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동호회 회원들과 레고 블록을 조립한다. 일주일에 한 번 뜨개질 카페에서 나만의 모자와 가방을 뜬다.
내가 직접 만드는 물건과 시간이 쌓일수록 즐거움도 커진다.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DIY는 많은 사람에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선물하고 있다.
김홍석씨는 일주일에 한 번 도자기 수리를 배운다
도자기 수리법을 배울 수 있는 공방 ‘금여성1929’.
요즘 쇼핑을 하다 보면 DIY 제품이 눈에 많이 띈다. DIY는 ‘Do It Yourself’의 줄임말로, 소비자가 자기 취향대로 직접 제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규격화된 크기와 품질을 가진 획일적인 상품이 아니라 용도와 선택에 맞게 제품을 만드는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적 의미의 DIY는 1945년경 영국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퍼졌다. 문가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집 안팎을 공사할 수 있게 되면서 ‘Do It Yourself’라는 구문이 일상에 쓰이게 되었다. 최근에는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해 먹는 밀키트부터 취미용품 키트, 셀프인테리어, 조립형 가구, 커스텀 키보드, 반려동물용품 제작 키트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DIY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제품 제작 과정에 참여하고 주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독립심과 성취감은 DIY가 주는 최고의 심리 효과다. 만들기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블록 장난감 ‘레고’다. 아이들의 창의력과 손 감각을 길러주는 장난감으로 쓰이는 레고는 아주 거대한 제품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기계장치까지도 만들 수 있는데, 최근에는 성인들의 취미로도 각광받고 있다. 로봇, 3D 프린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도 동반한다. 취미에서 취향, 취향에서 문화로 성장한 DIY를 만나본다.
카페와 매장을 겸한 연희동 ‘바늘이야기’에서는 뜨개질 DIY 수업을 진행한다.
디지털 시대에 부는 핸드메이드 붐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회사에 다녔던 황윤숙 씨는 몇 년 전 고된 직장 생활을 잊고자 양모 공예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천을 오리고 실을 꿰어 한 땀 한땀 꿰매면 근사한 결과물이 탄생하는 봉제 과정에 푹 빠졌다. 인형부터 파우치, 가방까지 집 안은 점점 그가 직접 만든 ‘작품’이 채우기 시작했다. 기성품을 대신한 작품들에서는 기성품이 갖지 못한 온기가 느껴졌다. “처음 취미로 시작한 DIY가 직업이 되었어요. 손바느질을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지요. 아예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공방을 차려 운영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손맛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어 너무나 즐겁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나는 바늘에 탐닉한다>, <리넨이 좋아!> 같은 DIY 책을 쓰기도 한 그는 작업의 중심이 ‘쓰임’에서 점점 ‘취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 사업을 하는 김홍석 씨는 일주일에 한 번 도자기 수리 공방 ‘금여성1929’로 향한다. 금가루로 깨진 부분을 메우는 ‘긴쓰기’ 기법을 활용해 깨진 그릇을 수리한다.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점 외에도 깨진 부분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강조함으로써 그릇의 가치를 높이는 데 만족감을 느낀다. “기계로 만든 제품이 점점 대중화되고 있는데, 수공예의 아름다움과 정성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삶의 일부였던 그릇에 생명을 더할 수 있어서 좋고요. 취미로든 실용적인 측면에서든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기획사에 근무하는 손서연 씨는 1년 전 사내 레고 동호회에 가입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회 회원들을 만나 취미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게 된 이후로 회사 생활도 즐거워졌다. ‘레고’라는 교집합 아래 모인 회원들이 레고를 좋아하고 모으는 방식은 다채롭다. 이들은 ‘함께 만드는’ 차원을 넘어 레고 관련 전시회 관람,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레고 봉사, 레고 영화 관람 등 레고와 관련된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한편 일주일에 한 번은 연희동의 ‘바늘이야기’에 들러 반려동물용 옷과 모자, 머플러를 뜬다는 배정아 씨는 “주변에 사는 반려인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뜨개질도 하는데, 그날이 무척 기다려진다” 라고 말한다.
바느질 공방 ‘달작업실’의 황윤숙 대표가 양모 펠트 인형을 만들고 있다.
