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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니얼을 넘어 글로벌로, 한식 디저트의 진화

할매니얼을 넘어 글로벌로, 한식 디저트의 진화
2026.02

여행

취향의 발견

박준우 셰프의 서울 디저트 로드

할매니얼을 넘어 글로벌로, 한식 디저트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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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문자 지원

따뜻한 온돌방에서 개성주악을 먹는 외국인들.
한식 디저트가 그들의 입맛에 안 맞을 거라는 생각은 오랜 편견이 아니었을까.
떡이며 약과까지 K-푸드 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 한식 디저트의 본질을 다시 생각한다.

박준우 셰프가 서울의 디저트 명가를 찾아 ‘서울 디저트 로드’를 연재합니다.
한식 디저트부터 유럽 정통 파티스리까지, 각 디저트에 담긴 철학과 문화적 배경,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장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웠던 1월 어느 오후, 청담동 ‘한과미의식’(구 ‘강정이 넘치는집’)을 방문했다. 매장 한쪽을 크게 차지한 좌식 룸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아 온돌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에 몸을 녹였다. 30대의 젊은 나이로 한식 디저트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황용택 셰프를 만나러 온 길, 오픈 키친 너머로 찹쌀 반죽을 치대고, 시루에 쌀을 안치고, 기름에 지지는 모습이 보였다. 살얼음이 동동 뜬 수정과 한 잔을 마시며 매장을 둘러보니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좌식 룸마다 외국인 손님들이 앉아 있었고, 영어와 중국어가 뒤섞여 들렸다. 개성주악을 사진 찍고, 약과를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고, 떡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할매니얼’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긴 지 오래다. 팥·떡·한과를 좋아하는 젊은 입맛을 일컫는 말로, 이들은 약과 오픈런을 불사하고, 개성주악 예약 전쟁을 벌인다. 이젠 MZ세대뿐 아니라 외국인까지, 한식 디저트가 세대와 국경을 넘고 있는 현장이 그곳에 있었다.
내 할아버지의 고향은 개성이다. 그런데 정작 개성주악은 다 커서야 처음 먹어봤다. 미쉐린 한식 다이닝으로 유명한 ‘권숙수’에서였는데, 코스 마지막에 후식으로 나온 개성주악 한 조각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때까지 한식 디저트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릴 때 술떡을 좋아했고, 가끔 개떡을 프라이팬에 구워 꿀을 찍어 먹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의 개성주악은 달랐다. 촉촉하고, 쫀득하고,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
개성주악은 요즘 유행하는 약과와는 다른 과자다. 찹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하는 게 핵심으로, 막걸리가 발효되면서 반죽에 쫀득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그다음이 관건인데, 참기름에 지질 때의 온도. 너무 뜨거우면 반죽이 터지고, 낮으면 기름을 과하게 먹는다. 불 조절 하나에 오랜 경험이 필요한 이유다. 마지막 단계는 조청에 재우고 잣가루, 계핏가루를 뿌리는 것. “주악 하나 만드는데 손이 108번 간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다. 개성 지방에서 오래전부터 만들어 먹던 이 과자는 “주악같이 곱다”는 관용어가 있을 정도로 정교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조선 시대 한양의 유밀과전(油密菓廛)에서 기름과 꿀을 쓴 과자들이 거래되었고, 6·25전쟁 이후 개성 피란민들이 종로 광장시장 일대에 정착하면서 제법이 전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이탈주민 어르신들이 그 맥을 잇고 있다.

