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음식이라고 하면 나시고렝과 미고렝 정도를 떠올리지만,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의 맛과 향은 풍요로움으로 가득하다.
서울에서 삼발, 른당 같은 ‘진짜’ 인도네시아 음식을 즐기며 그 강렬하고 깊은 풍미를 느껴보자.
채소에 향신료를 넣고 강한 화력으로 불 향을 더해 맛을 살린다.
박소 사피, 아얌 바카르 삼발 마타, 른당 사피…. 단출하지만 암호 같은 이름이 가득한 메뉴다. 흔히 쓰는 식당 리뷰에 “외국 현지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이라는 말이 있다. 진부할 수 있지만, 이 말을 그대로 써도 된다. 메뉴부터 현지의 맥주와 음료, 발리의 상징과도 같은 라탄(등나무)과 티크 같은 아름다운 재질의 이국적인 탁자와 의자까지 인도네시아 발리 그대로다. “그런 것도 좋지만 음식이 발리답다, 발리 음식과 똑같다는 말을 들을 때 제일 좋아요.”
서핑으로 시작된 발리 사랑
아내 서수경은 원래 서핑 애호가다. 발리로 파도를 타러 다녔다. 전 세계 서퍼들이 손에 꼽는 곳이 바로 발리다. 남편 김재원을 만나면서 서핑을 못 다녔다. 식당을 차리면서부터다. 먹고사니즘(!)의 결과다. 부부가 같이 요리하고 손님 시중을 든다. 이른바 ‘핫플’(서 씨는 ‘소개팅 명당’으로 알려졌다며 환하게 웃었다)이라 손님이 많다. 메뉴 이름도 해석이 안 되는 음식인데, 찾는 이가 많다. 희한하다. “입소문 듣고 오시는 거죠. 마케팅이 뭔지도 모른 채 그냥 가정용 가스레인지 놓고 제가 좋아하던 발리 음식을 만들었어요. 남편이 팔을 걷어붙였죠. 원래 가수였어요. 꿈을 접고 주방장이 됐죠.” ‘발리인망원’의 짧은 역사다. 가게가 안온하면서도 묘한 흥분감을 준다. 이국적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낯설지만 매력적인 인도네시아 음식
발리는 한국에 잘 알려진 땅이다. 신혼여행지로 알아주는. 또 뭐가 있을까. 안타깝지만 활화산도 떠오른다. 하지만 음식은 아직 한국인에게 미지이며, 선뜻 생각하는 이는 적다. “그게 신기해요. 인도네시아 음식은 세계적으로 알아주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태국이나 베트남 음식은 아주 흔하지만 인도네시아 음식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미국에서 종종 유력한 언론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꼽는 설문이랄까, 기사를 낼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인도네시아 음식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도 나시고렝 같은 음식이 자주 랭킹에 올랐다. 동남아시아는 풍부한 재료와 자극적인 향신료, 그리고 소박한 구성의 음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그렇다. 특히 고추, 마늘,셜롯(Shallot; 양파처럼 생긴 연한 보라색 채소)이 중심을 이루는 재료가 세계인을 매혹시킨다. 물론 한국인도 좋아하는 맛이다. 김재원 씨가 팬을 놀릴 때마다 맛있는 향이 피어오른다.
인도네시아 요리의 핵심, 삼발
“새우장이 아주 중요해요.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어 현지 친구가 도와주기도 하죠. 인도네시아 음식이 생소하니까 수입되는 제품도 적어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어요. 없으니까 만들어 쓰는 거죠.” 메뉴판에는 ‘삼발 우당’이라는 인기 메뉴가 있다. 새우와 코코넛 밀크에 매콤한 소스를 넣은 요리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삼발은 매콤함을 담당한다. 맛보라고 한 종지 퍼준다. 어! 이국적인 고추장이랄까, 그냥 핫소스라고 말하기에는 결이 다르다. “삼발은 매운 소스 맞아요. 우리의 고추장 같기도 하고요. 여러 채소를 넣어 다른 맛으로 변화를 주기도 해요. 고추장, 쌈장, 막장, 초장 같은 게 다 있는 한식의 장맛을 생각하면 돼요.” 삼발은 고추·마늘·라임·새우장·땅콩·코코넛 등을 섞어 만든 매운 양념으로, 지역마다 수백 가지 버전이 있다. 한국의 고추장처럼 집집마다 비밀 레시피가 있고, 밥상에서 ‘없으면 허전한 반찬’ 역할을 한다. 이 식당에는 이곳만의 삼발이 여러 종류 있다. 삼발은 인도네시아 매운맛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섬이 수천 개에 달하는 만큼 음식이 제각각이지만, 삼발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쓰인다. 매운맛은 입맛을 자극할 뿐 아니라, 열대기후에서 땀을 내게 해 체온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
구운 닭다리 위에 풍미 깊은 삼발 소스와 신선한 채소가 어우러진 아얌 바카르 삼발 마타.
