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요리는 중국 서쪽 변방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요리 중 하나다.
얼얼하고 화끈하면서도 깊은 향신료의 맛과 불 맛은 대도시의 속도와도 잘 맞는다.
최근 <흑백요리사>에서 ‘만찢남’으로 주목받은 조광효 셰프가 직접 운영하는 매장에서도 이 매력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매운맛의 시대에 산다. 자극, 속도, 쾌락, 도시의 맛이다.
사실 한국의 중국요리는 산둥 지역에서 온 화교가 설계한 지 이미 100년이 넘었다.
그들도 1970년대에 사천요리를 냈다. 하지만 한국화된 버전이었다.
이제는 사천(四川)의 맛이 직수입된다. 그게 서울의 속도다.

센 불에 채소를 볶아내 불 향을 살린다.
만화에서 배운 셰프의 실험 정신
장지동. 이 동네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메가시티라 할 서울에서 먼 변방이랄까. ‘조광201’을 찾아가기란 의외로 어려웠다. 가게 간판이 없다. 두리번거리니 한 가게 주인이 “어딜 찾아요?” 하고 친절히 묻는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2층을 가리킨다. 엇, 이런 곳에 중국 식당이? 당황스러웠다. “<흑백요리사> 에 나가기 전에는 그냥 동네 식당이었죠. 외진 편이고, 2층이니까 가겟세가 쌌어요. 제 요리를 더 싸게, 동네 사람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제는 국내 여러 곳에서 일부러 찾아주시지만, 저는 이 동네 분들이 와주시는 게 좋아요. 그게 처음부터의 생각이었죠.”
<흑백요리사>의 ‘만찢남’으로 유명한 조광효 셰프.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뭔가 조용한 ‘만화 가게 소년’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도 그렇다. 물론 더 활발하기는 하지만. 씩씩하게 인터뷰한다. 이 사람은 묘한 친화력이 있다. “‘만찢남’이라는 별명은 <흑백요리사> 작가와 PD가 만든 이미지인데, 사실 그랬어요. 만화로 요리를 배우고 실험했죠. 대중이 그걸 좋아해주셨어요. 고학생의 이미지 같은 것이기도 해서 더 응원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그와 1시간 대화하는데, 시종 요리의 실험에 관한 게 주제였다. 그는 지금도 진화 중이다.
시작은 변방의 요리
사천요리(쓰촨요리)는 중국에서도 가장 ‘핫’한 주제다. 쓰촨은 지도를 보면 서쪽의 변방이자 <삼국지>에서 촉나라의 무대다. 만화나 게임, 소설 등에서는 촉나라가 중심이지만 실제로는 변방의 이미지다. 그곳은 매운 요리로 유명하다. 촉의 유방은 천하 통일에 실패하지만, 천 년이 넘게 흐른 후 결국 전국을 통일한다. 바로 사천의 맛으로 말이다.
사천요리는 중국 역사 속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습하고 더운 기후 때문에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고추, 마늘, 화자오 같은 강한 향신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이것이 독특한 ‘마라(麻辣)’ 풍미를 낳았다. 당대 이후 청나라 시절을 거치면서 이 향신료 요리는 중국 전역으로 퍼졌고, 오늘날에는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글로벌 미식 코드가 되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 주요 도시에서 ‘차이니즈 아메리칸 푸드’와는 다른 정통 사천요리가 각광받으면서, 한층 세련된 형태로 유행을 탔다. 서울 역시 이러한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여, 이제는 동네 식당부터 대학가, 도심의 전문 레스토랑까지 곳곳에서 ‘사천풍’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신선한 오이에 특제 소스를 곁들여 즐기는 중국식 샐러드, 마라황과.

알싸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인 마라샹궈.
서울의 입맛과 결합한 사천요리
하지만 서울의 사천요리는 여전히 마라탕, 훠궈 같은 단품 중심이다. 아직 사천요리가 널리 퍼진 건 아닌 셈이다. 그 미래에 조광효 셰프가 있다. 그는 마파두부 같은 본격적인 사천요리를 선보인다. 독학으로 요리를 익힌 조광효 셰프는 “서울에서는 사천요리에 대해 ‘매운 중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속도의 도시에서는 매운 것마저도 조율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매운 것을 내세우면서도 화자오(산초), 마비감, 수분감, 기름의 잔향 등 ‘사천의 요소’를 살아 있게 유지하되 메가시티 서울의 입맛과 기대 속도로 맞춘다.
사천요리의 심장은 ‘향신료’와 ‘열(辣)’이다. 조광효 셰프는 특히 화자오의 사용을 강조한다. 단순히 얼얼함만 주는 것이 아니라 화자오가 고추, 기름, 마늘, 파 같은 기본 맛들과 어떻게 배합되는가가 중요하다고. 그는 화자오의 ‘마비감(麻)’을 조절하려고 몇 번이고 실험했다. 너무 많으면 입이 지치고, 너무 적으면 사천요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매운 고추기름의 불꽃처럼 살짝 튀는 매운맛과 먹고 난 뒤 여운 속에서 치솟는 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잘 표현된 것이 마파두부다. 재미있게도 그는 매운맛보다 두부에 더 신경 쓴다.

