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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손맛! 서울과 태국을 잇는 ‘팟’

결국은 손맛! 서울과 태국을 잇는 ‘팟’>
2024.04

여행

취향의 발견

결국은 손맛! 서울과 태국을 잇는 ‘팟’

음성·문자 지원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태국식 메뉴를 맛볼 수 있다. 태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02년 5,500개였던 해외 태국 레스토랑 수는 현재 약 1만7,000개로 3배 이상 증가했다다. 그 이유가 뭘까?
맵고, 짜고, 달고, 시고, 거기에 불 맛까지 가득한, 어찌 보면 한식을 쏙 빼닮은 태국 요리의 비밀을 들여다보았다.

‘맛없없’, 이름을 내건 식당

용산구 녹사평 방면 이태원 꼭대기에 위치한 해방촌 신흥시장. 오랜만에 왔는데 많이 변했다. 시장이 기능을 잃어가자 독특한 취향의 젊은이들이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월세가 비싸서 번화가에 가기 힘든 청년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곳에 ‘팟카파우’라는 태국 식당이 있다. 어딘가 코즈모폴리턴 같은 기운의 셰프이자 사장인 스리프라팁 파우피싯 씨(이하 파우씨)를 만났다.

“태국군 장교로서 주미 대사관 무관(武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태어나 오래 살았고, 음악을 좋아해 세계 곳곳에서도 머물렀어요. 해외살이 중에도 손맛 좋은 어머니와 할머니 덕분에 고향의 맛과 조국에 대한 중심이 강하게 새겨졌죠.” 그는 여행하다가 한국인 곽선미 씨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서 한국에 왔다. 둘이 처음 만날 당시 파우 씨는 바에서 노래도 하던 타고난 아티스트이면서 요리도 겸하던 만능 예능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전업 요리사가 되었을까. “한국인도 그렇지만 태국 사람은 늘 가족이 모여서 식사하는 걸 좋아해요. 그 분위기, 그 기운이 너무도 좋아서 언젠가부터 그 음식을 내가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는 태국 식당에서 일하며 정식으로 요리사가 되었다. 기술적인 것은 식당에서, 영혼은 집안 여성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요리를 먹던 기억, 그 냄새, 그 분위기가 저를 요리사로 만들었어요. 지금도 내가 만드는 요리는 어머니의 요리를 ‘카피’한다는 느낌이 자주 들어요.” 그는 그걸 ‘엄마식’이라고 표현했다. 태국식도 방콕식도 아닌, 엄마식이라니. 그 말을 할 때 파우 씨의 눈은 더욱 반짝였다. 평소엔 장난기가 넘치는 눈인데 이때는 좀 달랐다고 써야겠다.

파우피싯 셰프

간장, 고추장, 생선 젓갈 등 특유의 양념 맛이 어우러진 태국 음식은 불을 만나 그 감칠맛이 더해진다. 요리할 때 가장 신난다는 파우피싯 셰프.

태국의 엄마 집밥이 그리울 때

팟카파우는 늘 만석인, 인기 높은 태국 식당이다. 태국의 전형적인 음식을 선보이지만, 태국 본토의 느낌이 좀 더 강하다고 할까. 태국 동북부의 도시 이산(Yisan)이 고향인 그는 로컬의 취향도 반영한다. 태국 내에서도 매콤하고 강렬한 맛으로 그릴에 굽고 태국 식탁의 김치 역할을 하는 솜땀도 바로 이곳의 전통적 음식이다. 이곳은 태국에서도 우리의 ‘전라도 음식’으로 꼽을 만큼 손맛 좋은 고향의 장을 가져다 쓰거나 직접 만들고, 다른 태국 식당 어디에도 없는 음식을 낸다.

태국 정부는 2001년부터 ‘글로벌 타이 레스토랑 프로젝트’라는 태국 음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04년에는 태국 음식 세계화 본부인 ‘키친 오브 더 월드’가 정부 조직으로 발족해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현재 세계 곳곳에는 이탈리아·중국·베트남 식당처럼 태국 식당이 늘었고, 태국 음식을 맛본 이들이 태국을 찾게 되는 음식 외교의 성공 사례로도 꼽힌다. 이는 서울의 ‘한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많이 닮아 있다.

이곳에는 태국 정부가 인증한 ‘오리지널 태국 식당(타이 셀렉트)’ 증서가 붙어 있다. 태국 정통 음식 기준에 부합하는 자국 및 해외 태국 레스토랑과 식품에 대한 인증으로, 이를 받기 위해서는 음식의 맛·재료·위생·서비스 등 다양한 평가에서 75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매년 갱신하는 ‘타이 셀렉트’에는 등급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에 여덟 곳밖에 없는 최상등급인 ‘시그너처’급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제대로 된, 수준 높은 오리진 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태국 음식은 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식과 비슷해요. 간장, 고추장, 생선 젓갈 같은 걸 잘 써요. 향이 있는 채소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가 태국식, 아니 ‘파우식’이라고 할 볶음밥(그 이름조차 ‘팟카파우’다. 태국어로 ‘팟’은 볶다, ‘카파우’는 향신료 바질을 의미한다)을 뚝딱 볶아 내왔는데, 바질 한 줌을 듬뿍 넣어 마무리했다. 그걸 넣을 때 내가 보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으악” 하고 탄성이 나왔다. 바질은 지금처럼 쌀쌀한 날씨엔 비싼 허브이기 때문이다.

