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요리는 서양 고급 요리의 기본이자 정수다.
우리나라에서는 ‘값비싼 요리’라는 선입견과 친근한 메뉴가 적다는 이유로
프랑스 식당은 같은 유럽의 음식 강국인 이탈리아 식당에 비해 수가 적다.
다행히 서울에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프랑스 요리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프랑스 가정식’ 식당들이 있다.
“아, 숨는다? 프랑스어로 ‘조용히 숨어 있는 곳’이라는 뜻이에요.” ‘라플랑끄’ 셰프 안톤 롬바르드의 설명이다. ‘은신처’라고 해도 되겠다. <숨어 있기 좋은 방>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그 한국인 소설가도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안톤은 평안하고 천진한 얼굴을 가졌다. 그는 “아이들을 보고 장사도 해야 하니 늘 시간이 부족하다”라며 한숨을 쉰다. 이 가게는 저녁에만 연다. <서울사랑>을 위해 아침 일찍 준비를 했다. 프로답게 한 번에 네 가지 요리를 진행한다. 조리하거나 오븐에 넣고 타이밍을 딱 맞춰 한 번에 테이블에 내놓았다. 촬영하기 정말 좋다.
코르시카에서 한국으로
“코르시카 출신이에요. 리옹, 런던, 멜버른. 많이 돌아다녔네요. 한국에 와서 정착했어요.” 코르시카는 나폴레옹의 출생지로 유명하다. 이탈리아반도 앞바다에 위치한다. 음식 문화도 이탈리아와 비슷하다고 한다. 지중해풍이라고 할까. “고향 요리는 거의 못해요. 한국은 토마토와 채소가 다르고, 좋은 올리브유는 비싸고요.(웃음)”
현대 서양식의 표준은 프랑스식이다. 현대화, 체계화시킨 것도 프랑스 요리사들이다. 그것이 서방 세계로 퍼져갔다. 한국도 물론 양식의 기준을 프랑스식으로 잡는다. 특이한 건 프랑스 식당이 아주 드물다는 사실이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미스터리다. 아마도 ‘프랑스 요리는 고급이야’라는 고정관념 때문이 아니었을까. 중국식은 호떡과 짜장면, 미국식은 햄버거, 이탈리아식은 피자와 스파게티, 일본식은 돈가스와 우동 같은 음식이 첨병이었다. 다시 말해 ‘싸고 간단한 음식’이어야 잘 전파된다. 프랑스에도 그런 음식이 있지만, 미묘하게 비켜간 셈이다.
여럿이 함께 나눠 먹는다는 철학
“우리 집은 싸고 편안하게 먹는 집이에요. 조용히 숨어서.(웃음)” 정말 포근한 가게다. 입구에서 쓱 내려서게 되어 있다. 낮게 설계된 가게 구조부터 그렇다. ‘낮은’ 것은 가격도 마찬가지다. 물론 대중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가격대가 있지만, 기존의 유럽 음식에 비하면 아주 싸다. 애피타이저가 3,900원부터 시작한다. 메인도 대개는 1만~2만 원대다. 200g짜리 소고기 스테이크가 2만4,000원이다. 와인도 아주 싸다. 3만3,000원에서 5만 원을 넘지 않는 맛있는 와인을 골라놓았다. 물론 물과 청량음료, 맥주를 마시면서 프랑스식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제가 리옹에서 요리를 했어요. 거기는 부숑이라는 스타일이 있어요. 테이블에 놓고 여러 사람이 같이 먹는 거예요. 그런 가게를 좋아해요.” 나눠 먹기, 다 같이 먹기. 말하자면 인간의 본능 중에서 선한 정서를 부추기는 그런 가게.
프랑스 가정식의 매력
안톤이 내온 요리를 하나씩 먹었다. 오리 다리로 만든 리예트를 빵에 발라 먹고, 직접 만드는 샤르퀴트리(가축의 고기를 소금에 절여 건조한 것)를 씹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맛이다. 편안하면서 소박하다. 그의 성격이나 태도, 어쩌면 고향 코르시카의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미슐랭 스타’와 ‘고급요리’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 프랑스에도 당연히 집밥이 있다. 그렇다. 집밥의 상업적 버전이랄까. 뚝딱 차려내고,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먹고,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식당 또는 펍. 그게 바로 안톤의 생각이다.
그의 메뉴에는 아귀 요리가 있다. 남프랑스에서 많이 먹는 해산물 스튜에 아귀를 넣은 것이다. 짭짤하고 걸쭉한 국물은 뭐랄까, 해물탕과 찜의 중간쯤에 있다. 오래 끓이고 졸이는 방식은 프랑스 요리의 중요한 테크닉이고, 가정식의 핵심이기도 하다. 1800년대 후반 프랑스 서민의 모습을 그린 에밀 졸라의 세계적 소설 <목로주점>에서 주인공 제르베즈는 가족을 위해 스토브에 스튜를 끓인다. 이 소설에 나올 법한 요리들이 안톤의 식당 라플랑끄에 있다고 해도 되겠다.
