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음식은 한 가지 이미지로 정의되지 않는다.
북미식의 캐주얼함 위에 프랑스 식문화가 겹쳐 있고, 지역과 가정에 따라 식탁의 풍경도 다르다.
화려한 미식보다는 가정식이나 나눔을 위한 요리에서 캐나다 음식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한국인은 물론이고 세계인은 대개 캐나다와 미국의 음식 역사와 문화 차이를 잘 모른다. 햄버거를 비롯한 미국 음식에 대해서는 안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캐나다는 그 넓은 땅만큼이나 아직 우리에겐 미지의 땅이다. 게다가 동서가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 있어 음식도 판이하게 다르다. 동서는 심지어 시차도 5시간이고, 비행시간도 5시간이다. 그런 캐나다의 음식은 화려한 미식의 계보가 아니라 역사, 이민, 기후, 노동, 돌봄이 겹쳐 만들어진 생존의 기록이다.

푸틴, 셰퍼드 파이, 칠리 수프 등 다양한 캐나다 음식으로 차려진 한 상.
식민의 시간으로 완성된 식문화
캐나다는 혁명으로 탄생한 나라가 아니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시작해 영국 제국의 통치를 거쳐 1867년 연방으로 묶였다. 이 긴 식민의 시간 동안 음식은 국가 수립 이전에 이미 정착돼 있었다. 프랑스계 정착민은 동부(그러니까 미국 뉴욕과 보스턴의 북쪽)인 세인트로렌스강 유역에서 버터 · 밀가루 · 감자 · 육류로 겨울을 버텼고, 영국계 정착민은 파이 · 로스트비프 · 스튜로 보존과 규격을 택했다. 여기에 원주민의 훈연, 건조, 수액 채취, 사냥 지식이 더해졌다. 캐나다 음식은 애초부터 셰프의 요리가 아니었다. 집의 음식, 마을의 음식, 할머니의 음식이었다. “저는 할머니들에게서 요리를 배웠어요. 회사원 남편이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서 캐나다로 갔어요. 동네 할머니들에게 영어와 프랑스어도 배울 겸 마실 다니다가 요리를 알게 됐어요. 캐나다는 빈민 구제를 위한 프로그램이 많아요. 그런 곳에서 음식 재료를 가져다가 할머니들이 요리를 해서 다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죠. 그 광경에 감격했어요. 제 요리는 거기에서 나온 겁니다.”
‘봉쥬르 쟝딸롱’의 셰프이자 사장인 정민애의 이야기다. 그는 암사동에 아담한 카페테리아 식당을 열었다. 한국에서 아주 드문 캐나다 가정식을 선보인다.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은 없지만, 손맛이 좋아 손님이 아주 많다.
절제의 음식, 푸틴
미국 음식이 ‘풍요의 과잉’이라면, 캐나다 음식은 ‘절제된 지속’이다. 이 차이는 ‘푸틴(Poutine)’에 집약돼 있다. 미국식 감자튀김은 케첩이나 치즈 소스가 주인공이지만, 캐나다 푸틴의 중심은 그레이비소스가 한몫한다. 튀김 위에 육즙인 그레이비를 붓는 행위는 캐나다식 사고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동부는 프랑스 문화 지역이라 뭔가 ‘소스를 부어야 음식답다’라는 관념이 있는 지역이다. 아, 푸틴이 뭐냐고?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이자 캐나다의 자존심이고, 맛있는 인기 메뉴다.

각종 채소와 고기를 넣어 뭉근하게 끓여낸 칠리 수프.