한식디저트

떡과 케이크, 2개의 디저트 철학

떡의 정체성은 서양인 입장에서는 다소 애매하다. 그들에게 디저트란 달콤하고, 부드럽고, 식사 끝에 먹는 것이란 정의가 명확하다. 그런데 한국 떡은?
후식이라기엔 밥에 가깝고, 간식이라기엔 끼니를 대신하기도 한다. 디저트로 치면 케이크보다는 빵에 가까운 존재다. 예전 할머니들에게 떡은 ‘간식’이 아니라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었다. 시장에서 사온 떡 한 조각으로 점심을 때우고, 떡국 한 그릇이 아침 식사가 되었다. 이 정체성의 애매함이 떡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다. 떡은 디저트의 탈을 쓴 탄수화물이다. 서양 디저트처럼 식사와 분리된 쾌락의 영역이 아니라, 식사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한식 디저트를 이야기할 때 서양 디저트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 출발점이 다르니까. 한식 디저트는 재료 자체의 단맛에 의존한다. 쌀의 구수함, 곡물의 자연당, 발효된 막걸리가 만든 단맛, 꿀과 조청의 은은함. 백설탕 없이도 완성되는 게 특징이다. 반면 서양 디저트는 정제당, 버터, 크림으로 강렬한 단맛을 만든다. 첫입에서 오는 쾌감. 즉각성의 차이다. 식감은 정반대 방향을 향한다. 한식은 ‘찰기’를 최고 미덕으로 여긴다. 인절미, 경단, 약식의 쫄깃함. 이에 닿는 순간의 탄력, 턱을 움직이며 씹는 저항감 등 ‘텐션’을 즐긴다. 서양은 무스, 푸딩, 크렘 브륄레처럼 혀에서 즉각 녹는 경험, 그러니까 “실크 같다”라는 표현처럼 매끄러움의 쾌감을 추구한다. 쌀 문화권과 유제품 문화권의 차이가 식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사회적 기능이다. 떡 만들기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절구 치기, 시루 안치기는 여러 사람이 협업해야 하고, 대량으로 만들어 이웃과 나눈다. “떡 해 먹었으니 나눠야 복”이라는 말처럼 나눔이 본질적 기능으로, 개인 단위 소비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다. 반면, 서양 디저트는 처음부터 개인을 위해 설계되었다. 케이크 한 조각, 쿠키 하나처럼 1인분의 경계가 명확하다. ‘내 디저트’라는 분명한 소유의 개념으로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선물의 개념이 강하다.
또 하나의 차이. 한식 디저트는 기다림의 음식이다. 막걸리로 반죽을 발효하고, 쌀을 물에 불리고, 증편 반죽을 삭히는 시간. 기다림이 곧 기술인 양 인내의 시간이 맛을 완성한다. 서양 디저트도 숙성을 중시하지만, 한식의 기다림은 다른 차원이다. 발효, 삭히기, 불리기. 모두 미생물과 효소, 시간이 만드는 맛이다. 이 인내의 시간이 만들어낸 맛은 강렬하지 않지만 길게 간다.

개성주악을 만드는 비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셰프

개성주악을 만드는 비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셰프.

다시, 한식 디저트를 생각한다

이 시즌에만 나오는 한정 메뉴이니 꼭 맛보고 가라는 황 셰프의 추천으로 방금 쪄낸 무시루떡을 맛봤다. 무 자체에서 나오는 단맛과 수분으로 촉촉한 한 입을 음미하고 매장을 나서며 생각했다. ‘저 외국인들이 느낀 건 단순한 이국적 체험 이상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시간이 아닐까’라고. 그렇게 한식 디저트는 파인다이닝에서 디저트로 재해석되고, 한과미의식 같은 전문점에서 전통 제법에 현대적 공간을 더한다. 개성주악은 이제 예쁜 박스에 담겨 선물이 되고, 약과는 SNS에서 ‘인생 약과’로 리뷰된다.
이번 설, 떡국 한 그릇 앞에 앉아 하얀 떡 한 조각을 건져 올리는 기분은 조금 새로울 것 같다. 쌀의 시간이 담겨 있고, 누군가의 정성이 깃들어 있고, 세대를 넘어 여전히 우리를 이어주는 끈. 새해, 떡 한 조각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 본다.


글. 박준우

벨기에에서 제과·제빵과 쇼콜라티를, 파리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 1 준우승과 <냉장고를 부탁해>,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1> 출연으로 대중과 만났다. 스스로를 ‘셰프보다는 기자’라 불리길 원하는 그는 <맛있는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푸드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현재 서촌에서 유럽 정통 디저트 카페 ‘오쁘띠베르’를 운영하며 음식의 철학과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글을 이어가고 있다.

+ 설날 차례상의 떡

가래떡(떡국용)

조선 시대 <동국세시기>에 “정월 초하루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긴 형태는 장수를, 하얀색은 새 출발과 묵은 액운을 씻어냄을, 썰었을 때의 동그란 엽전 모양은 재물을 상징한다.


백설기

순백의 멥쌀가루로 찐 떡.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조선 시대 가정 생활 백과서 <규합총서>에 “백설기는 반드시 흰 쌀로만 해야 정성”이라는 기록이 있다. 쌀을 물에 불려 맷돌에 곱게 가는 과정에 정성이 필요하고, 수분 조절이 관건이다.


