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효과도 좋은 걷기 운동.
그중에서도 황톳길 걷기가 인기를 끌면서 이제 서울 곳곳에서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맨발로 자연을 고스란히 느끼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황톳길 걷기의 매력을 알아보자.
봄비가 내린 다음 날, 발바닥으로 땅의 기운을 느끼며 서초문화예술공원 황톳길을 걷는 사람들.
맨발 걷기를 할 수 있는 황톳길이 서울의 공원과 숲 곳곳에 생겨났다. 걷기 운동은 도구도 필요 없고, 비용도 들지 않아 누구나 편하게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건강 유지에는 최상의 운동인 셈이다. 노년층은 물론이고 젊은 층에서도 저속 노화 실천 방안으로 걷기 운동을 주목하는 가운데 맨발로 부드러운 황토를 밟으며 자연과 몸을 연결하는 ‘그라운딩(Grounding)’ 또는 ‘어싱(Earthing)’이 인기다. 단순히 ‘걷기 운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땅과 직접 접촉하는 ‘접지(接地)’ 효과를 얻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황톳길 걷기는 황토에 세포의 생리작용을 활발하게 해주는 원적외선 등 우리 몸에 좋은 물질이 많이 함유되었다는 이유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따라 걷기 좋은 황톳길이 조성된 숲이나 공원은 주말이면 자연의 힐링 효과를 온전히 느끼려는 ‘어싱족’으로 넘쳐난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하루를 축복 속에서 보내고 싶다면 아침에 일어나 걸어라”라고 했다. 이왕 걷는 것, 건강에 좋은 황톳길에서 맨발 걷기로 몸은 물론 마음까지 건강하게 만들어보자.
봄비가 내린 다음 날, 발바닥으로 땅의 기운을 느끼며 서초문화예술공원 황톳길을 걷는 사람들.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 사람들
허리 디스크 수술 후 의사의 권유로 재활을 위해 걷기 운동을 할 장소를 알아보던 중 남산자락길에 위치한 맨발 걷기 코스를 알게 된 윤소정 씨는 잘 조성된 황톳길이 ‘도심 속 오아시스’ 같다고 말한다. “근처에 오래 살았지만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체력단련장을 갖춘 공원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숲길 트레킹 코스·지압보도·맨발 걷기 코스 등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가볍게 운동하고 싶을 때나 힐링을 하고 싶을 때면 양말을 벗고 이곳을 걷습니다. 발에 느껴지는 흙의 감촉에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매일 아침 양재동 서초문화예술공원 황톳길에서 걷기로 하루를 여는 최지민 씨는 야외에서 하는 자유로운 걷기 운동을 위해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다 이곳을 알게 되었다. “저속 노화에 관한 강의를 듣고 난 후부터 건강관리에 부쩍 신경 쓰게 되었어요. 아침 걷기 운동이 다이어트는 물론, 신진대사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부터 걷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주변 풍경 덕분에 매일 꿈꾸던 아침을 맞이하고 있어요.”
2년 전 엄마가 된 하윤희 씨에게는 요즘 아끼고 싶은 특별한 시간이 생겼다. 24개월 된 아들 주완이의 손을 잡고 월드컵공원 유아숲체험원을 걷는 오후 한나절이다. 얼마 전 걸음마를 떼고 이제 달리는 시늉까지 하는 주완이에게 월드컵공원 유아숲체험원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건강한 운동장이다. “맑은 공기와 부드러운 흙은 물론, 아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시설물이 있어 좋아요. 아파트 단지 내 좁은 놀이터에서 놀게 하는 것보다 넓은 자연에서 흙을 밟으며 놀게 하고 싶었는데, 아이가 이곳을 너무 좋아해서 자주 찾아와 손을 잡고 걸어요. 흙이 부드러운 구간에서는 맨발로 걷기도 하는데, 아이가 너무 신나 해요.”
“걷기를 실천하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과 함께하는 게 신체와 정서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어요.
주변에 걷기 좋은 숲길과 흙길이 많아서 선택지도 다양해요.
흙길 걷기가 아이의 성장은 물론, 제 삶의 질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자주 실천하고 있어요.”
_ 하윤희·강주완
+ 안전한 황톳길 걷기를 위한 확인 사항
발 부상 위험
맨발로 흙길을 걷다 보면 돌·유리 조각·나뭇가지 등 날카로운 물체에 찔려 발에 상처를 입기 쉽고, 여름철 뜨거운 지면의 경우 발에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 안전하게 조성된 황톳길에서만 걷는 것을 추천한다.
피부 자극·알레르기
숲에 조성된 황톳길을 걸을 경우 피부 알레르기에 주의하자. 맨발로 걷는 과정에서 풀밭이나 꽃, 나무 등에 자극을 받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걷기 전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날씨
황톳길 걷기는 날씨에 매우 민감한 활동이다. 더운 날씨에는 발에 화상을 입을 수 있고, 비가 온 다음에는 미끄러질 수 있다. 날씨를 미리 확인하고, 지면 상태 점검과 기온에 맞는 적절한 준비는 필수다.
걷기 예절
일행과 함께라면 다른 이용자를 배려해 한 줄 걷기를 하는 것이 좋다. 맨발 걷기 코스인 만큼 반려견 출입은 삼가도록 한다. 휴대폰 음악은 이어폰을 이용하거나 잠시 꺼두는 것이 좋다.
남산소나무힐링숲 황톳길. 사람들은 맨발로 황토를 밟으며 저마다 몰입의 시간을 가진다.