간편하면서도 든든한 몬트리올 칠리도그.
지역으로 나뉜 캐나다의 맛
캐나다 음식 문화를 조금 더 살펴보자. 엄청난 크기의 땅에 인구는 아주 적은 나라. 우선 동부 지역인 퀘벡은 프랑스 요리의 기술을 놓지 않았지만, 재료는 철저히 저렴하고 지역적이며 배부르게 사용한다. 푸틴, 셰퍼드 파이, 칠리 수프 등은 모두 나눠 먹기 위한 음식이다. 중부 프레리는 소고기를 많이 생산하며, 인구는 아주 적다. 서부 밴쿠버는 아시아인 이민의 영향으로 전통은 약하지만 가장 현대적이다. 다시 푸틴으로 가보자. 감자튀김의 이름치고는 참 특이하다. 러시아 음식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Poutine’은 퀘벡 프랑스어로 ‘엉망진창’이라는 뜻에 가깝다. 못생기고, 막 섞어 먹는 음식이다. 퀘벡은 영하 40℃의 겨울이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뜨거운 그레이비를 붓고 치즈 커드를 얹어 한 그릇 요리를 만든다. 이 집은 정통적인 푸틴을 선보인다. 캐나다 대사관이 이 식당의 단골인데, 푸틴이 단연 인기 메뉴다. 대사관 행사에도 이 음식을 주문한다.
가장 추운 동네 앙주에서 시작된 식당
정민애 셰프가 살던 동네는 퀘벡에서도 아주 추운 북쪽의 앙주(Anjou)라는 곳이다. 생활비와 집세가 싸서 고른 동네다. 평균연령 80세가 넘는, 노인들이 사는 작은 마을에 동양인 가족이 와서 다들 신기해했다고 한다.
“영하 40℃까지 떨어지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할머니들이 따뜻한 음식과 이불을 갖다 주셨어요. 한국 할머니처럼 정이 많은 분들이셨죠. 혼자 사는 할머니가 많아 저를 초대해 언어를 가르쳐주셨고요. 저는 김밥을 만들어 드리고, 할머니들은 셰퍼드 파이와 칠리 수프, 키슈(Quiche) 등을 알려주셨어요. 그게 이 식당의 기원이랄까요.” 아, 가게 이름에서 ‘봉쥬르’는 알다시피 프랑스어로 ‘안녕’이란 뜻이다. ‘쟝딸롱’은 캐나다 초기 개척 인물이면서 퀘벡주 몬트리올의 유명한 전통시장 이름이기도 하다. 봉쥬르 쟝딸롱의 메뉴를 보면 전형적인 캐나다 가정식, 서민 음식 느낌이다. 양이 푸짐하고 소박하다. 그걸 아주 작은 가게의 주방에서 굽고 끓여낸다.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 장봉 뵈르, 셰퍼드 파이, 키슈 로렌, 오리지널 푸틴, 풀드 포크 푸틴, 칠리 수프, 덴버 오믈렛이 이곳의 주요 메뉴다.
현지인도 인정한 정통의 맛
처음에는 장봉 뵈르와 푸틴 정도만 내려고 작은 가게를 얻었다. 주방도 제대로 없는 누추한 공간이었다. 전 주인이 카페를 하다가 빈 자리였다. 그러나 푸틴만으로는 망할 것 같았다. 아무도 안 왔다. 사람들은 “푸틴이 뭐냐”라고 물어보기만 했다. 생존을 위해 메뉴를 늘렸다. 처음에는 장봉 뵈르, 오리지널 푸틴, 풀드 포크 푸틴, 리코타 샐러드가 있었다. 지금은 셰퍼드 파이, 키슈 로렌, 칠리 수프, 덴버 오믈렛 등이 추가되었다.
몇 가지 요리를 먹었다. 어머니의 손맛, 아니 퀘벡 할머니들의 손맛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푸근하고 따스하다. 허겁지겁 먹었다. 마치 손자가 할머니 음식을 먹듯이. 이 식당도 초기에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인터넷 악플이 많았다. “발로 만들어도 이것보다 낫겠다”라는 식이었다. 푸틴도 “진짜 맛없다. 그냥 감자튀김에 케첩 찍어 먹는 게 더 맛있다”라는 댓글이 많았다. 검증되지 않은 요리사였기 때문이다. 우연히 캐나다 대사관 사람들이 찾아왔다. 캐나다 음식점을 검색하면 이곳 하나만 나왔기 때문이다. 캐나다 영사관이 와서 “우리 엄마가 만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로 악플은 사라졌다. 정통 논쟁도 끝났다.
서울에 스며든 캐나다의 집밥
이곳의 손님은 외국인 비중이 약 35%다. 코로나19 시기에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안 왔지만, 외국인들은 신경 쓰지 않고 왔다.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왔다 갔다 하니 암사역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구경했다. “저기는 뭔데 왜 이렇게 외국인이 있지?” 외국인들 덕분에 동네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근처에 캐나다 국제학교가 있어 교장 선생님과 교직원들도 온다. 캐나다 대사관 관계자들은 푸틴을 포장해 가져간다. 퀘벡의 자부심이 푸틴에 크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퀘벡은 수프를 거의 죽같이 만들어 먹는다. 유럽처럼 묽은 수프가 아니라 건더기가 가득하고 되직하다. 추워서 그렇다. 빵을 찍어 먹는 게 아니라, 빵을 들고 위에 올려 먹을 수 있도록 되직하게 만든다.
서울은 세계를 품에 안았다. 사람과 함께 그들의 음식도 들어와 있다. 한국인의 손으로도 그걸 만든다. 메트로시티 서울의 힘이다.

