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고 싶다면 공간을 먼저 바꿔라”라는 말이 있을 만큼 공간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42년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시 건축상은 올해도 창의적인 시도로 서울의 발전에 기여한 9개 건축물을 선정했다.
서울시민 삶의 질을 높여준 대표적 수상작을 소개한다.
해방촌 품은 새 지붕
새로운 아케이드 프로토타입 ‘클라우드’(대상)
‘클라우드’는 해방촌 신흥시장 환경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되었다. 그동안 신흥시장을 답답하게 덮고 있던 낮은 슬레이트 아케이드를 철거하고, 가벼우면서도 햇빛 투사율이 높은 ETFE(에틸렌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 소재를 사용해 새 아케이드를 만들었다. 어둡고 좁은 시장 골목에 환한 빛과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경치를 선사한 아케이드 클라우드는 낡은 전통시장을 젊은 세대는 물론, 해외 관광객까지 좋아하는 ‘힙스터 거리’로 만들었다.
설계 위진복·홍석규
면적 678.80㎡
투명한 구름 지붕으로 신흥시장에 환한 빛을!
2024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위진복 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소장(왼쪽)과
홍석규 큐앤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소장을 신흥시장 클라우드’ 아래에서 만났다.
클라우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홍석규 소장이 영국에서 ETFE 회사를 다닌 경력이 있었고, ETFE가 식물원 건축 등에 쓰이는 아주 가벼운 소재라 잘 어울릴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설계에만 4년, 시공에 2년이 걸린 대장정이었어요. _ 위진복 소장
구름을 형상화한 클라우드의 투명한 디자인을 가능하게 한 건 ETFE라는 소재 덕분인가 봅니다.
ETFE는 식물원이나 수영장 등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에 사용되는 투명 비닐이에요. 가벼워서 파이프만으로 지지할 수 있고, 빛에 강해 색상도 변하지 않습니다. 공기 압력으로 조절하기 때문에 눈이나 비가 와도 상태를 안전하게 조절할 수 있죠. _ 홍석규 소장
클라우드를 설치하기 전 신흥시장은 어떤 상태였나요?
신흥시장은 해방 무렵 이곳으로 모여든 상인들이 세운 곳이라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만큼 낡았죠. 영업하는 가게가 별로 없었어요. 가뜩이나 낡은 건물을 더 어두워 보이게 하는 답답한 아케이드를 바꾸는 게 목표였어요. _ 홍석규 소장
신흥시장은 클라우드 설치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어요.
2017년부터 설계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서서히 새로운 가게들이 입점하기 시작했어요. 예술가들도 모여들었고요. 나만 알고 싶은, 남들은 모르는 공간을 공유하는 감성이 통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_ 위진복 소장
설계 기간만 4년이라고 하셨는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상인회와 서울시청의 전폭적 지지가 있긴 했지만, 처음 시도하는 건축물이라 설계가 까다로웠어요. 투명한 구름 형상의 아케이드를 지지하는 기둥을 세우는 데 상인과 건물주들의 의견을 100% 수용하느라 진행이 더뎠습니다. 3D 스캔으로 설계했는데, 입점하는 가게의 문과 창문 위치 등을 고려하면서 기둥 위치가 조금씩 바뀔 때마다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무수한 재설계가 필요했죠. _ 위진복 소장
클라우드가 투명하다 보니 밤에는 조명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남산의 조명과 동기화하고 싶었는데, 조명 시공이 따로 발주되는 바람에 원하는 대로 잘되지 않았어요. 아쉬운 부분입니다. _ 홍석규 소장
서울의 미래 건축가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서울시 건축상 공모전을 통해 좋은 프로젝트를 완성하게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축계 후배들이나 다른 건축가들에게도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프로젝트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_ 위진복 소장
해방촌 신흥시장이 계속 잘 운영되고, 새로운 비즈니스 커뮤니티로 지속되는 게 저희의 희망입니다. _ 홍석규 소장
목재 파쇄장의 환골탈태
오동숲속도서관(최우수상)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오동숲속도서관’은 운생동건축사사무소가 설계했다. 오동근린공원 자락 길을 형상화해 나선을 그리며 올라간 지붕이 특징인 이 도서관은 소음과 먼지로 가동을 멈춘 목재 파쇄장 부지를 활용한 친환경 건축물로, 건축자재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책꽂이를 만드는 데도 목재를 사용했다. 특히 책꽂이 위치를 절묘하게 배치해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고려했다. 공원을 산책하다 잠시 쉬며 책과 함께할 수 있는 웰빙 공간이기도 하다.
설계 운생동건축사사무소(주) 신창훈 대표,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장윤규 교수
면적 431.2㎡
운영 시간 화~일요일 9시~18시(월요일과 법정 공휴일 휴관)
문의 02-6952-1806
낡은 주차장의 대변신
강남구웰에이징센터(최우수상)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강남구웰에이징센터’는 ‘낡은 주차장의 대변신’이라는 주제로 설계되었다. 강남구웰에이징센터는 60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노년기 건강관리를 돕고 운동, 요리 등의 일대일 라이프스타일 처방을 제공하는 곳. 선정릉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서울 빌딩 숲 한복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푸른 숲 풍경과 어울리는 그린 계열의 외관이 산뜻하다. 662.88㎡의 제한된 내부 공간에 실내 걷기를 할 수 있는 G 트랙을 만들어 웰에이징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한 설계가 신선하다.
설계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소장 박현진)
면적 662.88㎡
운영 시간 월~금요일 9시~18시(토·일요일과 법정 공휴일 휴관)
문의 02-3423-7002
미루나무 풍경 되기
연의생태학습관(우수상)
공원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유리 벽과 유리 난간 등으로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문 ‘연의생태학습관’은 구보건축과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의 작품이다. 자연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생태 학습관이라는 건물의 목적을 온전하게 구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던 미루나무 다섯 그루를 그대로 살려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나무를 베어내지 않기 위해 건물 전체가 미루나무를 감싸는 ‘ㄴ’ 자 모양으로 완성했다. 작은 유수지 공원에 위치하며, 서쪽에는 미루나무와 생태 연못이, 북쪽에는 하얀 자작나무들이 서 있는 연의생태학습관은 건물 안팎으로 자연을 담고 있다.
설계 구보건축(소장 조윤희), 홍지학(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면적 574.05㎡
운영 시간 화~일요일 10시~18시(월요일과 법정 공휴일 휴관)
문의 02-2603-0203
우수상은 연의생태학습관 이외에도 ▲9로평상(㈜이뎀건축사사무소) ▲서교동 공유복합시설(㈜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신사스퀘어 (㈜예림종합건축사사무소) ▲원서 작업실(㈜종합건축사사무소시건축)이 수상했다. 심사위원 특별상은 ▲경리계단길(㈜요앞건축)이 받았다. 서울시 건축상 수상작들은 오는 10월 ‘서울건축문화제’에서 시상식을 진행하고 전시할 예정이다.
글 박혜숙 사진 박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