인도네시아식 모닝글로리볶음 요리, 캉쿵.
국민 음식, 나시고렝
“인도네시아도 한국처럼 쌀밥 문화예요. 밥에 반찬을 곁들이죠. 손님들이 처음에는 낯설게 생각하다가도 금세 접시를 비우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뭐니 뭐니 해도 인도네시아 음식 중에 가장 유명한 건 단연 나시고렝이다. ‘나시’는 밥, ‘고렝’은 볶았다는 뜻. 인도네시아의 노점에서 흔하게 팔리는 국민 음식이다. 케찹마니스(단맛이 나는 간장)와 마늘, 셜롯, 삼발이 조화를 이루고 그 위에 달걀프라이가 올라간다. 한 그릇으로도 든든해진다. 인도네시아에서 나시고렝은 무슬림 문화와 연결된다. 돼지고기를 쓰지 않고 닭고기·소고기·새우 같은 재료가 주를 이루는데, 다수의 인도네시아인이 이슬람 신자인 까닭이다. 하지만 발리처럼 힌두교가 중심인 지역에서는 가끔 돼지고기 버전도 등장한다. 이렇게 나시고렝 한 그릇만으로도 인도네시아의 종교적 다양성과 다민족 사회의 특성이 드러난다.
인도네시아 음식 문화를 주제로 김재원·서수경 사장과 박찬일 셰프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중국 이민자로부터 시작된 미고렝
볶음국수도 빼놓을 수 없다. ‘미’는 국수란 뜻. 사실 이 나라에서 면은 외래 요소다. 13세기 이후 중국 화교의 이주와 함께 밀면 문화가 들어왔고, 여기에 인도네시아 고유의 향신료와 소스가 더해져 지금의 미고렝이 탄생했다. 발리인망원에서 맛본 미고렝은 한국의 볶음라면을 연상시키지만, 풍미가 다르다. 간장과 삼발이 그 맛을 책임진다. 여기에 새우장이 더해진다. 자꾸만 면발이 당길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사테 같은 꼬치 요리를 즐긴다. 거리에서 즐비하게 늘어선 노점을 볼 수 있고, 고급 식당에서도 사테는 빠지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재료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바나나잎은 요리에 자주 이용되고 접시로도 쓰인다. 코코넛 밀크는 인도네시아 음식의 ‘부드럽고 진한 풍미’를 만든다. 수마트라 지역의 ‘른당(소고기 코코넛 스튜)’ 같은 요리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로 꼽히며, 코코넛 문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아! 글 서두에 나온 박소 사피는 소고기 국수이고, 아얌 바카르 삼발 마타는 삼발 소스를 발라 구운 닭고기 요리다. 무엇이든 밥과 잘 어울린다. ‘망리단길’은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화제를 몰고 온 동네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침체기도 겪었다. 원래 조용하고 임대료도 저렴한 동네였는데, 인기가 오르고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도 있었다. 요즘은 안정세로 돌아선 분위기다. 인도네시아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다는 건 이 동네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네라는 뜻이다.
박찬일
1965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노포의 장사법>, <밥 먹다가 울컥> 등의 책을 내며 ‘글을 맛있게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
수많은 섬과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의 음식은 풍부한 향신료와 재료가 만들어내는 깊은 맛 덕분에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들.
나시고렝(Nasi Goreng)
간장 소스와 향신료를 넣어 볶아낸 인도네시아식 볶음밥.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미고렝(Mie Goreng)
쫄깃한 면에 채소와 고기를 더해 간장 소스로 볶아낸 국수 요리. 만들기 쉽고, 맛과 향이 풍부해 사랑받는다.
