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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2024.10

에세이

서울의 소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음성·문자 지원

경상남도 마산의 한 꼬맹이에게 서울은 ‘마천루의 도시’였다.
63빌딩을 처음 본 꼬맹이는 그때 찬란함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누군가는 서울의 마천루를 보고 고개를 돌리겠지만, 누군가에게 서울의 마천루는 서울의 상징이자 아름다움이다.

‘나는 서울을 사랑하는가?’ 이 질문에 먼저 답하고 글을 시작해야겠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서울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태생적으로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은 창원이라는 이름으로 합병된 경상남도 항구도시 마산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 형제들은 서울, 광주, 안양 등으로 마구 퍼져나가 살고 있었다. 마산에 살던 시절, 서울에서 사촌이 놀러 왔다. 나와 한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여자아이였다. 사촌이 말했다. “마산 좋다. 서울은 빌딩이 너무 높아서 갑갑해.” 나는 그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금세 파악할 만큼은 똘똘한 아이였다. 빌딩이 너무 높아서 갑갑하다는 말은 높은 빌딩이 많다는 자랑이었다. 나는 분노했다. 동시에 질투했다. 빌딩이 높아서 갑갑하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마천루에 집착하는 아이였다. 이는 아마도 아버지가 1970년대부터 외항선 선장으로 일한 덕 혹은 탓일 것이다. 뉴욕에는 100층 넘는 빌딩이 있다고 했다. 위에 올라서면 세상이 다 내려다보인다고 했다. 나는 지리 성적이 유독 좋은 학생으로 자랐다. 세상의 모든 지도를 담은 사회과부도와 한국인 최초로 전 세계를 여행한 김찬삼의 세계 여행기를 읽고 또 읽었다. 외우고 또 외웠다. 특히 북미 도시들은 압도적이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세계무역센터,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캐나다 토론토의 CN타워 사진을 보며 꿈을 꿨다. 서울에도 그만큼 높은 빌딩은 없었다. 기껏 지상 31층인 종로의 삼일빌딩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지방 아이들이 서울에 품는 감정은 참 복잡하고 재미있다. 서울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더라도 서울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서울 아이들에게 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직후 나는 처음으로 서울에 갔다. “서울은 빌딩이 너무 높아서 갑갑하다”던 사촌 집으로 갔다. 사촌이 살던 반포는 별거 없었다. 우중충한 겨울에 우중충한 아파트만 줄줄이 이어졌다. 딱히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 별거 없네. 서울 큰아버지가 말했다. “내일은 63빌딩에 가자.” 나는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 63빌딩은 그 시절 모든 한국 아이의 꿈이었다.

나는 아직도 황금빛의 63빌딩을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다. 찬란했다. 황금으로 쌓아 올린 도시의 자긍심이 거기에 우뚝 솟아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간 순간, 나는 무릎을 꿇었다. 서울 사촌에게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서울은 마천루의 도시였다. 마산에도, 부산에도 이런 건 없었다. 물론 요즘 부산은 서울을 능가하는 마천루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건 다 내가 부산을 떠나 서울에 사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나는 30대가 되자 서울로 입성했다. 내가 서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데는 마천루의 존재도 분명히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 정도로 마천루를 좋아한다. 4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세계 마천루 순위 같은 걸 매년 외우는 다소 어린아이 같은 어른이라 그렇다.

서울 전경

나는 20여 년간 서울에 살면서 서울 사람이 다 됐다. 마산과 부산에 산 기간보다 서울에 산 기간이 더 길다. 이 정도면 서울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됐다고 확신한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 같은 마천루광에게 서울은 좀 멈춘 도시였다. 상하이, 베이징, 선전 같은 중국 대도시와 쿠알라룸푸르 같은 동남아시아 대도시가 멈추지 않고 마천루를 짓는 동안 서울은 딱히 키를 키울 생각이 없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지나치게 오랫동안 63빌딩에 멈춰 있었다. 물론 63빌딩은 빠르게 자리를 내줬다. 2000년대 이후 목동 현대하이페리온과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에 가장 높은 빌딩 순위를 내줬다. 63빌딩이 가진 서울 대표 마천루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천루는 그저 높기 때문에 마천루인 것은 아니다. 한 도시를 상징하는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 2000년대에 지어진 주거용 빌딩은 63빌딩만 한 상징성은 없었다. 아무리 더 높은 주거용 빌딩이 많아져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여전히 상징적 마천루로 존재하는 뉴욕의 경우처럼 말이다.

2024년의 서울은 마침내 마천루에 집착하는 마산 출신 꼬맹이가 만족할 만한 도시가 됐다. 아니, 되어가고 있다. 마포에 사는 나는 강변북로를 택시로 달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서울의 가장 매혹적인 풍광이라고 생각한다.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파크원 타워는 조금 심심하던, 혹은 한국 최고 비즈니스 구역으로서는 조금 심약하던 스카이라인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런던 로이드 빌딩과 파리 퐁피두센터에 갈 때마다 언젠가는 이 전설적인 건축가가 서울에도 그럴듯한 건물을 지어주기만을 염원했다. 다행히 리처드 로저스는 붉은색 외피를 둘러싼 매력적인 마천루를 서울에 선물하고 지난 2021년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강남대로의 복잡함에 가려 마천루로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강남교보타워의 돌덩어리처럼 단단한 아름다움도 사랑한다. 빨간 벽돌의 대가였던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이만한 규모의 마천루를 잘 짓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이것이 보타 건축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담은 건물은 아닐 수도 있다. 뭐 어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은 세계의 많은 도시에 많은 실패작도 남겼다. 영화평론가로서 나는 종종 “거장의 실패작은 평범한 감독의 최고작보다 더 흥미롭다”라는 말을 한다. 전설적 건축가들이 서울에 지어 올린 많은 건물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자하 하디드가 지은 DDP 건물처럼 말이다.

나는 얼마 전 부산에서 올라온 어머니를 모시고 처음으로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 올랐다. 서울 어디에서나 보이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이 마천루는 오랫동안 서울 사람들에게 미움받았다. <반지의 제왕> 속 ‘사우론의 눈’이라는 별명은 딱히 사랑스러운 애칭은 아니다. 나는 거기 올라가자마자 깨달았다. 그 압도적으로 육중하고 높은 마천루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꼭대기에 올라서 봐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마천루에 열광하던 20년서울시민으로서 나는 어떤 흉악한 마천루가 서울 곳곳에 피어나더라도 그걸 참고 견딜, 아니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쩌면 이 글은 마천루를 비인간적 도시의 횡포라고 생각하는 생태주의적 독자 여러분에게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어쩌겠는가. 한 도시는 원래 다양한 정치적 의견과 미학적 기준을 가진 수많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글. 김도훈

작가이자 영화평론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현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지냈고,
에세이 <낯선 사람>,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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