절편

찹쌀떡을 압착해 반듯하게 썬 것으로, 단정함과 질서를 의미한다. 흰 절편은 순수를, 쑥절편은 봄의 생명력을, 오미자절편은 붉은 기운과 복을, 치자절편은 부귀를 상징한다.


시루떡

큰 시루에 쪄서 이웃과 나누는 떡. 팥고물의 붉은색이 귀신과 액운을 쫓는다는 속신이 있고, 층층이 쌓는 구조는 복이 쌓인다는 의미다. 이사나 명절에 이 떡을 나누는 문화가 현대 아파트 단지에서도 이어진다.

한국의 미의식을 담은 디저트 공간

전통의 맛을 지키면서 현대적 감각을 더한 한식 디저트 명가 세 곳을 소개한다.
정성스러운 담음새와 세련된 패키지로, 명절 선물로도 손색없는 곳이다.

한과미의식 디저트

‘젊은 전통’을 표방하는 사촌 형제의 정성

한과미의식(구 강정이 넘치는 집)

사촌 형제인 황인택 대표와 황용택 셰프가 15년 전 전통시장에서 시작해 일군 한식 디저트 전문점이다. 의령 곶감, 해남 무화과 등 전국 각지의 좋은 재료를 직접 찾아다니며 구한 지역 특산물로 한과와 떡을 만든다. 청담동 본점은 넓은 좌식 룸이 마련되어 있어 매장에서 디저트를 즐기기 좋고, 선물용 찬합 세트가 인기 있다. 황용택 셰프는 서명환 셰프 등 한식 고수들에게 배운 탄탄한 기본기 위에 젊은 감각을 더해 ‘젊은 전통’을 표방한다. 매일 아침 6시 30분부터 10여 명의 직원이 정성으로 빚는 한과와 떡은 국내외에서 반응이 좋다.

대표 메뉴 팥죽 1만5,000원, 이북인절미 9,000원, 대추찰편 1만2,000원, 무시루떡(겨울 한정) 1만2,000원
위치 청담동, 인사동, 신당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SNS @gj_house

한과미의식 내부


철든부엌 찻집 디저트

푸드 스타일리스트 1세대가 빚은 정갈한 맛

노영희의 철든부엌 찻집

요리 연구가이자 푸드 스타일리스트 1세대인 노영희 셰프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갤러리와 함께 한식 디저트 카페를 운영한다. 매장에서 쌀가루를 직접 빻아 만드는 팥시루떡은 식사 대용으로도 인기 있는 스테디셀러다. 직접 담근 식혜와 수정과·대추청·모과청도 판매하며, 배숙과 대추인삼차는 진한 맛이 일품이다. 프랑스 아비뇽에서 주문한 샹들리에와 자개장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한국 작가가 빚은 사발에 담긴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생란, 단자, 약과까지 모든 메뉴가 정갈하고, 푸드 스타일리스트 특유의 감각이 깃든 포장도 선물용으로 제격이다.

대표 메뉴 시루떡 7,000원, 팥빙수 2만2,000원, 약과 6,600원, 드립 커피 7,700원
위치 청담동

철든부엌 찻집 내부


병과점 합 디저트

한국 최초의 떡 셰프가 빚은 동서양의 조화

병과점 합

프랑스에서 제과를 배운 신용일 셰프가 서양 기술을 접목한 세련된 한식 디저트를 선보이는 병과점이다. ‘합(合)’이라는 이름은 ‘사람의 입이 하나로 모이는 장소’라는 의미를 담았다. 아라리오 미술관 2층에 위치한 매장은 창덕궁과 한옥 뷰를 자랑하며, 한국의 전통과 서양 전통이 어우러진 ‘단정한’ 공간을 지향한다. 튀기지 않고 구워서 만든 구운약과가 시그너처 메뉴로, 간장·유자·호두·깨·아몬드 등 다섯 가지 맛이 있다. 맛과 비주얼이 모두 일품인 빙수와 주악도 인기 메뉴다. 한국 최초 떡 셰프로 불리는 신용일 셰프의 ‘소박한 한국의 멋’을 담은 디저트를 만날 수 있다.

대표 메뉴 구운약과 3,000원, 주악 3,000원, 유자팥빙수 1만5,000원, 세트 메뉴 1만5,000원
위치 원서동, 신사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SNS @haap2010

병과점 합 내부

이혜리 사진 심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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