캐나다 음식을 함께 맛보며 대화를 나누는 박찬일 셰프와 정민애 사장.
박찬일
1965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노포의 장사법>, <밥 먹다가 울컥> 등의 책을 내며 ‘글을 맛있게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 대표적인 캐나다 요리
캐나다 요리는 풍부한 자연 식재료를 바탕으로 한 담백하고 든든한 맛이 특징이다.
메이플 시럽, 연어, 감자 등 지역 식재료에 프랑스 · 영국의 전통과 북미식 조리법이 어우러졌다.
푸틴 같은 소박한 한 그릇 요리가 캐나다 식문화를 상징한다.

연어 요리
태평양 연안에서 잡히는 홍연어를 구이 · 훈제 등 간결한 방식으로 즐긴다. 재료의 신선함을 살린 조리법은 캐나다 서부 식문화를 대표한다.

메이플 태피
자연 눈 위에 뜨거운 메이플 시럽을 부어 굳혀 먹는 전통 간식. 퀘벡의 슈거 섀크(Sugar Shack, 메이플 시럽 농장) 문화에서 유래했다.

푸틴
감자튀김 위에 치즈 커드와 그레이비소스를 얹은 캐나다 대표 요리. 퀘벡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졌다. 짭짤하고 묵직한 맛으로 캐나다식 간식, 패스트푸드를 상징한다.

투르티에르
다진 고기를 향신료와 함께 파이로 구워낸 퀘벡 전통 미트 파이. 프랑스 요리의 영향을 받았지만, 캐나다식으로 발전하며 명절과 겨울철에 즐겨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셰퍼드 파이
다진 소고기와 그레이비를 볶은 뒤 그 위에 으깬 감자를 덮어 구워낸 캐나다식 가정 요리. 포근한 맛으로 겨울철 식탁에 자주 오른다.
서울에서 만나는 캐나다의 맛
북미식의 캐주얼함과 프랑스 식문화가 어우러지며,
푸틴 같은 간식부터 프랑스식 요리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캐나다 음식.
익숙한 듯 새로운 캐나다 음식을 서울에서 만나보자.