셀프 힐링은 기본, 성취감은 보너스
초기의 DIY 제품은 인건비가 포함되지 않아 저렴한 가격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지금은 나의 취향과 개성을 담을 수 있는, 내가 직접 만든 것이라는 점 때문에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초기의 DIY 제품이 인테리어상품, 가구와 장식품에 국한되었다면 요즘은 먹거리, 화장품, 생활용품, 액세서리, 장난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출시되고 있다. 자수나 명화 그리기 같은 DIY 취미 키트부터 밀키트 같은 DIY 식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DIY의 인기에는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힐링법을 통해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자 하는 ‘홈포트(Homefort) 현상’의 확산도 한몫했다. 실제로 대형마트나 백화점, 소셜 커머스 등에서는 DIY 관련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NS에서는 DIY 관련 태그가 수천만 건에 달한다. “오늘날의 DIY 세계에서 ‘하찮다’라는 말은 최고의 형용사에 속해요. 지나친 완벽함과 오글거리는 표현을 기피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작지만 소중하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보잘것없지만 멋지다’라는 뜻으로 통용되거든요.” 황윤숙 대표는 말한다.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패션 업계도 DIY에 주목하고 있다. 직접 뜨개질해 만든 ‘크로셰’ 의류와 원단에 손수 염료를 입혀 무늬를 내는 ‘타이다이(Tie-dye)’, 기존 청바지에 다른 원단의 주머니나 패치를 대는 패치워크 데님의 유행은 DIY가 가져온 패션 트렌드다. 특별한 도구 없이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DIY 의류와 액세서리 영역은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또 생선회 키트나 홈베이킹 키트, 미쉐린 스타를 받은 고급 레스토랑이나 해외 현지의 요리를 담은 밀키트도 출시되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또 하나의 DIY 제품은 반려동물 관련 제품이다. 대량생산된 기성품 중에서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잘 맞지 않거나 필요한 제품이 없을 경우 직접 만들어주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반려인이 늘어나면서 이를 겨냥한 반려동물용 DIY 의류 키트를 판매하는 쇼핑몰도 점차 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유튜브에 제작법과 사용법을 설명하는 영상을 올리는 등 DIY 제품 판매에 공을 들이는 업체도 부쩍 늘고 있다.
“바쁜 일상 탓에 한동안 예술에 대한 욕구를 잊고 살았어요.
일에 대한 만족도가 점점 낮아지고 스트레스만 커질 무렵 일찍이 관심을 갖고 있던 도자기 수리를 배워 직접 하게 되었는데, 성취감이 굉장히 큽니다.
삶에도 새로운 활력이 되는 느낌이에요.”
- 김홍석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무얼 해볼까 알아보던 중 서울공예박물관의 체험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어요.
아이가 스스로 쓸모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더 잘 만드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서 좋아요.”
- 안인희 & 최하진
“뭔가에 집중한다는 건 자신에게 집중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해요.
똑같은 도안을 보고 만들어도 조금씩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바로 DIY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을 만드는 거죠.”
- 황윤숙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캔들 만들기 DIY 체험을 하는 모습.
부족함을 채우는 창작, 앞으로도 지속된다
개인의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안하는 ‘개인화’를 넘어 개인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기업이 개별적인 맞춤 혜택을 제공하는 ‘초개인화’ 시대다. DIY는 기성품에 자신의 니즈를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의 욕구를 가장 잘 반영한 선택일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셀프 인테리어 시장 규모는 2015년 12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18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대표적 DIY 제품 판매 업체인 이케아코리아의 경우 최근 3년간 매출이 23.7% 증가했다. 노동을 함으로써 노동의 결과물을 더 좋아하게 된다는 개념의 ‘이케아 효과’다. 1인 가구의 증가, 지속되는 SNS 이용자 증가 추세 등은 DIY산업의 발전을 더욱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창작 활동이 채워주는 삶의 영역이 있습니다.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이들이 부족한 삶의 영역을 창작으로 채우려 하는 한 DIY의 미래는 밝아 보입니다.” 고려대학교 소비자 심리 연구실의 김태연 교수는 말한다.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 중 하나로 창작이 선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족한 영역을 채우기 위해 풍경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쿠키를 굽는 사람도 있다. 또 누군가는 한 코 한 코 뜨개질을 해나가며 실패와 좌절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할 것이다. 뚫고 나가야 할 때 직접 만드는 무언가는 우리 안에 다시 설 자리를 만들어준다. 삶은 우리의 정면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와 DIY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우리에게 위로는 예상치 않은 형식으로 찾아오며, 그것이 예술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 아닐까. 전문가들은 자신의 선호에 맞게 직접 만들고자 하는 소비 트렌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DIY 체험하기 좋은 곳
서울공예박물관
자체 공예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옻칠, 나전 같은 전통 공예는 물론이고 캔들, 인형, 목공예 등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과 예술품 DIY 체험을 할 수 있다.
주소 주소 종로구 율곡로3길 4
누리집 craftmuseum.seoul.go.kr
바늘이야기
뜨개질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곳. 대바늘, 코바늘, 실은 물론이고 단추, 와펜부터 지퍼, 가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자재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도 있다.
주소 서대문구 연희로11가길 15
SNS @banulstory_official
금여성1929
국가유산수리기능자 칠공 자격을 가진 대표에게 깨진 도자기 수리법을 배울 수 있다. 도자기부터 유리그릇, 꽃병까지 전보다 더 반짝이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주소 송파구 백제고분로45길 30 4층 401호
SNS @seulki.1929
글 임지영 사진 박준석, 최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