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이 오래된 이름을 다시금 불러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하면서 유배지였던 영월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지만, 서울에서도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
조선 제6대 왕, 열두 살에 즉위해 열다섯에 왕위를 내주고 열일곱에 생을 마감한 단종.
그 이야기의 무대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매일 오가는 서울 한복판에 단종과 정순왕후, 그리고 그를 따른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단종의 서울
왕위에 오르고, 왕위를 내주고, 마지막 이별을 한 세 곳.
창덕궁에서 경회루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이며, 그 짧은 거리 안에 즉위의 기쁨과 양위의 슬픔이 모두 담겨 있다.

옥새를 건넨 연못가 누각 경복궁 경회루
즉위 3년 만인 1455년 윤 6월, 단종은 이곳에서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건넸다. 나이 열다섯이었다. ‘경사를 나누는 누각’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날 이 자리에서 한 시대가 조용히 닫혔다. 연못에 비친 누각은 지금도 아름답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그날의 씁쓸함을 떠올리게 한다.
찾아가기 종로구 사직로 161, 능유적본부 누리집(royal.khs.go.kr)에서 관람 여부 확인 가능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손을 놓은 청계천 돌다리 영도교
1457년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유배길에 올랐다. 정순왕후가 이 다리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 원래 이름은 ‘영이별교(永離別橋)’. 그해 단종은 영월에서 세상을 떠났고, 두 사람의 이별은 그대로 영영 작별이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름은 영도교로 굳어졌지만, 다리가 품은 사연은 지워지지 않았다.
찾아가기 종로구 숭인동, 청계천 7가 인근

열두 살 소년이 왕이 된 자리 창덕궁 인정전
1452년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뜨자, 열두 살 세손이 이곳 인정전에서 즉위했다. 단종이다. 즉위 이듬해 계유정난으로 대신들이 차례로 제거됐고, 숙부 수양대군의 세력은 점점 커졌다. 왕의 자리에 오른 곳이지만, 그것이 비극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봄이면 후원에 꽃이 피고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지금도 인정전 월대는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찾아가기 종로구 율곡로 99, 월요일 휴관
정순왕후의 서울
단종의 부인이었던 정순왕후.
단종이 폐위되는 순간 왕비의 신분도 함께 사라졌다. 돌아갈 궁도, 기댈 왕실도 없어진 자리에서 그녀가 살아낸 흔적이 낙산 자락에 남아 있다.

정순왕후가 비구니로 살다 간 낙산 자락 사찰 청룡사(정업원 터)
조선 시대 남편을 잃거나 폐위된 왕실 여성들이 머물도록 지정된 비구니 사찰. 궁으로 돌아갈 수 없던 정순왕후에게 정업원은 유일한 거처였다. 삭발한 그녀는 평생 이곳에 머물렀다. 지금의 청룡사 경내에는 영조가 친히 왕후의 절개를 기려 세운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비석이 남아 있다.
찾아가기 종로구 동망산길 65


정순왕후가 매일 동쪽 하늘을 바라보던 언덕 동망봉
청룡사 바로 뒤편에 있는 봉우리. 단종이 유배된 뒤 왕후가 날마다 이곳에 올라 영월을 향해 명복을 빌었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동망(東望)은 동쪽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훗날 영조가 봉우리 바위에 친필로 ‘東望峰’이라 새겼지만, 일제강점기에 이 일대가 채석장으로 뜯기면서 글씨는 사라졌다. 지금은 숭인근린공원으로 조성된 산책로 한편에 표석을 세워 그 이름과 유래를 전하고 있다. 인근에는 왕후가 올랐던 자리임을 기리는 정자 동망정이 남아 있다. 봉우리 정상에 서면 지금도 동쪽으로 시야가 탁 트인다.
찾아가기 종로구 숭인동 58-70 일대

정순왕후가 손수 천을 물들이던 바위 자주동천
단종이 폐위되면서 왕비 신분을 잃은 정순왕후는 창신동 일대에서 옷감을 물들이며 생계를 이었다고 전한다. 옷감을 물들이던 샘이 자지동천(紫芝洞泉, 흔히 ‘자주동천’으로 불림)으로, 자줏빛 풀이 넘치는 샘물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바위에 네 글자가 남아 있다. 현재 이 자리에는 조선 중기 문인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집필한 초가집 비우당(庇雨堂)이 복원되어 자주동천과 한 울타리 안에 있다.
찾아가기 종로구 창신동 일대
그를 따른 사람들
단종 곁에는 목숨을 걸고 복위를 도모한 신하들이 있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한강 남쪽 언덕에는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아 있다.


절의를 택한 여섯 신하의 묘가 있는 노량진 언덕 사육신공원
1456년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가 처형됐다. 세조의 회유를 끝까지 거부하고 혹독한 고문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노량진 언덕에 묘와 신도비, 의절사가 남아 있다. 봄이면 이곳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찾아가기 동작구 노량진로 191, 연중무휴
글 이선민 사진 정지원 사진 제공 서울관광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