<흑백요리사>로 이름을 알린 조광효 셰프는 “사천요리도 서울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두부와 향신료, 디테일이 만드는 진짜 맛
마파두부는 독특한 질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좋은 질감의 두부를 발견했다. 작은 기업이 만드는 두부였다. 그걸 지금도 쭉 쓰고 있다. 서울에서 사천요리를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역시 재료 수급이 관건이다. 조광효 셰프는 두반장, 화자오, 고추기름 같은 사천 전통 양념을 수입하거나 수입품을 적절히 대체해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예컨대 중국산 생고추 대신 국산 유기농 고추를 살짝 건조시켜 쓰거나, 화자오 대신 한국의 산초(찻잎 산초)와 화자오의 혼합 비율을 조정한다. 또 식자재 시장에서 가능한 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조리 후 남는 향과 색감이 살아 있도록 한다. 두부는 그 작업의 하나다. 가게 안에 매운 향이 퍼진다. 요리가 시작됐다. 웍이 춤춘다. 향이 퍼진다. 그 타이밍을 잘 잡아야 맛이 정돈된다.
캠퍼스를 물들인 사천요리
사천요리는 엄밀히 말하면 쓰촨요리라고 해야 하지만, 1970년대부터 중국 식당에서 ‘사천요리’라는 말을 쓰고 있으니 그 연장선에서 사천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사천요리는 금세 서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원래 대림동에는 중국 동북 지방 동포와 화교가 만드는 음식이 많았다. 하지만 사천요리의 유행으로 매운맛이 대세다. 서울의 사천요리 맛은 특이하게도 대학가가 선도한다. 중국 유학생이 매개다. 여기에 우리 학생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젊은 직장인도 가세했다. 오피스 거리에 사천요리를 파는 식당이 늘고 있는 것이다. 사천 사람은 거의 없고, 다른 지역 화교가 하는 식당이 많다는 것도 한 특징이다. 물론 조 셰프처럼 한국인도 많다. 그것이 서울 사천요리의 어떤 유전자다.
여운으로 남는 매운맛
조 셰프는 이런 말로 서울의 사천요리 맛을 정리한다. “서울 사람들은 매운 걸 먹고 나서도 ‘아, 또 생각난다’라는 여운을 원해요. 혀가 아린 건 잠시고, 그 뒤에 남는 기억 같은 맛이 중요하죠. 정통 사천요리라도 거기에 한국인의 감각이 섞여 있어야 한다고 봐요. 매운맛도 문화고, 매운맛에 대한 내성이기도 하니까요. 메가시티의 매운맛이라면 강한 자극 속에서도 ‘이 맛 주세요’ 하고 자꾸 주문하게 하는 반복 욕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옳은 해석이다. 서울은 맵다. 한국적인 매운맛에 사천요리의 매운맛이 들어와 있다. 배달 음식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다. 서울의 맛은 진화하고 있고, 그 한자리에 사천요리가 있다. 흥미롭다. 여러분은 어떤 매운맛을 찾고 있는가.

중국 사천요리의 변주와 실험 정신을 주제로 오랫동안 이야기꽃을 피운 조광효 셰프(왼쪽)와 박찬일 셰프.
박찬일
1965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노포의 장사법>, <밥 먹다가 울컥> 등의 책을 내며 ‘글을 맛있게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대표적인 사천 요리
사천요리는 마라(麻辣)의 풍미와 풍부한 향신료, 가정식의 친숙함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아왔다.
마파두부·어향육사·라즈지 등이 대표적이며,
강렬함과 담백함이 공존하는 균형 잡힌 맛이 특징이다.

어향육사(위샹러우쓰)
돼지고기와 채소를 새콤달콤한 어향 소스로 볶아낸 요리. 생선 향을 연상시키는 소스의 맛이 인상적이다.

수이주위
쓰촨성 대표 생선 요리의 하나로, 끓는 기름에 생선 살과 향신료를 넣고 얼얼하게 끓여낸 요리. 매콤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돋보인다.

마파두부
두부와 다진 고기를 매콤한 마라 소스로 볶아내 두부의 부드러움과 얼얼한 풍미가 어우러진다. 가장 유명한 사천요리다.

라즈지
잘게 썬 닭고기 튀김을 마라 향신료, 마른 고추와 함께 볶아낸 요리. 바삭한 식감과 강렬한 매운맛이 매력이다.

