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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이 정원이 되는 계절

서울숲이 정원이 되는 계절
2026.06

여행

서울 스타일

서울숲이 정원이 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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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서울숲은 이미 무성하다.
신록이 짙어져 그늘이 생기고, 주말이면 잔디가 돗자리로 뒤덮인다.
맨발로 걷는 사람, 나무 아래 앉아 쉬는 사람,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강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
서울에서 이렇듯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올여름 서울숲에 한 겹이 더 얹혀 공원 전체가 정원이 됐다.

알레산드로 트리벨리 작가의 ‘PopK Garden’. 보자기 직조에서 출발해 기하학과 색채로 풀어냈다. 분홍색 정자를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유연하게 포개진다.

알레산드로 트리벨리 작가의 ‘PopK Garden’. 보자기 직조에서 출발해 기하학과 색채로 풀어냈다. 분홍색 정자를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유연하게 포개진다.

도시 속 정원, 정원 속 도시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지난 5월 1일 개막해 10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서울숲을 중심으로 성수동, 한강, 뚝섬 일대를 하나로 묶은 이 행사는 박람회장이라기보다 도시 속 대정원에 가깝다. 경계가 느슨하고, 입구가 여럿이라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무방하다. 서울숲에서 성수동 골목, 한강 변까지 도시 어디서든 5분이면 정원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정원이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일상의 반경 안에 있다는 것, 정원이란 원래 그래야 한다고, 이 공간은 조용히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한 번만 와서는 다 볼 수 없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식물이 자라고, 빛이 달라지고, 그늘의 위치가 옮겨 간다. 6월과 10월의 서울숲은 같은 공간이지만 분명 전혀 다른 정원이다.

앙리 바바 작가의 ‘흐르는 숲 아래 정원’. 빛이 내려오는 천개 아래 반사못과 하층 식재가 그늘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앙리 바바 작가의 ‘흐르는 숲 아래 정원’. 빛이 내려오는 천개 아래 반사못과 하층 식재가 그늘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가우리 사탐, 테제시 파틸의 ‘서울에 머물다 정원’. 파란 직육면체와 분홍색 돌이 수목 사이에 놓이며 서울의 시간을 정원 언어로 옮긴다. 전통 정원에서 메타버스적 도시 경관까지 한자리에 모두 담았다.

가우리 사탐, 테제시 파틸의 ‘서울에 머물다 정원’. 파란 직육면체와 분홍색 돌이 수목 사이에 놓이며 서울의 시간을 정원 언어로 옮긴다. 전통 정원에서 메타버스적 도시 경관까지 한자리에 모두 담았다.

서울류(流)로 읽은 5개의 시선

올해 작가정원 국제 공모 주제는 ‘서울류(流)-The Wave of Seoul’이었다. 한류를 넘어 ‘서울다움’을 정원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해외 작가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서울을 해석했고, 한국 작가들은 익숙한 도시 풍경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거대한 조형물 대신 식물의 결, 사람의 동선, 머무르는 감각에 집중했다. 정원은 박람회가 끝난 이후에도 철거되지 않고 서울숲에 남아 지속 가능한 예술정원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초청정원도 눈여겨볼 만하다. 프랑스 조경가 앙리 바바의 ‘흐르는 숲 아래 정원’은 서울숲 잔디광장 동측에, 국내 조경가 이남진의 ‘기다림의 정원’은 성수수제화공원 안에 자리한다. 두 정원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성수동 골목을 통과하고, 수제화공원 앞을 지나는 동선 자체가 이미 정원의 일부다.

시민 정원 두리안 팀의 ‘창, 바라보다’. 창은 안과 밖을 나누면서도 서로를 바라보게 한다. 완전히 볼 수 없기에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풍경을 품는다.

시민 정원 두리안 팀의 ‘창, 바라보다’. 창은 안과 밖을 나누면서도 서로를 바라보게 한다. 완전히 볼 수 없기에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풍경을 품는다.

느긋하게 가꾼 도시

서울은 오랫동안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였다. 뭔가를 짓고, 채우고, 채운 것을 다시 바꾸는 속도로 여기까지 왔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이 도시에서 해마다 자리를 넓혀 가는 것은, 서울이 조금씩 다른 속도를 배우고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
정원은 서두르면 안 된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 손길은 정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공원이 늘고, 골목 어귀에 화분이 놓이고, 옥상에 작은 텃밭이 생긴다.
정원을 가꾸는 일이 곧 도시를 가꾸는 게 된다. ‘정원도시 서울’은 아직 완성된 말이 아니라 지금 이 도시가 만들어가고 있는 문장이다.
6월의 서울숲에서 조금 천천히, 바람이 풀 냄새를 실어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정원 안에 있을 것이다.

자오옌 판, 위쉬안 니우 작가의 ‘어반 위빙 정원’. 보자기에서 영감받은 직조형 식재로 잠자고 있던 부지를 살아 있는 경관으로 되살렸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생물 다양성 속에서 사람과 자연과 역사가 이어진다.

자오옌 판, 위쉬안 니우 작가의 ‘어반 위빙 정원’. 보자기에서 영감받은 직조형 식재로 잠자고 있던 부지를 살아 있는 경관으로 되살렸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생물 다양성 속에서 사람과 자연과 역사가 이어진다.

자오옌 판, 위쉬안 니우 작가의 ‘어반 위빙 정원’. 보자기에서 영감받은 직조형 식재로 잠자고 있던 부지를 살아 있는 경관으로 되살렸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생물 다양성 속에서 사람과 자연과 역사가 이어진다.

박소율 사진 방석현, 유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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