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로 된 동네 이름에는 그 지역의 과거 모습과 생활상이 담겨 있어 흥미롭다.
제578돌 한글날을 맞아 서울에 남아 있는 순우리말 동네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았다.
갓전이 있던 곳 갓동네
중구 입정동·수표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갓〔笠〕을 취급하는 갓전이 있었기 때문에 갓전동네·갓동네라 부르던 것을 줄여서 갓동으로 불렀는데, 다시 음이 변하여 갑동이 된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자명으로 甲洞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장승이 지키는 마을 장승배기
동작구 상도동과 노량진동에 걸쳐 있던 마을의 이름으로, 마을에 장승이 서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여기에 장승이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조선 시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참배를 가다 이 지역에 들러 2개의 장승을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는 왕이 안심하고 행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는데, 이후 이곳을 ‘장승배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6번 출구 앞에 표석을 세우고 다시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
비가 오지 않을 땐 땅이 말라붙는 길 마른내골
중구 인현동1가 40번지 부근의 옛 지명. 과거 이 지역은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말랐을 때는 통행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바로 물이 불어 냇가로 변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마른내’라고 불렀다. 마른내골이라는 이름은 이 마른내 근처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마른냇골’이라고도 하며, 중구청을 지나는 도로 이름 ‘마른내길’에 영향을 준 지명이기도 하다.
물이 맑아 가재가 많던 곳 가재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옛 지명이다. ‘가재울’이라는 이름에서 이 지역이 산속에 있고, 물이 맑아 가재가 많이 서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자 이름으로는‘가좌리(加佐里)’라고 했는데, 이후 ‘가좌동’으로 바꿔 부르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가좌1·2계로 나뉘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이 지명이 현재의 남가좌동,북가좌동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밤알을 닮아 귀여운 섬 밤섬
한강 마포대교 하류 쪽 서강대교가 관통하는 지점에 있는 섬. 섬의 생김새가 벌어진 밤알을 닮았다고 해서 ‘밤섬’으로 불렸다. 광복 후에는 ‘율도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1968년 밤섬이 폭파될 때 섬에 살던 주민들은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했다. 현재 밤섬은 철새들이 쉬어 가는 철새 도래지로 잘 알려져 있다.
모래가 섞인 물이 흐르는 길 모래내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백련교를 거쳐 남가좌동에 이르는 4차선 도로의 이름. 길과 나란히 흐르는 ‘모래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모래가 많이 퇴적돼 물이 늘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가는 까닭에 모래내라고 불렀으며, 한자명으로는 ‘사천(沙川)’이라고 했다.
무수리들의 빨래터 빨래골
‘빨래골’이 위치한 강북구 수유동은 예로부터 북한산 골짜기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맑은 물이 넘치는 덕분에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고, 당시 대궐의 무수리들이 빨래터와 쉼터로 이용하면서 빨래골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빨래골은 동네의 가게 이름에 붙여지기도 하고, 2016년부터 ‘옛터 빨래골축제’가 개최되는 등 지금도 통용되는 지명이다.
말에게 죽을 먹이던 곳 말죽거리
오늘날 서초구 양재동 양재역사거리 일대를 가리킨다. 조선 시대에 지금의 양재역 일대는 말을 제공하던 장소로, 그곳에서 말에게 말죽을 먹였다고 해서 ‘말죽거리’라는 이름이 나왔다. ‘마죽거리(馬竹巨里)’라고도 불렀다. 이와 함께 조선 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공주 지역으로 피난 갈 때 이곳을 지나며 말 위에서 죽을 마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말죽거리공원’, ‘말죽거리공원사거리’ 등 말죽거리는 지금도 널리 쓰이는 지역 이름이다.
까치가 많이 살던 고개 까치고개
관악구 봉천동과 남현동 사이에 있는 고개. ‘가추개’라고도 불렀고, 한자명으로는 ‘작현(鵲峴)’이라고 했다. 이 고개에는 숲이 울창해 까치가 많이 서식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 고개를 ‘까치고개’로 부르고 있으며,‘까치고개삼거리’ 같은 거리 이름으로도 남아 있다.
칡뿌리로 갓을 만들던 곳 가루개
은평구 갈현동에 있던 마을로, 옛날 이 일대에 칡뿌리가 많아 갓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칡고개’, ‘갈고개’, ‘가루개’, ‘가루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한자명으로 갈현(葛峴)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글 백미희 참고 자료 <서울 지명사전>(서울역사편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