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치는 서울의 작은 구석들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건축 칼럼니스트 배윤경은 '불란서'식 지붕을 얹은 미니 2층 양옥집에서도 그 집에 담긴 마음과 시대상을 본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나 연희동, 잠실동, 상도동을 거쳐 반포동에 살고 있다. 1988년에 이사 온 뒤 계속 한동네에 살았다. 그래서 이 동네에 남다른 애착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다. 도시공학에 충실한 아파트 병풍 속에서의 삶이란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의식에 불과하다. 오히려 애틋한 쪽이라면 7년 정도 살았던 상도동을 꼽는다. 새삼 걱정이 없던 때이기도 하거니와 단독주택, 다세대·다가구 빌라, 맨션 등 아파트와는 다른 종류의 거주를 간접경험한 기억이 특별해서다.
2012년 어린이를 위해 쓴 책 서문에 적었듯, 그때의 나는 나와 다른 삶을 발견한다는 환상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저는 친구들을 졸라 그 들의 집에 놀러 갔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의 집부터 정원과 연못이 딸린 근사한 양옥집은 물론이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몇 번이고 돌아야만 다다르는 언덕 위 허름한 집까지 가리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중략) 집주인 이름을 알리는 문패라던가 안방에 걸린 글씨를 읽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마당의 디딤돌을 하나씩 밟을 때, 어둡고 음침한 지하실에 내려갈 때, 지붕 모양이 그대로 천장이 된 다락방에 들어갔을 때 각기 모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집에 다시 주목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타국에서 살다 온 뒤였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다. 갑자기 순댓국이 맛있어지는 나이가 되었고, 외국에서 당한 이방인 취급은 내가 속한 곳이 어디인지 자문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서양 건축 거장의 야심 찬 선언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이기도 했다. 우리 세대는 건축으로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한순간에 사라지는 동네를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건축은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운 설계 교육은 기후, 재료, 법규 등 발생 조건부터 우리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실상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일단 자신이 살아온 터전을 긍정하는 법부터 시작했다. 우리는 건축가의 작품이 아니라 산업 역군의 생산품 혹은 그 부산물에서 자랐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것이 잘못된 삶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1990년대의 스승들이 비판했던 1970~80년대 집장사, 허가방* 주택에도 미덕은 존재했다.
이런 주제로 작업을 하는 예술가 중에는 잉고 바움가르텐이 있다.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그는 1993년 대전 엑스포를 계기로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09년에는 서교동의 양옥집을 구매했다. 그의 회화로 추측하면 그 서교동 집은 드라마 <응답하라1988>의 정봉이네 집을 닮았을 것이다. 박철수 교수의 저서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에 등장하는 '불란서식 지붕'을 얹은 1970년대 미니 2층 양옥집 말이다. 세를 주기 위한 반지하와 1층 주인집의 구성이라 2층보다는 작은 규모다. 그는 한국적인 대문과 곡선 장식에 콜로니얼 스타일**이 뒤섞인 양옥집에서 경이로움과 미스터리를 느꼈다. 그래서 처음 이 집을 발견했을 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서양을 모방한 일본의 '문화주택'이 한국으로 이식되면서 열화된 미니 2층 양옥집은 족보가 뒤죽박죽 꼬인 상태였으니 역사와 지역, 규범과 일탈이 건축에서 충돌하는 사건은 분명 예술가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집장사, 허가방 주택: 최소 비용으로 인허가만을 위한 설계 도면으로 지은 집.
**콜로니얼 스타일: 유럽에 본국을 둔 식민지에서 본국의 건축을 모방한 양식.
화분을 올린 단순한 평지붕은 '건축화된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미니 2층 양옥집에서 애정하는 대상은 적벽돌, 장식 아치, 내민창 등의 요소와 대문이다. 그 대문이 멋진 이유는 한옥의 솟을 대문처럼 지붕을 갖기 때문이다. 덕분에 단순히 문으로만 구성된 방식보다 존재감이 더해질 뿐 아니라, 작은 여유 공간까지 생긴다. 좌우 하나의 수직 구조체와 지붕으로 이뤄진 간결한 구성은 중력을 딛고 공간을 만드는 모든 방식의 출발점이다. 과장하자면 그 대문은 고전주의건축 이론의 지표가 된 로지에 신부의 <건축론>(1753년)에서 '건축의 원형'으로 제시된 '원시 오두막'을 떠올리게 한다. 책의 속표지에는 건축의 여신이 수직 기둥, 수평 인방(引枋), 삼각형 지붕 구조로 짜인 나무를 가리키는 삽화가 실렸다. "이보게, 저것이 진짜 건축일세. 과한 구조도 필요 없고, 화려한 장식은 더더욱" 이라는 대사를 달아도 좋을 장면이다. 그 나무를 양옥집이나 다세대주택의 대문으로 바꿔도 무방할 것 같다.
이렇듯 미니 2층 양옥집의 대문은 충분히 기능적인 구조체여서 조형 요소나 마감재가 붙더라도 보기에 불편하지 않다. 한옥의 목구조를 콘크리트로 단순하게 구현한 점에서도, 십장생 부조나 금속 파이프를 이용한 기하학 패턴 같은 장식에서도 취향과 고민의 지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정 높이마다 가로로 줄을 그어 돌을 쌓은 척하거나, 거친 화강석을 붙여 양감을 주는 행위는 소중한 가정이 돌처럼 단단하고 영원하기를 비는 기원 아닐까. 내가 가장 반색하는 구성은 단순한 평지붕에 화분을 잔뜩 올린 대문이다. 마당이 부족한 집에서 한 톨의 평지도 아낌없이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건축화된 자연을 만날 때면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화색이 돌고, 반드시 사진으로 남긴다. 주위에 가득 화분을둔 우리네 대문은 신화 속 공중 정원의 재림이다.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은 그리스 건축을 취사선택하기 위한 그럴싸한 허구다. 나무가 스스로 건축구조를 이루며 자랄 리 없잖은가. 바빌로니아의 공중 정원 역시 검증되지 않은 판타지다. 하지만 진실과 꾸밈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모든 것이 기능과 효율로 재단되는 시대에도 살아남았다. 서울은 꽤 오랜 세월을 내려온 도시다. 중심에서 벗어난 시골의 위기감이 <전설의 고향>을 낳았다면, 서울은 도시와 건축으로 나름의 야화를 꾸몄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지을 때 깎아낸 양말산(羊馬山)에는 궁녀의 묘가 많았기에 원혼을 달래고자 거석을 세웠다거나,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대연각호텔을 바라보는 쪽으로 불의 기운에 대항하는 독수리상을 놓았다거나, 철근콘크리트로 올라가는 남산타워를 보고 시민들이 남산터널에 고이는 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굴뚝인 줄 알았다거나, 63빌딩을 설계한 건축가 해리 D.솜(Harry D. Som)을 미국 굴지의 설계 회사 S.O.M.으로 오인한다거나. 나는 이런 쓸데없는 소리, 팔자 좋은 얘기, 그렇고 그런 낭만이 쌓일 수 있도록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서울의 '구석'을 좋아한다.
글 & 사진. 배윤경(건축 칼럼니스트)
배윤경은 대학에서 건축설계와 이론을 강의하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고 있다.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어린이를 위한 유쾌한 세계 건축 여행>을 썼다. 공저로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건설 과정을 기록한 < New Beauty Space: Amorepacifi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