남산소나무힐링숲 ‘어싱’부터 산기슭 황톳길의 걷기 명상까지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걸어본 사람은 없다는 맨발 걷기. 맨발 걷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황톳길을 걸을 때의 감촉을 잊지 못한다. 처음엔 서늘할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 압도적으로 와닿지만, 이내 발가락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감각이 동원되다 보니 평소 느끼지 못하는 감촉을 느끼며 깊은 몰입에 빠져들게 된다.
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황톳길 걷기는 신체에 여러 가지 이점을 가져다주는 활동이다. 황토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은 세포의 생리작용을 활발하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발은 26개의 뼈와 10여 개의 힘줄과 인대로 이뤄져 있으며, 사람 몸의 여러 장기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발을 마사지하거나 맨발로 걸으며 얻게 되는 이로움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정선근 서울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맨발로 걷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자세 교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으면서 발목과 발 근육이 더욱 효율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황토에는 체내 노폐물을 분해하는 항균 효소가 많이 함유되어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 불면증 개선, 원활한 신진대사 등의 건강 효과도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남산소나무힐링숲 황톳길을 걷는다는 윤소정 씨는 “전반적으로 신체 건강이 개선되는 것이 느껴진다”라며 “특히 균형 감각 회복에 도움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전반적인 체력과 에너지 수준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접지는 땅과 맨발의 접촉 시간이 길수록 좋습니다. 잘 모르고 황톳길에서 빠르게 걷거나 뛰는 사람들은 어싱의 효과를 반도 못 누리는 겁니다.” 독서 모임 회원들과 한 달에 두 번 황톳길 걷기를 하는 박해창 씨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정신적 안정감을 얻는 효과도 있다. 주말마다 아차산 황톳길에서 걷기 명상을 한다는 이효종 씨는 자연의 풍경과 소리를 통해 새로운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산기슭을 맨발로 걷다 보면 시들어 있던 세포들이 생기를 얻는 느낌을 받습니다.”
+ 걷기 좋은 서울의 황톳길
안양천 맨발 황톳길
벚꽃 명소로 꼽히는 안양천 산책로에 조성한 맨발 황톳길. 최근 양질의 황토를 채워 더욱 건강한 길로 만들었다. 신발장과 세족장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용산가족공원 황톳길
황톳길 200m, 흙길 250m, 마사톳길 440m, 흙길 60m 등 총 1km에 달한다. 길 시작 지점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3개의 세족장과 오픈형 신발 보관함이 마련돼 있다.
서대문 안산 황톳길
연북중학교 후문 인근에서 시작해 안산 산복도로를 따라 약 550m 길이로 조성한 맨발 전용 황톳길. 일부 구간은 비닐하우스가 설치돼 있어 사계절 내내 이용할 수 있다. 세족장과 쉼터도 마련돼 있다.
문래동 꽃밭정원 황톳길
작년 5월 개장한 곳. 맨발 황톳길뿐만 아니라 어린이 놀이터, 운동 시설 등의 공간과 어우러져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기기 좋다.
서초문화예술공원 황톳길
200m 길이의 순환형 황톳길과 100% 황토로 조성한 50m 길이의 황토 체험장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황토 체험장은 지붕 역할을 하는 퍼걸러가 설치되어 있어 비가 와도 이용할 수 있다.
용마폭포공원 황톳길
녹지대를 끼고 조성된 길이 120m, 폭 2m의 황톳길. 세족장, 신발장이 마련되어 있다. 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에서 가깝다.
공암나루근린공원 황톳길
서울에서 가장 긴 1.7km 규모로 조성된 황톳길. 왕복 1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로, 횡단보도 없이 공원으로만 이루어져 걷기에 편리하다.
매봉산 황톳길
중구 신당동 매봉산 자락에 조성된 약 150m 길이의 순환형 황톳길. 황토 볼 체험장과 세족장이 함께 마련돼 있어 산림욕과 지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서울 트레킹 코스 중간 지점에 위치해 접근성도 좋다.
아침 걷기는 ‘집중’에, 저녁 걷기는 ‘숙면’에 도움
황톳길 걷기의 효능을 최대한 누리려면 바르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 정선근 교수는 올바르게 걸어야 근육을 올바르게 자극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걸을 때 머리는 일직선으로 세우고, 어깨는 수평이 되게 펴며, 등을 곧게 유지해야 합니다. 허리가 과도하게 굽거나 뒤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팔은 자연스럽게 구부려 약간 흔들며 걷는 것이 좋습니다.”
균형 잡힌 보폭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폭이 지나치게 큰 것은 좋지 않다.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고루 닿게 하고, 발의 앞부분이나 굽을 너무 강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맨발로 걷는 것이 불편하다면 발과 발목을 잘 지지해주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부드러운 밑창이 있는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시간대별 운동 효과도 조금씩 다르다. 아침에 하는 걷기 운동은 기초대사량을 증가시켜 칼로리 소모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운동 후 분비되는 엔도르핀 덕분에 업무나 학습 집중력도 올라갈 수 있다. 저녁에 하는 걷기 운동은 힘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저녁은 체온과 근육 유연성이 가장 높은 시간대인 만큼 근력 강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적절한 강도의 움직임은 숙면에 도움을 준다. 남지은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는 동안 피로를 해소하고, 나아가 육체적 피로까지 해소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발가락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황토가 주는 촉감에 몰입하는 순간 그 자체가 명상의 시간이자 힐링의 시간이 되는 황톳길 걷기. 예로부터 무병장수의 비결은 ‘적게 먹고 많이 걷는 것’에 있다고 했다. 움츠러든 어깨와 굽은 등과 허리를 곧게 펴고 아름다운 꽃길 따라 펼쳐진 황톳길을 찾아 ‘맨발의 청춘’을 누려보면 어떨까.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주변에 걷고 싶은 황톳길이 있는지 찾아보자. 바야흐로 걷기 좋은 계절이다.
글 임지영 사진 김재형, 임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