우리는 서울에 산다. 서울은 국제도시이고, 수많은 외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온갖 맛있는 요리가 있다.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식을 찾기 힘든 서울이라 라플랑끄가 더 흥미롭다. 다시 찾아가고 싶은 프랑스적인 식당, 부담스럽지 않은 프랑스 밥집. 이 정도로 이 가게를 설명하면 정확하겠다.
+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식들
미식의 나라로 유명한 프랑스의 요리는 주로 귀족들의 식사에서 발달해 정교한 조리법과 숙련된 솜씨를 강조한다.
육류, 생선, 채소 등 각 식재료에 맞는 소스와 향신료를 활용해 우아한 풍미를 자랑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몇 가지 요리를 소개한다.
에스카르고(Escargot)
달팽이를 버터, 마늘, 파슬리 등의 허브로 조리한 부르고뉴 스타일이 가장 대중적이다.
부야베스(Bouillabaisse)
다양한 생선과 해산물을 토마토와 허브, 사프란으로 조리하는 해산물 스튜.
코코뱅(Coq au Vin)
‘와인에 닭’이라는 뜻으로, 닭고기와 각종 채소를 와인에 오랫동안 조리한 전통 프랑스 스튜.
코키유 생자크(Coquilles Saint-Jacques)
가리비를 크림소스와 함께 구운 요리로, 전통 축제와 행사에 자주 등장한다.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
소고기를 레드 와인, 양파, 당근, 마늘, 버섯과 함께 천천히 끓여 만든 스튜. 주로 감자나 빵과 함께 제공된다.
그라탱 도피누아(Gratin Dauphinois)
얇게 썬 감자를 크림과 치즈로 덮어 오븐에 구운 요리.
크렘 브륄레(Crème Brûlée)
바닐라 맛의 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뿌리고 캐러멜화한 디저트.
서울에서 ‘아름다운’ 프랑스 음식을 맛보다
프랑스 요리는 가정식도 ‘아름답다’. 공간은 물론 작은 포크 하나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한 프랑스 가정식 식당에서 새로운 미식의 세계를 경험해보자.
#프랑스인 셰프가 전하는 프랑스의 맛
라플랑끄
‘은신처’라는 뜻을 지닌 ‘라플랑끄’는 손님들이 아지트에서 가족 또는 친구들과 편안하게 프랑스 가정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꾸민 이태원의 작은 식당이다. 프랑스인 오너 셰프 안톤 롬바르드가 운영하는 이 레스토랑은 소박하지만 맛있는 프랑스 가정식을 선보인다. 직접 만든 ‘샤르퀴트리 플레이트’,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 새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아귀살 토마토 스튜’가 이곳의 시그너처 메뉴다. 합리적인 가격의 세트 메뉴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프랑스 와인은 물론 잔으로 즐길 수 있는 하우스 와인도 구비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laplanque_seoul
가격 에스카르고 5,900원, 아귀살 토마토 스튜 2만3,000원, 샤르퀴트리 1만1,900원, 감자 그라탱 8,900원
#한옥에서 즐기는 프랑스 요리
메종 루블랑 용산본점
용산의 조용한 골목길에 위치한 한옥에서 프랑스 요리를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한옥과 유럽의 정서가 묘하게 어우러져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르 코르동 블뢰 출신의 신민섭 셰프가 운영하는 이곳은 런치에는 프랑스 가정식 요리를, 디너에는 숯불 요리를 제공한다. 그림처럼 화사한 플레이팅에 한 번 감탄하고, 훌륭한 맛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구운 열무를 곁들인 관자 세비체’는 코코넛 밀크 베이스의 소스로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내며, ‘24H 수비드 삼겹살’은 수비드(Sous-vide, 진공 저온 조리), 차콜 오븐, 팬 프라이 과정을 거쳐 부드러운 식감이 매력적이다. 엄선한 와인 셀렉션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맥주도 즐길 수 있다.
인스타그램 @maison_loupblanc
가격 24H 수비드 삼겹살 2만9,000원, 구운 열무를 곁들인 관자 세비체 2만6,000원, 비프 라구 소스의 생면 스파게티 2만5,000원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 프렌치
오부이용
성동구 금호동에 위치한 레트로 스타일 프렌치 비스트로 ‘오부이용’은 프렌치 감성의 소품과 장식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친구나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프랑스 요리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 프렌치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 인기가 높다. 달큼한 양파와 치즈의 조화가 훌륭한 양파 수프, 부드러운 닭 요리 ‘코코뱅’, 오부이용 스타일로 만든 두 가지 크림의 생토노레 등 각 요리는 플레이팅부터 맛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그 덕분에 <블루리본 서베이>는 물론이고 <미쉐린 가이드>에도 소개된 서울 대표 맛집이다. 낮에는 단품 메뉴, 저녁에는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인스타그램 @aubouillon
가격 런치 양파 수프 1만5,000원, 코코뱅 3만 원, 디너 코스 6만5,000~7만8,000원, 두 가지 크림의 생토노레 1만 원
글 배효은 사진 최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