#캐나다식 푸틴을 제대로 맛보다
베쓰 푸틴
캐나다 유학 시절 푸틴의 매력에 빠진 사장이 한국으로 돌아와 문을 연 작은 식당이다. 메뉴의 중심은 캐나다를 대표하는 간식인 푸틴으로, 기본 구성은 감자튀김 위에 그레이비소스와 치즈 커드를 올린 형태다. 토핑을 달리한 네 가지 푸틴을 선보이는데, 가게 이름을 딴 ‘베쓰 푸틴’이 가장 인기 있다. 짭짤하고 부드러운 그레이비소스가 감자튀김 사이사이에 스며들고, 녹아든 치즈가 어우러져 일반적인 감자튀김과는 다른 만족감을 준다. 칠리소스 스파게티도 인기 메뉴다. 간 고기를 아낌없이 넣어 소스에서 진한 육향이 느껴지며, 소박한 플레이팅과 달리 맛의 밀도가 높다. 사이드 메뉴 양송이튀김을 찾는 손님도 많다. 바삭한 튀김옷 안에 촉촉한 버섯이 들어 있어 식감 대비가 인상적이다. 테이블 1개와 바 좌석 위주의 아주 작은 공간으로, 캐나다의 작은 별장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토요일에만 영업하며, 일정이 유동적이라 방문 전 확인은 필수다.
가격 베쓰 푸틴 9,500원, 트래디셔널 푸틴 1만2,000원, 클래식 칠리 스파게티 1만5,500원, 양송이튀김 1만 원
인스타그램 @beth_poutine


#비건으로 풀어낸 캐나다 가정식
셰발레리
캐나다 현지인과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셰발레리’는 캐나다 가정식을 비건으로 재해석한 작은 식당이다. 현지인 사장이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식탁에서 먹었던 요리를 바탕으로 비건 레시피를 완성했다. 채식 메뉴이지만, 두부와 버섯 등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고기와 유제품의 풍미가 느껴진다. 가을, 특히 추수감사절에 즐겨 먹는 대표 디저트 호박파이는 외할머니의 레시피에서 출발한 메뉴로, 단호박을 듬뿍 넣어 은은한 단맛과 밀도감이 살아 있다. 라사냐는 토마토 라구와 채소, 비건 모차렐라가 어우러진 소울 푸드이며, 고향 이름에서 따온 캔디악 피자는 얇은 도 위에 구운 채소를 풍성하게 올리고 발사믹으로 새콤함을 더했다. 푸틴은 그레이비소스 대신 버섯으로 만든 수제 소스를 사용해 비건 방식으로 깊은 풍미를 살렸다. 나무 질감이 살아 있는 공간은 캐나다의 소박한 가정집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금~일요일에만 운영해 방문 전 일정 확인이 필요하다.
가격 마도 할머니 호박파이 6,800원, 캔디악 피자 1만4,200원, 엄마 라사냐 1만7,500원
인스타그램 @chevalerie_vegan


#화려하진 않지만 편안한 캐나다식 집밥
봉쥬르 쟝딸롱
캐나다의 작은 마을에 머무르며 동네 할머니들에게 배운 퀘벡 가정식을 재현하는 식당이다. 정형화된 레시피보다 가정식 조리법을 따르는 덕분에 화려함보다는 손맛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이국적 음식이지만 한 접시를 마주하면 집밥처럼 편안한 인상이 남고, 재료를 아끼지 않아 요리 하나하나가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셰퍼드 파이는 고기와 감자를 넉넉하게 채워 오븐에 구운 퀘벡식 요리로, 담백하면서도 든든하다. 칠리 토마토 수프는 소고기와 토마토, 채소를 푸짐하게 넣고 오래 끓여 깊고 안정적인 맛이 난다. 캐나다 전통 간식인 푸틴 역시 그레이비소스를 넉넉하게 부어 감자튀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짭짤한 풍미 덕분에 맥주 안주로도 잘 어울린다. 여기에 퀘벡 지역에 스며든 프랑스 식문화의 흔적을 담은 장봉 뵈르와 덴버 오믈렛 & 소시지 등 프렌치 스타일의 메뉴도 함께 선보여 캐나다 가정식의 폭을 자연스럽게 넓힌다.
가격 칠리 토마토 수프 1만6,000원, 셰퍼드 파이 1만9,000원, 장봉 뵈르 9,500원, 몬트리올 칠리도그 9,500원, 오리지널 푸틴 9,500원

글 배효은 사진 전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