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누워 리모컨을 작동하던 ‘방구석 1열 관람자’들이 경기장과 체육관으로 몰리고 있다.
2030을 중심으로 직접 보고 호흡하고 인증하려는 ‘직관’ 열풍이 뜨겁다.
잠실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시민들.
경기장을 직접 찾아 경기를 관람하는 ‘직관’이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 상품 검색량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각자 개성을 표현하며 경기장의 열띤 분위기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아이템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기를 직관한 팬들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직관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직관하는 모습을 SNS에 공유하면 더 많은 사람이 이를 따라 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운완, #갓생, #미라클모닝, #헬시플레저, #스포츠케이션에진심 같은 해시태그의 행렬이 SNS로 확산되거나 ‘시그너처(Signature)’가 ‘레어템(Rare Item)’으로 이어지는 과정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바야흐로 스포츠 직관 시대다.
요즘 경기장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는 초대형 전광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기 아이돌 콘서트만큼 뜨거운 스포츠 직관 열풍
축구 선수 손흥민의 팬인 홍효정 씨는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월드컵 예선전을 ‘직관’했다. 오랜만에 홈그라운드에서 치러지는 경기라 예매 전쟁이 치열했지만 운 좋게 원하는 좌석에서 관람할 기회를 얻었다. “응원하는 선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 외에 현장만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아요. 붉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며 응원하는 것도 가슴을 뛰게 하고요. ” 경기 한 시간 전 스타디움에 도착한 이들은 선수들의 이름과 얼굴이 프린트된 ‘굿즈’를 고르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못 말리는 농구 팬인 정윤서 씨는 농구 코트와 가장 가까운 관중석에 자리 잡고 직관을 즐긴다. 2023년부터 시작된 ‘슬램덩크 열풍’에 편승한 것이 실제 농구 경기 관람으로 이어진 것. “체육관에 들어서면 쿵쿵 울리는 음악 소리에 심장이 ‘바운스’해요. 어두운 조명 속에 모두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흔들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순간은 농구 경기 직관의 하이라이트랍니다. ” 소위 ‘대포 카메라’라고 불리는 길쭉하고 거대한 렌즈를 장착하고 선수들의 몸짓과 표정을 나노 단위로 포착하는 그에게 농구 경기 직관은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야구 팬인 최준성 씨는 최근 고척돔에서 열릴 예정인 경기의 티켓 예매에 실패했다. 늘 빠른 매진으로 끝났기에 예매 전쟁이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으나 이번에는 경쟁률이 더 치열했다. “예매 오픈 시각에 딱 맞춰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접속이 원활하지 않더니 다시 클릭 버튼을 누르자 이미 1만 명 이상이 대기 중인 상태였죠. 나중에 언론 보도를 보니 이번 직관 경기 예매에 자그마치 20만 명 넘게 동시 접속했다고 하더군요. 이젠 직관 경기의 인기가 아이돌 그룹 콘서트와 비슷한 수준에 다다른 것 같아요.”
직관 경력만 12년째인 ‘프로 직관러’이자 야구 팬인 김수연 씨는 경기 직관이 단순히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문화라고 말한다. “치맥을 즐기며 응원하는 것부터 각 팀의 응원봉을 흔들며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것까지 직관 팬들 사이에는 경기장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요.”
모바일 티켓 대신, 종이 티켓이 주는 감동은 또 다르다.
2002년 감동의 그날이 떠오르는 붉은악마 응원단
“넓고 탁 트인 공간에 펼쳐진 푸른 잔디를 보기만 해도 눈이 번쩍 뜨이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다 같이 신나게 응원가를 부르고 춤을 추며 우리 팀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감정선을 공유할 수 있지요.
일상의 스트레스도 훌훌 털어낼 수 있고요.”
- 홍효정
현장의 생생함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는 경기 직관. 관람객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SNS상에선 직관 룩, 직관 챌린지, 직관 인증샷도 인기
뜨거운 직관 열기의 이유는 눈에 띄게 늘어난 현장의 2030 여성에게서 찾을 수 있다. 실제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24년 야구장을 찾은 만 15세 이상 관람객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장 조사 결과, 2023년보다 KBO 리그에 관심이 증가했다는 전체 응답이 64.3%였던 것에 비해 20대 여성은 13.6%p 높은 77.9%의 관심 증가율을 보였다. 단순히 야구장을 찾는 것뿐 아니라 응원하는 팀의 용품 구매율도 2030 여성은 평균치를 웃돌았다. 이들이 2024년 응원 팀의 용품을 구매한 비용은 20대 여성 연평균 약 23만7,000원, 30대 여성 연평균 약 27만3,000원으로 전체 관람객의 용품 구매 비용 (연평균 약 23만5,000원)보다 많았다. 야외 경기 관람 시 유용한 아이템도 인기다.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선스틱’, ‘선크림’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72%, 216% 증가했다. 선수와 구단에 열렬한 응원을 보낼 수 있는 ‘응원봉’ 검색량은 같은 기간 593% 급증했다.
