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와 햄, 족발처럼 익숙한 메뉴부터 발효 요리까지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발전한 독일 음식은 고유한 문화와 기후 역사가 빚어낸 결과다.
서울에도 현지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식당들이 있으니 독일 정통의 풍미를 생생하게 경험해보자.
돼지고기를 사랑한 나라, 독일
독일 음식 하면 풍성한 돼지고기 요리가 떠오른다. 소시지, 햄 같은 것 말이다. 실제로 독일 사람은 돼지고기를 즐기는 것이 틀림없다. 독일 음식은 한국에도 이런 육가공품을 중심으로 소개되고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사실 육가공의 주요 기술은 독일에서 받아들인 것이 대부분이다. 유학을 가거나 기술제휴 등으로 한국에 건너왔다.
독일 사람이 돼지고기를 많이 먹게 된 것은 기후와 역사적 이유가 크다. 독일에선 밀과 호밀, 보리, 감자 등이 잘 자란다. 이 작물의 부산물은 돼지를 기르기에 좋다. 예를 들어 같은 유럽도 남부 지역은 돼지를 기르기 어렵다. 건조하고 더운 데다가 밀 등의 작물이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또 독일은 삼림이 우거져 돼지가 좋아하는 도토리와 밤 등의 열매가 풍부하다. 이런 이유 외에도 종교적으로 돼지고기를 금하지 않고 장려했다. 신자들은 곧 국민인데, 이들이 돼지를 길러 부자가 되는 것은 교회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독일 육가공 문화의 뿌리
고기도 고기지만 육가공은 독일 음식의 상징이다. 한국의 초기 소시지·햄 회사들은 독일을 연상시키는 지명을 많이 사용했다. 세계인에게 독일은 곧 소시지의 나라였다. 육가공이 발달한 것 역시 기후 덕분이다. 겨울이 추운 독일은 지방이 풍부한 식량이 필요했고, 돼지고기가 제격이었다. 이는 인근의 오스트리아와 동구권의 여러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에서는 늦가을에 큰 축제가 열린다. 바로 ‘슐라흐트페스트(Schlachtfest)’다. 돼지 잡는 축제로 이해하면 된다. 농사가 끝난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돼지를 잡아 공동체 사람들이 함께 즐긴다. 지금도 이 축제는 지속되고 있으며, 관광객까지 끌어모은다.
소시지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독일과 유럽 음식이다. 저장성, 보존성, 영양을 고루 갖춘 최상의 음식으로 사랑받았다. 독일의 경우 중세에 지역별로 특색 있는 소시지가 발달했고, 양념도 달랐다. 도시마다 소시지 조합(Wurst Zunft)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넓은 세계가 짐작된다. 일상의 음식이자 축제의 음식이었으며, 전쟁에도 필수적인 전투식량이었다.
학세에 불 향을 입히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서울 월곡에서 만난 진짜 독일
서울 동부권인 월곡역 인근의 독일 식당 겸 술집 ‘비너발트’. 육동주 대표가 일행을 맞아준다. 독일에서 공수해 오는 생맥주와 소시지, 독일 족발이 유명한 집이다. 한때 서울에는 독일식 이름을 단 호프집과 족발·소시지 안주를 파는 집이 아주 많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비너발트는 시내를 벗어난 지역에서 2008년부터 꿋꿋하게 문을 열고 있는 독일 음식 전문점이다.
“삼촌이 돼지 육가공 전문가였어요. 한국의 여러 대학과 현장에서 일을 배웠고, 나중에는 독일에 직접 가서 7년 동안 생활하며 육가공을 했어요.” 육 대표 역시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 등 육가공을 잘하는 장인(마이스터)을 찾아가 일을 배우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의 식당은 술집 성격이 강한데, 한국에서 독일 음식은 맥주에 곁들여 먹는 안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독일 음식을 제대로 하느냐를 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여러 가지 소시지를 직접 가공하는가, 족발이나 기타 독일의 육가공 요리가 있는가, 직접 담그는 발효식품이 있는가 등이다. 비너발트는 이를 모두 충족한다. 사워크라우트(Sauerkraut)만 해도 톡 쏘는 발효 향에 독일식 향료를 제대로 사용해 이국적 맛이 난다.