“넣을 때는 제대로 넣어야 해요. 그래야 맛이 납니다.” 그는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동석한 그의 아내는 살짝 혀를 찬다. “아무리 비싸도 넣을 건 꼭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요. 식당도 장사인데 도통 개의치 않아요.”

팟카파우

생바질이 듬뿍 들어가는 팟카파우.

글로벌 미식 격전지, 서울

서울은 이미 국제도시다. 세계적 메가시티처럼 외국인 거주 비율이 꽤 높다. 당연히 세계의 음식이 다 있다. 아마도 한국에서 먹을 수 없는 외국식은 북극 원주민인 이누이트 음식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현지식이 제대로 구현되는 경우는 또 드물다. 손님인 한국인 입맛의 보수성, 재료 수급같은 문제 때문일 것이다.

“가능한 한 태국에서 가져올 수 있는 건 가져오고, 여기에서 만들 수 있는 건 만들어 써요. (요리에 싱싱한 라임을 쭉 짜서 넣으며) 라임도 예전에는 구할 수 없었죠. 아무리 비싸도 쓰고 싶은 것, 써야 할 건 써야 해요. 그래야 태국 맛이 납니다.” 그의 살림이 넉넉한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재미가 있고, 진짜 태국 음식을 선보인다는 기쁨으로 요리한다”고 말한다. 역시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대답이다. 그는 이렇게도 덧붙였다. “음식은 기술이 아니라 영혼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의 음식은 집안의 영혼, 앞서 썼듯이 ‘어머니’에게서 영향을 받았는데 전형적인 태국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 뚝심이 오히려 한국인의 대환영을 받고 있다. 서울은 이제 ‘정통성’에 목말라 있기 때문인 듯하다. 달고, 짜고, 시고, 매운 맛이 훅훅 치고 나오는 음식들이 뜻밖에도 더없이 입에 잘 맞는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딱 한국인 아재의 입맛을 가진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게 아마도 팟카파우의 인기 비결일 수도 있겠다. 오리지널의 힘!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대략 인구의 5%나 된다. 250만 명 내외라는 말이다. 태국인은 그중 9% 내외다. 상당히 많다. 그들은 전국의 산업체와 농업 등에 종사한다. 그 때문에 현지 식 재료를 구하기가 쉬워졌다. 한인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언제든지 한국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값은 여전히 비싸죠.(웃음) 허브와 채소가 그래도 많이 싸졌고, 상당수는 쉽게 구할 수 있어요. 더 태국다운 음식 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와 인터뷰하다가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한국인도 많이 좋아하는 똠얌꿍이 태국에서는 대중 음식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원래 궁중 요리였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신선로 같은 존재였다는 말이다.

이국의 향이 가득한 식당에서 진짜 태국 음식을 맛보면서 기분 좋은 인터뷰가 이어졌다. 헤어질 시간이 되어 일어나자 그가 악수를 하며 말했다. 예의 그 동그랗고 장난기 어린 눈을 반짝이면서. “그냥 파우라고 불러줘요.” 아, 이 멋진 남자. 그가 한국말을 잘하게 된다면 아마도 ‘앞으로 우리는 친구니까 반말을 하자’고 할 태세였다. 어쨌든 서울은 제대로 된 코즈모폴리스다. 이렇게 멋진 태국 식당도 있으니 말이다.


박찬일

박찬일
1965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노포의 장사법>, <밥 먹다가 울컥> 등의 책을 내며 ‘글을 맛있게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이것만 알면, 태국 음식 주문이 쉬워요

팟

‘볶다’라는 뜻으로 불 맛도 나고 우리의 볶음밥처럼 다양한 메뉴 주문 시 기본이 된다.

카오팟 : 밥(카오)을 볶은 것으로 새우(꿍)를 넣으면 카오팟 꿍, 돼지고기(무)를 넣으면 카오팟 무, 채소(팍루암)를 넣으면 카오팟 팍루암.
팟타이 : 국수(타이)를 볶은 것으로 태국 음식의 대표 메뉴다. 여기에도 추가하는 재료에 따라 뒤에 명칭이 추가된다. 새우볶음면은 팟타이 꿍.


똠

국이나 수프를 칭하는 단어로 끓인다는 뜻이다.