사테(Sate)
숯불에 구운 꼬치 요리를 말한다. 고소한 땅콩 소스를 곁들여 담백하면서도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른당(Rendang)
소고기를 코코넛 밀크, 향신료와 함께 오래 끓여 진한 풍미와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소토 아얌(Soto Ayam)
강황이 들어가 노란빛을 띠는 닭고기 수프. 각종 채소와 국수를 넣어 먹는다.
서울에서 만나는 이국의 맛, 인도네시아
서울에서도 강렬하고 깊은 풍미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 레스토랑을 만날 수 있다.
볶음밥 ‘나시고렝’, 꼬치 요리 ‘사테’, 향신료를 가득 머금은 ‘른당’ 등 다양한 메뉴는 현지의 풍미를 그대로담 고 있다.
#망원동 골목에서 만나는 작은 발리
발리인망원
이름 그대로 발리의 공기를 서울에 옮겨놓은 듯 한 식당이다. 깔끔한 공간에 아기자기한 소품들 이 어우러져 문을 열면 곧 바닷가가 펼쳐질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픈 키친에서는 사장님이 요리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 기다림마저 즐겁다. 이곳의 시작은 발리 여행에서 비롯됐다. 서퍼였던 아내가 발리의 매력에 빠져 식당을 열었고, 남편은 현지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배우며 그 맛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인도네시아 대표 음식에 항상 등장하는 전통 소스 ‘삼발’부터 각종 재료까지 직접 준비해 요리하는 덕분에 이곳의 음식에는 정성이 듬뿍 담겨 있다. 대표 메뉴로는 구운 치킨 ‘아얌 바카르 삼발 마타’, 소고기 요리 ‘른당 사피’, 인도네시아식 채소볶음 ‘캉쿵’ 등 이 있다. 모두 현지의 맛을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 려는 노력이 깃든 요리들이다. 서울에서 발리를 만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이곳에 있다.
가격 아얌 바카르 삼발 마타 1만6,000원, 미고렝 1만2,000원, 캉쿵 8,000원
인스타그램 @bali_in_mangwon
#입안 가득 퍼지는 인도네시아의 풍미
할로인도네시아
현지인 셰프들이 직접 요리하는 ‘할로인도네시아’는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모던한 인테리어 속에서도 인도네시아 특유의 감각이 은은하게 묻어나 낯설지만 따뜻함이 흐르는 느낌이다. 손님들 역시 현지인이 많아 마치 자카르타 한복판에 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메뉴는 100% 인도네시아 현지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나시고렝과 른당은 기본이고, 서부 수마트라 지역의 전통 백반으로 알려진 나시파당까지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꼬치 요리인 사테는 닭·소·양고기 등 다양한 재료를 직접 선택할 수 있어 현지분위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향신료가 풍부하게 어우러진 요리들은 한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이국적 풍미를 전한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각종 술도 만날 수 있다.
가격 나시고렝 BRK 1만4,000원, 른당 사피 1만8,000원, 나시파당 파루고렝 1만7,000원
인스타그램 @halo_indonesia_brkfamily
#발리의 시간을 담은 식당
발리문
‘발리문’은 발리 전통 음식을 선보이는 식당이다. 고객층은 주로 한국인이지만, 맛만큼은 현지에서 즐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창업자는 발리의 쿠킹 클래스를 시작으로 ‘보류문’과 ‘페아론 발리’ 등 현지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며 조리법을 익혔다. 치킨을 향신료와 코코넛 밀크에 끓여낸 른당, 볶음밥 나시고렝, 볶음면 미고렝 등은 현지 셰프들과 함께하며 체득한 진짜 발리의 맛이다. 발리는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 문화를 간직한 섬으로, 소를 신성시하는 독특한 식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만드는 요리는 단순한 한 끼를 넘어 음식의 이야기와 철학을 전하기에 이곳의 음식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현지에서 쌓은 경험과 시간이 담긴 레시피를 바탕으로 한국인 입맛에 맞춘 이국의 맛을 경험해보자.
가격 른당 아얌 1만8,000원, 나시고렝 1만2,000원, 미고렝 1만2,500원,바비 캉쿵 1만6,000원
인스타그램 @balimoon_seoul
글 배효은 사진 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