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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던 지하철역의 새로운 얼굴

익숙하던 지하철역의 새로운 얼굴
2026.02

문화

서울 트렌드

익숙하던 지하철역의 새로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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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역을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플랫폼과 통로 사이에서 하루를 채워줄 작은 쉼표가 기다리고 있다.

서울의 지하는 오랫동안 어둡고 분주한 공간으로 인식돼 왔다. 출근길엔 발걸음을 재촉하기 바쁘고, 퇴근길엔 하루의 피로가 고스란히 내려앉던 곳이다. 지하철역은 늘 ‘지나쳐야 할 공간’일 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서울의 지하철역이 변화하고 있다. 차갑게 느껴지던 형광등 조명은 간접조명으로 바뀌어 공간의 밝기를 낮추고, 플랫폼 가장자리에는 화분과 목재 벤치가 놓여 짧은 휴식을 허락한다. 개찰구를 지나면 작은 서가나 전시 공간이 눈에 띄고, 출근길 시민들은 책 제목을 훑으며 잠시 시선을 멈춘다. 지하철역은 여전히 분주하지만, 움직임 사이사이에 머무는 시간이 끼어들었다. 서울의 지하는 지금, 빠른 이동을 위한 공간에서 일상의 감각을 회복하는 도시의 또 다른 생활 무대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입구

지하철역이자 유적 전시장으로 기능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입구.

지하철 역사에 마련된 편안한 힐링 공간

지하철 역사에 마련된 편안한 힐링 공간.

서울 지하철역 곳곳에서 만나는 휴식

2호선과 4호선, 5호선이 교차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는 알록달록한 색감의 힐링 존이 마련되어 있다. 플랫폼과 연결 통로 한쪽에 조성된 이 공간은 이동 중 잠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쉼터 역할을 한다. 퇴근길에 이곳을 찾은 김세창 씨는 콘센트 옆 좌석에 앉아 휴대폰을 충전하며, 가방을 내려놓고 다리를 쭉 뻗은 채 메시지를 확인한다. 김 씨는 “환승 대기 시간이 늘 부담스러웠는데, 잠깐이라도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표 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잠시 몸을 쉬면 피로가 풀리고, 이후 일정도 한결 수월하게 느껴진다.
6호선 녹사평역의 실내 정원은 ‘머무르는 역사’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일부러 한 정거장 일찍 내려 이 공간을 찾는다는 오미정 씨는 계단식으로 조성된 휴식 공간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곳곳의 녹지를 살핀다. 지하철역 안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공기가 다르다. 자연광과 600여 그루 식물이 어우러져 ‘지하 정원형 미술 공간’ 이라는 평가가 어울릴 만큼 짧은 산책만으로도 도시 속 작은 휴양지에 온 듯한 여유를 느끼게 한다.
충무로역의 재미동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취향을 즐기는 시민들의 공간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들른 주한영 씨는 만화책 서가 앞에서 한참 머물며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읽는다. 책을 읽은 후에는 맞은편 영상 공간으로 이동해 단편 애니메이션이나 웹툰 영상을 감상하며, 이동 중이지만 작은 문화 관람 시간을 가진 듯한 만족감을 느낀다. 주 씨는 “집에 가기 전 잠깐 나만의 시간을 갖기 좋다”라며, 출퇴근길의 일상에 작은 즐거움을 더해 주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지하철역이 시민이 잠시 자기만의 취향과 시간을 경험하는 개인화된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유적지 배경의 포토 존에서 사진을 찍는 시민.

충무로역에 마련된 영상 아카이브 공간

동선과 편의를 동시에 고려한 환승역의 힐링 존.

오미정

“ 겨울철에도 싱그러운 녹음 덕분에 차갑고 삭막하게 느껴지던 지하 공간이 작은 숲속 산책로처럼 느껴져요.
식물을 구경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바쁜 출근길에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식물원이 연상되는 독특한 구조 덕분인지, 잠시 멈춰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습니다.”

- 오미정

녹사평역의 전시

녹사평역의 전시

‘벽’을 주제로 한 녹사평역의 전시.

