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위탁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에게 집을 내주는 제도다.
서울 중구 유일의 비혈연 위탁 가정, 그 시작은 한 아이를 위한 성탄절 저녁의 결심이었다.
2015년 크리스마스이브. 보육원에서 퇴근하던 그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생후 100일 된 은수가 첫 성탄을 보육원에서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은 아이를 보육원에 두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 아이의 첫 성탄절이잖아요.“ 결국 그는 포대기로 아이를 싸 업은 채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은수는 그의 보호 대상이 아닌, 가족이 되었다.
성탄절에 찾아온 아이, 엄마가 되기로 한 날
은수는 보육원에서 태열과 아토피로 늘 힘들어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에 데려오자 씻기고 로션 바르는 것 외에 별다른 걸 하지도 않았는데 피부가 좋아졌다. “은수의 피부가 달라진 걸 보고 가족들이 먼저 말했어요. ‘이 아이는 우리 집에서 자라야겠다’라고요.“ 친정어머니, 남편, 자녀 모두가 은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가정 위탁은 제도적으로는 저 혼자 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온 가족이 같이 한 일이에요. 한 명이라도 반대했다면 시작조차 어려웠을 테니까요.“
함께 만들어낸 치유와 성장의 시간
집에 온 이후 은수는 밤마다 깊은 잠에서 깨 울곤 했다. 그는 그 울음이 ‘야경증’이 라는 걸 알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이의 마음을 느끼는 일이었다. 울음 속에 깃든 불안과 두려움을 알기에 3년 가까이 이어진 긴 시간 동안 그녀는 밤마다 아이 곁에 앉아 말을 걸고, 책을 읽어주고, 속삭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낮잠 자던 은수가 또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아이를 다독이며 말했다. “엄마 목소리 들어야 돼. 엄마 여기 있어.” 아이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갔어.” 그녀는 아이의 깊은 상처를 마주했다. “그날 드디어 은수가 자기감정을 말하기 시작했구나 싶었어요. 회복이 시작되는 거였죠.” 그는 은수를 꼭 안고 말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이 엄마는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아.” 그날 이후 은수의 밤은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렇듯 은수 역시 성장 과정에서 혼란과 흔들림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읽으려 애썼다. 덕분에 반복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는 조금씩 신뢰를 쌓아갔고, 그 역시 부모로서의 마음을 단단히 다져갔다. 9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은수는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이 되었다.
가정 위탁은 우리 사회가 양육을 함께 응원하는 것
가정 위탁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결핍을 가진 아이를 온전한 애정으로 품는 일이다. 보육원에서도 많은 사람이 아이를 정성껏 돌보지만, 집에서처럼 온전한 사랑을 나눌 순 없다. “모든 아이가 부모에게 깊이 사랑받고 싶어 하죠. 그런 환경을 위해 든든한 가족의 울타리를 제공해 주는 일은 무척 중요해요.”
제도가 생긴 지 20년이 넘었지만 가정 위탁 제도는 여전히 낯설다. “가정 위탁은 그 아이의 인생에 조용히 곁을 내주는 일이에요. 그리고 아이의 친부모가 원할 때 혹은 아이가 원할 때 언제든 나에게서 떠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둬야 하는 일이기 도 하죠.” 그는 덧붙였다. “이제는 우리가 확장된 어른이 돼야 할 때예요. 가정 위탁 이라는 건 착한 사람이 특별하게 하는 일이 아니에요. 사회가 함께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는 제도죠. 아이들이 편안하게 자라야 우리 사회도 건강해지는 거잖아요.” 오늘도 그녀는 그렇게 살아간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특별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로.
+ 가정 위탁 제도
친부모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아동을 위탁 가정과 연결해 일정 기간 동안 가정 내 양육을 가능케 하는 제도다.
입양과 달리 친권은 유지되며,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정서적·경제적·행정적 지원이 함께 이뤄진다. 5월 22일은 제22회 ‘가정 위탁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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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수은 사진 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