“저는 원래 ‘산꾼’이었어요. 도봉산 구조대 일을 했습니다. 몸을 다쳐서 그만두게 되고, 생계를 이어야 해서 궁리 끝에 시작한 게 이 술집이었죠.” 기왕 독일식 이름을 붙이고 가게를 운영하려면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독일로 떠나 갖은 고생을 하며 배운 것이다. 상호 ‘비너발트(Wienerwald)’는 오스트리아 수도인 빈과 독일 접경을 이루는 커다란 숲을 뜻하는 말이다.
독일 현지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브라트부르스트도 꼭 맛보길.
오븐에 구워 속이 더 쫄깃한 비너발트의 학세.
전통 육가공에 담긴 독일의 맛
독일의 육가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다양하다. 비계만 발효시켜 버터처럼 가공하는 기술, 돼지고기와 비계의 조합과 향료, 크기, 창자의 모양, 숙성 방법에 따라 엄청난 가짓수가 존재하는 소시지와 햄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깊다. “생소시지를 만들어 숙성해서 그냥 먹는 것도 있어요. 놀랍도록 맛있죠. 한국에서는 팔지 않지만요. 소시지를 굽거나 튀기는 게 한국에서는 일반적인데, 독일은 삶는 것도 좋아합니다. 흰 소시지를 삶아 뜨거운 물에 담아내는 요리도 있어요. 우리도 메뉴에 있습니다. 지역별로, 그리고 마이스터별로 워낙 다양한 소시지가 있어 짧게 설명을 드릴 수가 없네요.(웃음)” 이 가게 인근에는 카이스트와 키스트 등 연구 단지가 있어 학생과 교수들이 이 가게의 고객이다. 지금도 20년째 오고 있는 단골이 있다. 학생으로 왔다가 교수가 되어서도 찾는다. “석사 및 박사과정 학생들이 밤늦게 기숙사 담을 넘어와서 밤새 마시고 새벽에 돌아가는 일도 많았어요. 낭만이 있던 시절의 일이죠.(웃음)”
우리 취재진이 매달 이 코너를 진행하면서 지키는 원칙이 있다. 가급적 여러 가지 음식을 직접 사 먹어보면서 원고의 내용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가게에선 생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독일에서 날아오는 최상급이다. 안 마실 수가 없어 취재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게 후일담이다.
이 가게의 중요한 음식 중 하나는 ‘학세’라고 부르는 뮌헨의 수도원식 족발이다. 돼지 족을 구입해 직접 염지하고 오븐에 굽는다. 바삭한 껍질이 핵심이다. 놀라운 맛이라는 걸 전해드리고자 한다. 서울 여러 지역에서 이 학세를 독일식으로 조리하는 집들이 늘고 있다. 한번 찾아가 보길 추천한다.
보통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라고 일컫는 학세는 독일 남부 지역인 바이에른 지방을 대표하는 전통 요리인데, 우리의 족발과 같은 부위를 쓴다. 돼지의 무릎 아래 정강이 부분을 삶거나 굽는데, 천천히 오래 요리해서 부드럽게 만든다. 이런 족발 요리는 가정에서 조리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외식으로 먹는다. 우리도 족발을 직접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드물듯이.
독일 식탁의 또 다른 주인공, 빵
독일 음식에서 돼지 육가공 말고도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것은 빵이다. 빵을 빼놓고는 독일 음식을 말하기 어렵다. 흔히 프랑스를 빵의 나라라고 하지만, 독일도 대단하다. 호밀이 함유된 브로트(Brot), 브뢰트헨(Brötchen) 그리고 매듭처럼 꼬인 모양의 브레첼(Brezel)은 독일 식탁의 멋진 주인공이다. 서울에도 독일에서 빵을 공부하고 돌아와 영업하고 있는 여의도의 ‘브로트아트’ 등 잘하는 집이 몇몇 있다.
학세를 먹기 좋게 자르고 있는 육동주 비너발트 대표와 박찬일 셰프.
박찬일
1965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노포의 장사법>, <밥 먹다가 울컥> 등의 책을 내며 ‘글을 맛있게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독일인의 소울 푸드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
독일식 족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매력이다. 맥주에 절여 구운 고소한 풍미 덕분에 시원한 맥주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며, 학세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요리다.
슈니첼(Schnitzel)
얇게 저민 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바삭하게 튀긴 독일식 커틀릿이다. 겉은 고소하고 속은 부드러워 누구나 즐기기 좋고, 감자 요리나 레몬 슬라이스를 곁들이면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
돼지고기와 허브로 만든 구운 소시지로, 담백하고 풍부한 육즙이 특징이다. 직화로 구워 겉은 쫄깃하고 속은 촉촉하다. 겨자나 사워크라우트를 곁들이면 감칠맛이 배가된다.