지하철역, 새로운 도시 풍경을 만들다

서울 지하철역은 단순히 ‘지나가는 공간’을 넘어 머물며 경험하는 장소로 재구성되고 있다. 도심의 바쁜 일상에서도 짧지만 의미 있는 휴식과 회복,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책과 문화가 스며든 공간도 늘고 있다. 1호선 종각역은 대형 서점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출퇴근길에 책 제목을 훑어보는 장면이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지하철역을 무대로 한 문화 라운지와 전시도 점차 늘고 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환승 통로와 시청역과 을지로역 연결 통로, 우이신설선 각 역사를 비롯한 역사 내 유휴 공간에서는 소규모 예술 전시가 열리고, 시민들은 발걸음을 옮기다 잠시 멈춰 시각 예술을 감상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지하철역은 이동 통로에 불과하다’는 오랜 인식을 서서히 흔들고 있다. ‘비워진 자리’ 역시 중요한 실험 대상이다. 플랫폼과 연결 통로에 놓인 벤치와 조경 요소는 단순한 휴식 시설을 넘어 잠시 숨을 고르거나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러한 변화가 왜 지하철역에서 먼저 시작되는지에 대한 질문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서울의 지하철역은 하루 수백만 명이 오가는 도시의 심장부다. 다양한 사람들이 짧은 시간 안에 밀도 높게 교차하는 공간이기에, 공공 정책과 문화 실험이 가장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동시에 시민의 반응과 기대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도시 실험실’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공공 공간이 시민의 심리적 안정과 일상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해외 주요 도시 사례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하루 수백만 명이 오가는 지하철역은 이러한 공공적 개입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장소로서 새로운 도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역내 체험 공간.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역내 체험 공간.

지하철역은 도시 문화 인프라가 되고 있다.

지하철역은 도시 문화 인프라가 되고 있다.

자히드 라흐모노프

“ 서울에 산 지 5년이 되어가는데, 서울 지하철역은 발길을 붙드는 흥미로운 공간이 많아요.
충무로역에서 영상이나 만화책을 보는 동안, 바쁜 하루 속에서 작은 여유를 느낍니다.
지하철역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휴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신기하고 매력적이에요.”

- 자히드 라흐모노프

가장 바쁜 공간에 놓인 쉼표

서울의 지하철역 활용이 주목받는 가운데, 런던·뉴욕·도쿄 등 세계적 대도시도 지하철역을 ‘도시의 공공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각 도시는 성격에 맞는 방식으로 역사 공간을 확장해 왔다.
런던 지하철은 오래전부터 공공 예술 실험장으로 활용돼 왔다. 대표적 사례가 ‘아트 온 더 언더그라운드(Art on the Underground)’ 프로그램으로, 킹스크로스세인트판크라스역, 토트넘코트로드역 등은 대형 공공 미술과 디자인 요소를 결합해 역 자체가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 기능한다. 뉴욕 지하철 사람과 이야기가 모이는 장소에 가깝다. ‘뮤직 언더 뉴욕(Music Under New York)’ 프로그램을 통해 공식 등록된 거리 음악가들이 역사와 통로 곳곳에서 공연을 펼친다.
서울의 지하철역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의 일상과 맞닿은 생활 밀착형 공간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는 중이다. 역사 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소규모 정원과 문화 라운지,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마련했고, 혼잡을 줄이기 위한 동선 개선과 더불어 잠시 머물 수 있는 장소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김세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공간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읽는다”라며 “머물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은 긴장을 완화하고, 도시 생활 속에서 소진된 감정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한다.
지하철역은 누구나 이용하는 가장 평등한 공간이다. 그곳에 쉼과 문화, 여백을 더하는 일은 도시 전체를 향한 공공성의 확장에 가깝다. 서울이 지하철역부터 바꿔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바쁜 공간에서부터 시민의 마음을 돌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은 지금, 지하철역 곳곳에서 시민들의 하루에 조용한 쉼표와 작은 온기를 더하고 있다.

+ 놓치면 섭섭한 ‘서울 지하철역 공간’ 5

을지로4가역 _ 미디어 라운지

인쇄소·공구상가·조명거리 등이 밀집한 을지로4가역에 미디어라운지가 생겼다. 대형 LED 전광판, 체험형 미디어 벽면, 휴게 공간으로 구성했다. 을지로의 과거·현재 풍경, 주변 명소 정보 등 다양한 시각 요소를 담아 이용자가 여유롭게 머물며 감상할 수 있는 문화 공간 역할을 한다.

답십리역 _ 메트로 팜(Metro Farm)

인공 환경에서 키운 채소를 역사 출구 부근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형태의 메트로 팜을 운영한다. 출퇴근길에 건강한 식재료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실험적 공간이다.

구의역 _ 은은한 무드의 보행 공간

구의역 하부 공간에는 은은한 LED 조명과 색다른 경관을 자아내는 디자인을 적용했다. 저녁 시간대에는 작은 빛의 전시장처럼 느껴진다.

뚝섬역 _ ‘핏 스테이션(Fit Station)’ 공간

도심형 피트니스 공간을 마련해 출근 전후 짬을 내어 운동할 수 있다. 샤워실·탈의실·운동기구 등을 갖춰 건강한 일상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

영등포시장역 _ 문화예술 플랫폼 공간

역내 지하 1·2층에서 지역 예술가와 청년들이 참여하는 전시·공연·워크숍 등이 열린다. 역 자체가 커뮤니티와 창작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임지영 사진 방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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