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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지금 수달이 졸고 있어요

쉿! 지금 수달이 졸고 있어요
2024.10

에세이

자연이 품은 서울

쉿! 지금 수달이 졸고 있어요

음성·문자 지원

재두루미, 새매, 소쩍새 그리고 수달과 산양까지. 어린 시절 책에서 이름만 보았던 동물들이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곳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모두의 관심 덕분에 서울의 생태계 회복은 다행히도 현재진행형이다.

서울 곳곳

난지생태습지원 아까시나무숲

서울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핵심 지역

한강 하류 지역, 즉 서울 일대는 예로부터 한반도에서 지정학적으로 핵심적인 장소였습니다. 서울 암사동 유적이 알려주듯 신석기시대에도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며,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말해주듯 백제 도읍이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백제 수도로 공주와 부여가 유명하지만, 백제 전체 역사 기간 중 한성백제 시대의 비율은 70%가 넘습니다. 백제가 남하한 후 한강 하류를 손에 넣기 위한 각축전은 치열했습니다. 아차산고구려 보루, 북한산 진흥왕순수비가 그 격렬했던 역사의 페이지를 담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도 남경으로 중시되었으며,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하면서 수도 서울 600년 시대가 열렸습니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고 잿더미가 된 서울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지속적인 농촌인구의 유입으로 확장을 거듭해 인구 1,000만의 대도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서울 올림픽과 한일 월드컵 같은 굵직한 국제 행사를 훌륭하게 치러냈고, 한류 문화의 중심이자 동아시아 경제 거점인 국제도시가 되었습니다.

한강

서울 생태계의 젖줄, 한강

한편 한강 하류 지역, 서울 일대는 수많은 생명에게도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도시화 이전의 서울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자연경관과 생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울 생태계의 중심은 생명의 젖줄 ‘한강’입니다. 한강이 실어다 준 모래와 유기물로 금빛 모래톱과 비옥한 충적평야가 펼쳐졌습니다. 자유곡류하는 한강엔 여울과 소가 어우러져 물고기의 훌륭한 산란터가 곳곳에 형성되었습니다. 한강 변은 습윤한 토양 덕에 습지 식생이 우점했습니다. 잦은 범람과 침식·퇴적작용으로 구불구불한 물길은 자주 방향을 틀었으며, 배후습지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물줄기 가운데는 당정섬, 난지도, 밤섬, 저자도 등 여러 섬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강변과 습지는 다양한 새, 곤충, 양서류의 서식지가 되었습니다. 특히 철새들의 중요한 경유지로서 휴식처나 먹이터로 사용됐습니다. 한강은 서해와 맞닿아 있어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기수역이 형성되었고, 염생식물을 비롯해 강과 바다를 오가는 웅어·장어·황복·참게 등이 번성했습니다. 짠물은 잠실까지 올라오기도 했고, 상괭이가 한강과 서해를 오갔습니다. 조간대 입지는 서울의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산은 서울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둥

서울의 또 다른 중요한 지형적 특징은 주변 산림과의 조화입니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을 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우면산 같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산들은 서울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 역할을 했습니다.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과 하천은 한강으로 유입되면서 자연적인 물 순환을 이루었고, 이들 하천과 계곡 주변에는 다양한 수생생물이 서식했습니다. 산림 생태계와 한강의 수생태계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산림과 습지 생물이 오갔습니다. 산림지역에는 노루, 고라니, 대륙사슴 같은 초식동물을 비롯해 호랑이, 표범 같은 포식자도 함께 서식하며 먹이그물을 형성했습니다. 산림은 조류 서식지로도 중요해서 솔부엉이, 오색딱따구리, 소쩍새 같은 새들이 나무에 둥지를 틀고 번식했습니다. 이렇듯 서울은 우리 사람에게도, 자연에도 소중한 터입니다. 지금은 일방적으로 우리 사람이 이용 및 점유하고 있지만, 서울의 원형 자연은 다양한 생물의 삶터였습니다.

조류서식지

자연성 소멸 이후 시작된 반전 드라마

긴 역사의 흐름에서 지난 세기만큼 서울의 모습이 급격하게 바뀐 적은 없었습니다.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중심에 선 서울은 나날이 다르게 변화합니다. 높이 솟은 건물과 복잡한 도로망이 서울을 덮어갑니다. 한강을 수놓던 모래톱은 사라지고, 물길은 곧게 펴졌습니다. 잠실의 경우 저자도는 준설로 소멸하고, 한강의 원래 유로는 석촌호수로 흔적만 남았습니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를 겪은 셈입니다. 한강 지류 하천은 복개되어 하수구로 전락하고, 숲과 논밭은 콘크리트에 묻혀갑니다. 국가 발전의 상징이 된 거대 도시의 영광엔 자연성 소멸이라는 그림자가 존재했습니다. 과거 서울을 터전으로 삼았던 야생동물은 하나둘 도시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슬픈 결말은 아닙니다. 최근 서울 곳곳에서 반전의 드라마가 쓰이고 있습니다. 야생동물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시 숲이나 하천 산책로, 한강 변에서 종종 야생동물을 만나게 됩니다. 심지어 멸종 위기종도 이따금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있는 이 생명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서울의 환경은 어떤 상태에 있을까요?

