폴레옹과자점에 들르는 것이 할머니의 작은 루틴이었다. 공주처럼 사셨고, 고급문화를 누리는 것을 삶의 태도로 삼으신 분. 어쩌면 그 감각이 어떤 경로로든 흘러들어, 내가 이 길을 걷게 된 자양분이 됐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마음을 품고 성북 본점을 찾아가 봤다. 현재 자리에 오기까지 나폴레옹과자점에도 한 번의 이사가 있었다.

청계천 복원 공사 당시 원래 매장 자리를 비워야 했고, 그렇게 성북으로 터를 옮겨 지금에 이르렀다. 도시의 물길이 되살아나는 동안 빵집은 자리를 옮겨 계속 반죽을 빚었다는 이야기가, 이상하게도 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양인자 회장이 남편 故 강인정 회장과 함께 일군 가게. 그 손에서 시작된 빵집이 이제 아들딸 3남매의 손을 거쳐, 다시 그 자리에서 대를 이어 빵을 만들고 있는 강경원 팀장에게로 이어졌다. 3대가 같은 반죽을 빚고 있는 셈이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성북 본점에서는 베이킹 클래스도 운영 중인데, 나폴레옹에서 배워 나간 명장들이 전국에 빵집을 열었듯, 이번에는 일반인들이 그 손맛을 직접 이어받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레트로 디저트란 결국 ‘시간을 구워낸 맛’이라는 생각이 든 건 그 이야기를 들은 직후였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수십 년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온 것들. 그 일관성 자체가 이미 하나의 철학이고, 그 철학이 곧 맛이 된다는 것을.

나폴레옹과자점 강경원 팀장

3대째 이어온 나폴레옹과자점 강경원 팀장. 박준우 셰프에게 본점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추억은 왜 달콤한가

레트로 디저트가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화려한 무스 케이크, 섬세한 봉봉 쇼콜라, SNS를 위한 비주얼 디저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왜 오래된 크림 케이크와 단팥빵으로 돌아가는가. 아마도 그것은 ‘기억이 있는 맛’ 때문일 것이다. 맛이라는 감각은 냄새와 함께 가장 강력하게 기억과 연결된다. 처음 먹는 맛도 훌륭할 수 있지만, 기억과 연결된 맛은 뇌 속 다른 회로를 자극한다는 걸 우리 몸이 이미 알고 있다.

한국 레트로 디저트는 단순히 ‘옛날 빵’이 아니다. 일본을 경유한 서양 제과가 한국의 재료 또는 입맛과 만나 독자적으로 진화한 하나의 카테고리다. 단팥빵의 촉촉한 팥소, 소라빵의 나선형 결, 사라다빵의 고소한 마요 속재료. 이것들이 쌓여 하나의 문화가 됐고, 그 문화 안에서 명장들이 배출됐다. 그 달콤한 계보를 이해하고 나면 동네 빵집 쇼윈도가 조금 달라 보인다. 진열장 안에 반세기의 역사가 담겨 있으니까.


글. 박준우

벨기에에서 제과·제빵과 쇼콜라티를, 파리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 1 준우승과 <냉장고를 부탁해>,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1> 출연으로 대중과 만났다. 스스로를 ‘셰프보다는 기자’라 불리길 원하는 그는 <맛있는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푸드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현재 서촌에서 유럽 정통 디저트 카페 ‘오쁘띠베르’를 운영하며 음식의 철학과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글을 이어가고 있다.

+ 한국 레트로 디저트의 언어 지층

서양의 디저트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닿는 동안 단어들도 함께 변형됐다.
그 흔적을 읽으면 레트로 디저트의 지도가 보인다.

pão(포) → パン(일) → 빵(한): 한국인이 매일 쓰는 이 단어 자체가 경유의 역사다. 16세기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에 도래할 때 가져온 말 pão(파웅)이 일본에서 パン(팡)으로 정착했고, 그것이 다시 한국어 ‘빵’이 되었다.


생크림 케이크

生クリ一ム(일) -→ 한국 표준: 서양 생일 케이크가 버터크림으로 장식되는 것과 달리, 한국의 레트로 케이크는 왜 눈처럼 하얄까. 일본이 먼저 생크림(生クリ一ム) 데커레이션 케이크를 발전시켰고, 그 스타일이 한국에 이식되어 ‘생일 케이크=흰 생크림 케이크’라는 공식으로 굳었다. 가볍고 덜 달다는 이유로 한국 입맛에도 빠르게 뿌리를 내렸다.


