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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테이프 하나면 우리 집이 영화관

비디오테이프 하나면 우리 집이 영화관
2025.09

에세이

레트로 서울

비디오테이프 하나면 우리 집이 영화관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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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부터 20여 년은 비디오의 시대였다.
집집마다 VCR을 들였고, 온 가족이 비디오 대여점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빌려 보기에 바빴다. 비디오는 지금의 OTT 못지않게 큰 사랑을 받았다.
40대 이상 성인이라면 1시간쯤은 떠들 수 있는 비디오 시대의 추억에 대하여.

비디오 대여점의 문은 유리로 돼 있었다. 손잡이를 밀면 ‘딩동’ 하는 알람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졌고, 그 순간 가슴 가득 묘한 설렘이 번졌다. 진열대에 도열한 수백 개의 비디오테이프, 유리문과 내부 벽면을 가득 채운 영화 포스터, 그리고 카운터 위에 놓인 신작 목록이 손님을 반겼다. 비디오 케이스 특유의 두툼함은 지금의 얇디얇은 DVD나 스트리밍 목록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두께 속에는 흥미진진한 영화의 세계는 물론, 그 시절만의 아날로그 감성까지 채워져 있었던 것 같다.
1980~1990년대를 지나온 이라면 자신이 살던 동네에 단골 비디오 대여점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디오 대여점에 붙어 있는 ‘오늘 입고’ 안내문이 눈에 띄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신작이 들어오는 날이면 개점 시간 전부터 몇몇 사람이 문 앞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21세기 Z세대가 한정판 굿즈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듯, 20세기 소년 소녀는 신작 비디오를 빌리기 위해 기꺼이 ‘오픈 런’을 했던 것이다 . <쥬라기 공원>, <사랑과 영혼>, <투캅스>, <영웅본색> 같은 인기 영화들이 들어오면 일찌감치 빌려간 사람이 반납하기 전에는 구경조차 못 할 때도 있었다.
대여료는 1,000~2,000원 수준이었는데(옛날 영화는 500원짜리도 수두룩했다), 가끔은 반납일을 깜빡해 대여료보다 곱절 많은 연체료를 물기도 했다. 사장님은 연체료를 받으며 꼭 한마디씩 했다. “이건 하루만 늦어도 다른 손님이 목 빠지게 기다린다고.” 그때는 그저 귀찮고 아까운 돈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그 한마디에 비디오 대여 문화의 묘미가 있었다. 누군가가 보고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기다려야 했던 시절. 그 기다림이 우리를 더 설레게 했다.

책은 뒷전, 애니메이션 비디오에 빠져 있는 아이들(1987년). ©연합뉴스

책은 뒷전, 애니메이션 비디오에 빠져 있는 아이들(1987년). ©연합뉴스

신작 비디오 빌리려 ‘오픈 런’을 하기도

비디오 가게 안에는 묘한 구역이 있었다. 대체로 구석진 자리를 차지한 ‘성인물’ 코너. 청소년은 그 근처만 가도 부모님의 눈총을 받았는데, 다 큰 어른조차 괜히 그쪽에 다가서며 쭈뼛거리곤 했다. ‘섹시’라는 단어만 눈에 들어와도 화들짝 놀라던 그 시절만의 비디오 가게 풍경이다. 코미디·액션·멜로·공포·애니메이션이 장르별로 나뉘어 있었고, 어린이 코너에는 <도라에몽>과 <달려라 하니> 시리즈가 가득했다. 친구들과 함께 <우뢰매> 시리즈 등 ‘심형래 시리즈’를 빌려서 보며 깔깔대던 여름밤도 있었다.
비디오를 고르는 시간은 행복했다. 가족이 모두 모여 비디오 가게에서 각자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자 하면 아버지는 액션, 어머니는 멜로, 아이들은 애니메이션을 들고 와 서로 설득전을 벌였다. 결국 한 편을 빌리면 나머지 두 편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빌려온 비디오를 VCR(Video Cassette Recorder)에 넣고 ‘Play’ 버튼을 누르면 특유의 지직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화면이 켜졌다. 비디오테이프만 있으면 좁은 거실도 곧 영화관이 되었다. 팝콘 대신 삶은 옥수수나 수박을 먹으며 영화를 봤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한 번만 더 보자”라며 되감기를 했다.

‘뭘 빌려 볼까?’ 비디오 가게 진열장에 꽂힌 케이스들은 요즘의 섬네일 역할을 했다. ©연합뉴스

‘뭘 빌려 볼까?’ 비디오 가게 진열장에 꽂힌 케이스들은 요즘의 섬네일 역할을 했다. ©연합뉴스

집에 가서 비디오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

여름방학이면 친구들과 하루에 서너 편씩 영화를 돌려보기도 했다. 먼저 한 친구 집에서 보고, 바로 되감아 다른 친구 집으로 옮기고, 거기서 보고 나면 세 번째 집으로 이동했다. 비디오 하나가 하루종일 동네를 순환하던 날도 있었다. 그러면서 케이스는 조금씩 닳고, 테이프 라벨은 색이 바랬지만, 오히려 그 마모가 우리가 보낸 시간을 증명해주었다.
때로는 비디오를 빌리러 간 김에 일부러 대여점에 오래 머물렀다. “이 영화 재미있어요?” 하고 물으면 사장님은 마치 영화 평론가처럼 줄거리와 명장면을 설명해주었다. 덕분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는 말 많은 영화광들이 모였고, 때론 어린 영화광들이 성장했다. 이제 막 홍콩 영화에 빠진 소년에게 대학생 형은 명감독 스탠리 큐브릭을 이야기했고, 옆집 누나는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를 추천해주었다.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스크린보다 큰 영화의 세계를 만났다. 그 시절 비디오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추억을 엮는 필름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DVD가 보급되고, 이어 인터넷 다운로드가 확산하면서 비디오 대여점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비디오테이프가 사라지고, 그 대신 하드디스크에 영화 파일이 저장됐다. 이제는 OTT가 점령한 시대. 클릭 한 번으로 영화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비디오 시절의 ‘설렘’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

어느 날 오랜만에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지나다 비디오 대여점이 있던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선 걸 보았다. 유리문 위 간판 자리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지만, 내 눈엔 여전히 ‘오늘 입고’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를 빌려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울고, 사랑했다. 비디오는 사라졌지만, 비디오 시대의 추억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서 ‘재생 중’이다.

정명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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