궁보지딩
닭고기와 땅콩, 채소를 매콤 달콤한 소스로 볶아낸 요리. 고소하면서도 균형 잡힌 맛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
마라 향에 취하다, 사천요리의 맛
사천요리라고 하면 흔히 마라탕이나 훠궈를 떠올리지만, 사천요리의 세계는 훨씬 넓다.
혀끝이 얼얼해지는 산초 향과 불 맛이 어우러지며 강렬한 매운맛 이상의 깊은 풍미를 선사한다.

#마라의 정수를 담은 사천요리 전문점
조광201
<흑백요리사>의 ‘만찢남’으로 유명한 조광효 셰프의 사천요리 전문점이다. 신선한 채소를 바로 불에 볶아내고, 소스를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이 특징. 마라 특유의 매콤함과 불 향은 살아 있으면서 얼얼함만 남는 깔끔한 뒷맛이 매력적이다. 기름지고 무거운 중식의 느낌을 줄이고, 산뜻하면서도 정돈된 풍미를 선사한다. 대표 메뉴인 마라샹궈는 두부피와 채소가 어우러져 담백하고 건강한 느낌을 준다. 부드럽고 새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쏸라탕, 중식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마라황과(마라오이무침)도 인기. 매운맛에 약한 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손님 입맛에 맞춰 맵기를 조절해주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셰프가 집필한 책과 만화책을 구비해 그의 요리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음식을 정성스럽게 완성하는 셰프의 태도가 음식에 잘 드러나며, 아늑하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더해져 편안한 식사 경험을 완성한다.
가격 마라샹궈 2만7,000원, 라즈지 1만5,000원, 진 마파두부 1만5,000원, 마라탕 2만5,000원, 쏸라탕 2만 원
인스타그램 @cho__kwang


#인스타 감성의 촨촨 훠궈 바
촨촨지우바
을지로 대림상가 3층에 자리한 ‘촨촨지우바’는 꼬치를 훠궈 국물에 데쳐 먹는 사천요리 전문점이다. 중국의 대학가와 거리에서 흔히 즐기는 이 음식은 우리나라 포장마차의 어묵 꼬치처럼 술과 함께 가볍게 즐기기 좋다. 국물은 정통 마라의 얼얼한 향과 불 향을 살려 현지의 맛을 전한다. 매운맛에 약한 이를 위해 홍탕과 백탕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반반탕 훠궈가 준비돼 있어 누구나 입맛 따라 즐길 수 있다. 소스도 땅콩 소스, 마라 소스 등 다양한 조합을 제공해 맛의 폭을 넓혔다. 다양한 꼬치 외에 오렌지 궈바오러우, 게살 크림치즈 훈툰 튀김 같은 사이드 메뉴도 갖추고 있다. 훠궈의 얼얼함을 달콤하게 중화해주는 디저트 메뉴 ‘꿀꽈배기와 코코넛 크림’은 별미로 꼽힌다. 아늑하면서도 바 같은 감각의 인테리어는 을지로의 ‘힙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색다른 사천요리 경험을 선사한다.
가격 런치 촨촨 1만7,000원, 디너 촨촨 3만6,000원, 오렌지 궈바오러우 2만4,000원, 꿀꽈배기와 코코넛 크림 9,000원, 마파두부와 라이스 1만2,000원
인스타그램 @chuanchuanjiubar.euljiro


#쓰촨 가정식의 매력
경몽루
강남구 논현동 골목에 자리한 ‘경몽루’는 이경진 사장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중국에서 생활하며 접한 쓰촨 가정식의 추억을 바탕으로 한 식당으로, 중국의 맛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재해석 해 따뜻한 한 끼를 전한다. 대표 메뉴인 마파두부는 비법의 마라장에 된장과 고추장을 더해 쓰촨의 정통 풍미와 우리의 장맛을 함께 담았다. 맵기를 조절할 수 있어 마라 맛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경진 사장은 중식을 가볍고 건강하게 즐길 방법을 고민하며 기름기를 줄이고 채소를 더해 부담 없는 쓰촨 가정식을 만들어오면서 경몽루만의 레시피를 완성했다. 쯔란 항정살은 양고기 대신 항정살을 사용해 향신료의 풍미와 쫄깃한 식감을 살렸고, 어향육사는 채소를 듬뿍 넣어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선사한다. 아늑한 공간은 집밥을 먹는 듯한 편안함을 전하며, 쓰촨 가정식만의 추억과 위로를 담아낸다.
가격 경몽루 마파두부 1만9,000원, 어향육사 2만 8,000원, 쯔란 항정살 3만4,000원, 어향가지 2만 3,000원, 마라새우 3만4,000원
인스타그램 @jingmonglu_mapotoufu

글 배효은 사진 박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