소보로

そぼろ(일) -→ 소보로(한): 원래 일본어 そぼろ는 다진 고기나 생선, 달걀을 양념해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볶은 요리를 가리키는 말. 빵 위에 부슬부슬하게 얹힌 쿠키 반죽이 다진 고기 모양을 닮았다 하여 한국에서 소보로빵이라 불리게 되었다. 소보로빵은 한국의 독자적 스타일로, 일본에는 없는 메뉴다.


앙금()

(중) -→ あん(일) -→ 앙금(한): 단팥빵 속 팥소를 가리키는 말. 중국의 ‘소()’ 개념이 일본을 거쳐 들어왔지만, 한국의 단팥빵은 일본 앙팡(あんパン)보다 반죽이 훨씬 부드럽고 달게 변형됐다.


홀케이크

서양에 없는 한·일 고유의 표현으로, 영어권에서 케이크는 그냥 ‘케이크’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자르지 않은 온전한 원형 케이크를 굳이 ‘홀케이크(ホ一ルケ一キ)’라고 따로 부른다. 조각 케이크와 구별하기 위해 생겨난 말인데,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케이크를 통째로 받는 일이 (생일에도) 특별한 의미였다는 뜻이다

오래된 것이 가장 오래 남는다

유행은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같은 맛을 지키는 가게가 있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아도 줄이 끊이지 않는 곳, 처음 맛본 날의 기억이 오늘도 발걸음을 이끄는 곳.
서울의 시간을 담은 레트로 과자점 세 곳으로 향한다.

나폴레옹과자점

서울의 빵 사관학교

나폴레옹과자점

1968년 성북구 삼선교에서 처음 문을 연 나폴레옹과자점은 서울 3대 빵집이자 전국 5대 빵집으로 꼽히는 곳이며,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유일한 베이커리다. ‘제과·제빵 사관학교’라는 별명처럼, 1970~1980년대 이곳에서 기술을 익힌 제빵사들이 독립해 한국 제과업계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나폴레옹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사라다빵은 두툼한 빵 속에 감자와 양배추, 고기를 가득 채워 점심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매진된다. 팥을 으깨지 않고 알갱이 그대로 넣어 구운 통팥빵, 달콤한 초콜릿빵도 놓칠 수 없는 맛을 자랑한다.

대표 메뉴 사라다빵 6,000원, 통팥빵 3,300원, 초콜릿빵 3,300원
위치 성북구 성북동(본점)
인스타그램 @napoleon.bakery

나폴레옹과자점 내부


리치몬드과자점

밤이 익는 시간만큼 깊은 맛

리치몬드과자점

1979년, 나폴레옹과자점에서 기술을 다듬고 일본 연수까지 마친 권상범 명장이 마포구 성산동에 자신의 간판을 내걸었다. 리치몬드과자점은 진한 우드 인테리어와 샹들리에가 어우러져 특유의 레트로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권 명장이 세상에 처음 내놓은 밤식빵은 현재까지도 이곳의 대표 메뉴다. 공주 밤을 육면체로 잘라 식빵 반죽에 넣어 촉촉한 빵결 사이사이 박힌 밤이 고소한 식빵을 완성한다. 크림을 가득 채운 슈크림, 달콤 상큼한 레몬 케이크도 이 가게의 오랜 단골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대표 메뉴 밤식빵 1만1,000원, 슈크림 3,700원, 레몬케이크 세트 2만5,400원
위치 마포구 성산동(본점)
인스타그램 @richemont_bakery

리치몬드과자점 내부


김영모과자점

명장의 손이 빚어낸 40년 발효의 시간

김영모과자점

대한민국 제과명장 김영모와 프랑스 국가공인 명장(MOF) 김영훈 셰프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베이커리. 1995년 국내 최초로 천연발효법을 성공시켜 현재까지 천연발효를 통해 빵을 만들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김영모과자점의 시그너처는 1993년부터 판매하고 있는 몽블랑이다. 브리오슈에 럼을 적셔 먹는 프랑스 전통 디저트 ‘바바 오 럼’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결을 따라 뜯어먹는 맛이 별미다. 또 특별한 비법으로 만든 화이트 소스로 맛을 낸 바게트 샌드위치도 김영모과자점의 베스트 메뉴.

대표 메뉴 몽블랑 9,000원, 바게트 샌드위치 1만 500원
위치 서초구 서초동(본점)
인스타그램 @kimyoungmo_official

김영모과자점 내부

이혜리 사진 심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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