사워크라우트(Sauerkraut)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독일식 절임 요리다. 새콤한 맛이 육류의 느끼함을 잡아주며, 브라트부르스트나 학세와 함께 먹으면 입맛을 깔끔하게 살려준다.
서울에서 만나는 독일의 풍미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노포부터 독일 가정식을 선보이는 작은 식당까지.
서울에는 독일 음식의 풍미를 고스란히 담아낸 공간들이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독일의 식탁을 만날 수 있는 식당을 소개한다.
#손맛으로 완성하는 독일 정통의 풍미
비너발트
성북구 월곡로에 위치한 ‘비너발트’는 18년째 자리를 지켜온 독일 음식 전문점이다. 독일에서 육가공을 전공한 오너와 오랜 미식 여행을 다녀온 친이모가 함께 운영한다. 80여 미터 떨어진 곳 에는 오너의 아내가 세련된 분위기의 ‘프랑크푸르트 비너발트’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 메뉴인 슈바인스학세는 오븐에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자랑한다. 다양한 향신료로 맛을 낸 수제 소시지는 독일 현지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다. 사워크라우트와 소스까지 모두 직접 완성한다. 오랜 단골이 많아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1,200ml 대형 맥주잔에 나오는 다양한 독일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비너발트만의 매력이다. 서울에서 진짜 독일 요리를 만나고 싶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인스타그램 @wienerwald_korea
가격 비너발트 불꽃 슈바인스학세 2만9,000원, 학세 모둠 플래터 A 4만5,000원, 비너발트 모둠 소시지 2만 원, 뮌헤너바이스 2만 원, 크롬바커 바이젠 9,000원(500ml 기준)
#독일 가정식의 정수
나드리슈니첼
도봉구 창동에 위치한 ‘나드리슈니첼’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가정식을 선보이는 소박한 식당이다. 오너 혼자 식당을 운영하며 모든 요리를 직접 준비한다. 대표 메뉴인 ‘슈니첼’은 고기를 직접 다듬어 만드는데, 바삭한 식감과 부드러운 속살이 조화를 이룬다. 손수 만든 라즈베리잼, 타르타르 소스, 드미글라스 소스 등 다양한 소스와 함께 제공된다. 토마토와 각종 채소를 아낌없이 넣고 끓여낸 독일식 굴라슈는 슈니첼에 곁들여 먹기 좋은 메뉴. 은근한 매콤함과 깊은 풍미가 어우러져 튀김 요리와 잘 어울린다. 샐러드 소스까지 직접 만들 정도로 정성이 깃든 요리는 가정식 특유의 따뜻한 느낌을 자아낸다. 공간이 작고 아늑해 ‘혼밥’은 물론, 조용한 식사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유럽 가정식을 경험하고 싶다면 나드리슈니첼을 방문해보자.
가격 슈니첼 1만1,000원,치즈 슈니첼 1만3,500원,굴라슈 1만 원,목살 스테이크 1만2,000원
#세련된 감각으로 즐기는 독일식 다이닝
어반나이프
‘어반나이프’는 독일 정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레스토랑이다. 가족이 운영하는 독일식 수제 소시지 공장에서 공급하는 소시지를 사용해 미국 CIA 요리 학교 출신 셰프가 음식을 만든다. 이 소시지는 독일 현지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적이 있으며, 스타 셰프 안성재도 구매해 즐길 만큼 맛을 인정받았다. 대표 메뉴인 슈바인스학세는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이 조화를 이룬다. 소시지 플레이트, 독일식 삼겹살 스테이크 ‘예거브라텐’, 생면 볼로네세 등 독일 전통 요리와 유럽 대중 음식으로 폭넓게 구성됐다. 독일 소시지를 창의적으로 활용한 메뉴 구성도 돋보인다. 연속 ‘블루리본’을 받으면서 일관된 맛의 완성도를 인정받은 곳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시지 전문 매장 ‘어반나이프 임비스’도 강남구 신사동에 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_urban_knife_
가격 정통 옥토버 학세 & 프리스 3만 원, 예거브라텐 2만8,000원, 부르스트 플래터 3만5,000원, 커리부르스트 & 프리스 1만2,000원
글 배효은 사진 박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