멸종위기의 새

한강으로 돌아온 멸종위기 새들

먼저 주목할 것은 돌아온 새들의 소식입니다. ‘서울의 새’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원, 고궁, 하천 등 서울 곳곳에서 새를 관찰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갑니다. 서울에 사는 새의 종과 개체군 변동의 소중한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성 어린 기록에는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반가운 멸종 위기종의 소식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한강 본류에선 멸종 위기종인 큰기러기와 붉은가슴흰죽지가 관찰되었습니다. 은은한 흑갈색 몸체에 가슴만 붉게 물든 붉은가슴흰죽지는 전 세계 생존 개체 수가 700마리 미만으로 추정되는 국제적 보호종입니다. 강서습지생태공원은 월동하는 물새 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초지, 버드나무 하반림이 발달해 맹금류의 먹이 활동과 은신에 탁월한 곳입니다. 흰꼬리수리, 참수리, 독수리, 새매, 털발말똥가리, 매, 황조롱이, 칡부엉이 등 다양한 멸종 위기 맹금류가 발견되었습니다. 지난겨울 강서습지생태공원 상공엔 재두루미 떼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여의샛강생태공원에는 새매가 나타났고, 중랑천에서는 흰꼬리수리·독수리·큰고니가 관찰되었습니다. 한강에서 물새들이 가장 많이 관찰되는 시기는 3월로, 우리나라에서 월동을 마치고 번식지로 이동하는 물새들이 한강에 모이는 때입니다. 한강에 모여 기력을 보충하고 시베리아로 갈 채비를 합니다. 도시 숲에선 어떤 멸종 위기 새들이 나타났을까요? 남산에서는 2016년 새매와 솔부엉이의 번식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붉은배새매의 번식이 관찰되었고, 2019년 번식기엔 새호리기의 짝짓기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소쩍새·솔부엉이·붉은배새매·참매·새매·원앙이 나타났고, 올림픽공원에선 벌매·흰꼬리수리가 출현하기도 했습니다.

수달아, 반가워! 산양아, 어서와!

2016년, 한강에서 뜻깊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수달을 보았다는 시민의 제보였습니다. 19년 만에 확인된 한강 수달의 귀환이었습니다. 연이어 2017년엔 어미 수달과 새끼 세 마리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한강에서의 수달 번식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후 서래섬, 샛강, 탄천, 청계천, 중랑천 등 한강 본류와 지류에서 수달의 존재가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수달은 수생태계의 건강성을 평가하는 지표종으로, 수달이 서식한다는 것은 해당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안정적이라는 신호입니다. 수달은 또한 생태계 내에서 먹이사슬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종으로, 생태계의 건강한 순환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수달의 귀환은 한강 생태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도시 속 자연환경의 복원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8년엔 중랑구 용마산에서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산양이 발견된 것입니다. 산양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했고, 법적으로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IUCN Redlist)에서 취약종으로, 그리고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Ⅰ에 등재된 멸종 위기종입니다. 산양이 선호하는 서식지는 가파른 비탈과 바위가 많은 산악 지대입니다. 과거 채석장이었던 용마산의 바위 절벽이 산양에게 훌륭한 서식처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용마산 산양에게 ‘용마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6년째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용마돌이는 우리 이웃입니다.

자연을 즐기는 커플

더많은 생명이 공존하는 생태 도시 서울

야생동물과의 조우는 단순한 현상이 아닙니다. 서울의 환경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입니다. 급속한 도시 개발로 인해 많은 동물이 서울에서 사라졌지만, 이제 다시 그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자연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보전하려는 서울시와 시민들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도시 숲과 공원의 확대, 한강과 지류의 보전 및 관리가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한 핵심 요소입니다. 한때 한강과 그 지류는 심각한 수질오염에 시달렸습니다. 생활하수, 공장 폐수, 산업 폐기물 등이 한강으로 유입되면서 수질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서울시는 하수 처리를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하수처리장을 건설하고, 하수관로를 확충했습니다. 그러자 오폐수의 직접적인 한강 유입이 줄고, 수질이 서서히 개선되었습니다. 서울의 많은 하천은 과거 도시 개발 과정에서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청계천을 시작으로 도림천, 정릉천, 성북천 등 여러 하천의 복원 노력을 통해 물길들은 다시금 햇살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원된 하천은 자연 공간으로 재탄생해 도심 속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수생생물이 돌아오고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는 공간이 되어 시민들이 자연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이따금 도심 하천에서는 백로나 왜가리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물고기 사냥에 성공하는 모습이 관찰됩니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의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서울이 보다 건강하고 다양성을 가진 생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식지 단절, 로드킬 위험, 소음과 빛 공해등 많은 위협 요소가 존재합니다. 서울의 생태계 회복은 현재진행형이며, 모두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서식지 고립과 파편화를 저감하기 위한 생태 네트워크 확충, 도심 속 녹지 공간 확대, 공존에 대한 시민 의식의 성숙과 장기적인 보전 전략이 필요합니다. 금빛 모래강변이 있던 한강에 대한 재자연화 논의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야생동물이 다시 돌아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종의 보호를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중요한 걸음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생명이 서울을 안전하고 풍요로운 서식지로 삼을 수 있기를, 서울이 생태적으로 더욱 건강한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서울의 자연성 회복

한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2023년 3월에 발표한 두 번째 한강 르네상스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계기로 한강 생태계의 자생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생물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둔 이번 프로젝트는 1단계 생태 회복에 이어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강 본래의 자연성을 되찾아주기 위한 ‘복원’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연형 호안과 한강 숲을 확대하고 생태공원을 재정비하는 ‘자연성 복원’과 한강의 생태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공감대를 높이기 위한 ‘자연형 체험 공간 및 프로그램 확대’를 통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자연 친화적인 한강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우동걸(국립생태원 박사) 사진 김재형,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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