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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문장 그날의 얼굴

그날의 문장 그날의 얼굴
2026.03

이슈

특별 기획

그날의 문장 그날의 얼굴

117

음성·문자 지원

107년 전 거리에 울려 퍼진 선언문의 문장, 흑백사진 속 멈춰 있는 얼굴.
독립선언서 현대어 번역과 A I 컬러 복원 사진으로 3 · 1절을 다시 만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독립선언서 자료(DSK001_01_00V0000_482-001)

독립선언서 원문 이미지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독립선언서 자료(DSK001_01_00V0000_482-001)를 활용했습니다

독립선언서, 오늘의 말로 읽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서명한 기미독립선언서가 발표됐다. 한문투 원문은 107년이 지난 지금 읽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준비했다. 그날의 첫 문장부터, 지금의 말로.

원문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오늘의 말
“우리는 지금 선언한다. 조선은 독립한 나라이고, 조선 사람은 자주적인 국민이다.”

원문
“今日 吾人의 所任은 다만 自己의 建設이 有할 뿐이오, 決코 他의 破壞에 在치 안이하도다.”
오늘의 말
“오늘날 우리가 맡은 임무는 다만 자기의 건설에 있을 뿐이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지 않다.”

원문
“아아 新天地가 眼前에 展開되도다. 威力의 時代가 去하고 道義의 時代가 來하도다.”
오늘의 말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위세와 힘을 앞세우는 시대는 가버리고 도덕과 의리를 존중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원문
“着手가 곳 成功이라. 다만 前頭의 光明으로 驀進할 따름인뎌.”
오늘의 말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찬란한 앞날을 향해 곧장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다.”

원문
一、今日 吾人의 此擧는 正義、人道、生存、尊榮을 爲하는 民族的 要求ㅣ니,
오즉 自由的 精神을 發揮할 것이오. 決코 排他的 感情으로 逸走하지 말라.
一、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 民族의 正當한 意思를 快히 發表하라.
一、一切의 行動은 가장 秩序를 尊重하야 吾人의 主張과 態度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하게 하라.”
오늘의 말
하나. 오늘날 우리의 이 행동은 정의와 인도 그리고 생존과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민족적 요구에서 나온 것이니,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발휘할 것이며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마음껏 발표하라.
하나. 일체의 행동은 무엇보다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원문
朝鮮建國四千二百五十二年三月一日 朝鮮民族代表
오늘의 말
조선 건국 4252년 3월 1일 조선민족대표

2026 해시태그로 옮긴다면?

#대한독립 #우리는자유롭다 #시작이곧성공 #정의 #인권 #민주주의 #2천만의외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독립선언서 원문 보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독립선언서 원문 보기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서 독립선언서 원문 일부와 해설 보기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서 독립선언서 원문 일부와 해설 보기

그날의 얼굴, 흑백에서 컬러로

우리가 아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은 대부분 흑백사진 혹은 수형 카드 속 굳은 표정이다. 최근 AI 복원 기술로 그 얼굴들이 컬러로 되살아나고 있다.
흐릿했던 윤곽이 선명해지고, 흑백이던 피부와 옷에 색이 입혀지면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았을 법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유관순

유관순 (1902~1920) ©AI기억공작소

유관순 (1902~1920)

3·1운동에 참여하고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 끝에 18세로 순국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윤봉길

윤봉길 (1908~1932) ©2025. 기억복원소 All rights reserved

윤봉길 (1908~1932)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수뇌부에 폭탄을 투척해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사나이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라.”

안창호

안창호 (1878~1938) ©AI기억공작소

안창호 (1878~1938)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 흥사단 창립. 교육과 실력 양성을 통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김상옥

김상옥 (1889~1923) ©2024. 기억복원소 All rights reserved

김상옥 (1889~1923)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뒤 일본 군경 1,000여 명과 홀로 시가전을 벌이다 순국했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서울 속 독립의 길

107년 전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진 현장이 서울 도심 곳곳에 남아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구 통일로 251)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고문당한 현장. 옥사, 사형장, 지하 고문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탑골공원 팔각정.

탑골공원 팔각정.

탑골공원 팔각정(종로구 종로2가)

1919년 3월 1일 오후, 학생 대표가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군중이 시내로 쏟아져 나간 3·1운동의 출발점. 기미독립선언서 기념비와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태화관 터(현 태화빌딩) (종로구 인사동5길 29)

민족 대표 29명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장소. 학생들과의 충돌을 우려해 탑골공원에서 이곳으로 옮겨 선언했다.

수송공원(보성사 터) (종로구 수송동 80-7)

독립선언서 3만 5,000장을 인쇄한 보성사가 있던 자리. 인쇄된 선언서를 운반하던 중 검문에 걸렸을 때 ‘족보를 찍는 중’이라 둘러대 위기를 넘겼다.

경교장.

경교장.

경교장(종로구 새문안로 29)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장소.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해 머물렀던 곳이다.

이선민 / 독립선언서 해설. 국사편찬위원회 사진 제공. 독립기념관, 서울관광재단, 한국관광공사 AI 복원 사진 제공. 기억복원소, AI기억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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