똠얌꿍 : 새우(꿍)를 다양한 채소와 향신료로 양념해 무친 뒤(얌) 끓여낸 국물 요리(똠).
카오똠 : 우리의 국밥처럼 수프(똠)에 밥(카오)을 넣고 끓여 아침식사로도 좋다.


땀

‘빻다’ 라는 뜻으로, 재료를 빻고 섞는 태국의 전통 요리법

솜땀 : 파파야와 줄기콩, 마른 새우, 토마토 등에 피시 소스와 마른 고추를 넣어 완성하는 샐러드로 새콤한(쏨) 재료를 빻아(땀) 만든 요리. 개운한 맛이 있어 김치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얌

소스를 넣어 가볍게 무치거나 버무려 내는 음식

얌운센 : 얇은 녹두 당면(운센)에 채소와 해산물 등을 넣어 새콤달콤하게 만든 요리.


양

‘구이’라는 뜻으로, 제대로 된 불 맛을 느낄 수 있는 조리법

무양 : 돼지고기(무)를 구워낸 요리로 솜땀이나 찰밥과 잘 어울린다.
카이양 : 닭고기(카이)를 구워내 기름기 없는 전기구이 통닭과 비슷한 맛을 낸다.

※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는 태국 요리에서 특히 호불호가 갈리는 고수. 주문할 때 ‘마이 싸이 팍치’를 외치면 고수를 빼고 내온다.

믿고 먹는 태국 맛집 타이 셀렉트 4

#오너셰프의친절한맛

팟카파우

제대로 된 외국 음식으로 가득찬 이태원에서도 핫플로 인기를 얻고 있는 신흥시장 내 태국 음식 전문점. 오픈 주방 안쪽으로 직접 요리를 만드는 태국인 셰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 메뉴 중 하나인 팟타이는 셰프가 직접 만든 타마린드 소스에 건새우와 새우, 그리고 땅콩까지 더해서 고소한 맛이 극대화되는 느낌이다. 함께 운영하는 가게 근처 1층 ‘낀라오’에서는 이산스타일의 음식과 야외 테라스도 즐길 수 있다. 태국 정부에서 태국 음식 식당에 수여하는 인증마크인 타이셀렉트(Thai select) 시그너처를 받았다.

위치 용산구 신흥로 97-6 신흥시장안 2층
가격 팟카파우(돼지고기) 1만2,000원, 팟타이 1만4,000원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9시(일요일 휴무)

셰프의 히든 메뉴, 탈레쿠와

셰프의 히든 메뉴, 탈레쿠와


#우리동네태국음식맛집

콘타이

쌀국수부터 덮밥과 볶음밥, 볶음면과 커리는 물론 수프, 국, 사이드까지 없는 메뉴가 없는 곳으로 서울시내에도 여러 곳에 매장이 있다. 콘타이라는 상호 자체가 ‘태국 사람’이라는 뜻으로, 모든 콘타이 매장에는 태국의 특급 호텔 출신 요리사가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매장이 위치하는 곳에 따라 각각 다른 메뉴를 시그너처로 소개하고 있다.

위치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10 IFC몰 L3층
가격 똠얌쌀국수 1만4,900원, 뿌님팟퐁커리 3만8,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연중무휴)

뿌님팟퐁커리

뿌님팟퐁커리


#눈으로먼저먹는렝셉

까폼

태국에서 온 연예인들이 맛집으로 인정하면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는 까폼은 커다란 사이즈의 렝셉으로 특히 유명하다. 돼지 등뼈에 고수와 고추 육수로 맛을 낸 메뉴인 렝셉은 특유의 새콤매콤한 맛 덕분에 매진되는 경우가 많으니 렝셉을 맛보고 싶다면 이른 시간에 찾아갈 것을 추천한다. 한국인 입맛에 전혀 동화되지 않은 정통 태국 요리를 찾는다면 까폼이 제격일 듯.

위치 강남구 선릉로153길 18 지하 1층
가격 렝셉 3만 원, 카오카무 1만3,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주말은 오후 11시(연중무휴)

렝셉

렝셉


#느긋하게즐기는태국

부다스벨리

태국 정부가 미식 외교를 내세워 신뢰할 만한 레스토랑에 인증을 해주는 타이 셀렉트, 그중에서도 최상 등급인 시그너처 인증을 받은 여덟 곳 중 하나로 매장 셰프 전원이 태국인이다. 일반적인 태국 음식점들이 태국 야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이곳은 고급스럽고 여유로운 태국의 휴양지 감성이 가득하다. 맛은 기본, 느긋한 휴가 감성까지 즐겨보자.

위치 용산구 녹사평대로40길 48
가격 팟타이 1만7,600원, 텃만꿍 1만4,300원
영업시간 오전11시~오후10시 30분(연중무휴)

팟타이

팟타이

김시웅 취재 배수은 사진 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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