이런 트렌드를 등에 업고 ‘직관 챌린지’, ‘직관 인증샷’ 등도 인기다. 아이돌 그룹 위클리의 멤버 이재희가 LG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올린 경기 직관 인증샷이나 얼마 전 김연경의 배구 경기를 관람하며 촬영한 배우 김사랑의 직관 인증샷은 ‘찐팬’들 사이에서 이슈였다. 특히 김사랑은 “배구 경기 직관은 난생처음인데. 너무 재밌음”이라는 글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직관의 중독성은 강하다. 경기 직관은 TV 시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선수들의 작은 움직임조차 생생히 눈에 들어오고,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 하나하나에서는 열정이 느껴진다.
현장에서는 TV나 스마트폰으로는 미처 담을 수 없는 ‘숨은 2인치’를 발견하게 된다. 팬들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응원가는 웅장한 합창곡이 되어 경기장에 울려 퍼진다. 감동의 순간은 팬들과 선수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기적 같은 장면으로 이어진다. 승리의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만이 직관의 묘미는 아니다.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인 감동과 열정의 순간을 생생히 느낄 수 있어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응원용품은 직관할 때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다.
“현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면 훨씬 생동감이 있어요.
TV로는 잘 보이지 않던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수비의 위치 등을 한눈에 파노라마로 볼 수 있어 좋고요.
또 응원 물결에 동참하다 보면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도 든답니다.
응원하는 팀이 승리했을 때의 쾌감은 말할 것도 없지요.”
- 김민영 & 김단우
“승리의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만이 직관의 묘미는 아니다.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인 감동과 열정의 순간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는 데 더 큰 즐거움이 있다.”
대한축구연맹의 마스코트 백호와 사진을 찍는 시민들.
직관을 즐기는 또 다른 방식, 스포츠케이션
직관 붐이 일면서 여행과 운동을 동시에 즐기는 ‘스포츠케이션(Sportscation)’도 이색적인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스포츠케이션은 ‘스포츠(Sports)’와 ‘휴가(Vacation)’를 합친 개념으로, 스포츠 활동이 결합된 여행을 뜻한다. <여행신문>에 따르면, 미식축구 직관 상품인 미국 프로 풋볼 리그(NFL) 직관 여행은 출시 직후 뜨거운 반응으로 조기에 마감되었으며, 미국 프로 농구(NBA) 직관 여행도 완판 행렬을 보이면서 현재는 예약 대기만 가능한 상태다. 이강인, 김민재 등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여행도 하는 프로그램은 성황리에 완판되었다. 여행사 관계자는 “예약자 대부분 여행보다 직관을 더 원하는 ‘축팬’ ”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스포츠산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 지표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은 81조 원으로 전년 대비 3.7% 증가했으며, 사업체 수도 12만 6,186개로 4.6%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스포츠용품업의 매출이 4.7% 증가하며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스포츠 서비스업은 3.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스포츠 브랜드들은 기존 매장을 체험형 매장으로 바꾸거나 다양한 페스타를 개최하는 등 스포츠 소비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를 발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호텔업계와 기업들은 맞춤형 스포츠 패키지 상품을 제공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스포츠 활동에 맞춰 여행 일정을 설계하는 등 스포츠케이션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스포츠케이션은 일시적인 여행 트렌드가 아니라 건강과 여가, 스포츠 활동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는 새로운 여행 패러다임입니다.” 서울시립대학교 스포츠과학과 황선환 교수의 말이다. 또 카카오 스타일 관계자는 “경기 일정 관련 검색이 폭증한 가운데, 선선한 날씨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앞으로 직관에 대한 관심과 구매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수동적 관람에서 적극적 참여로 바뀐 스포츠 직관 문화. 적극적인 소통이 보다 특별한 경험을 낳고 있다.
글 임지영 사진 김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