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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처럼 기억하는 서울

스냅처럼 기억하는 서울>
2024.01

에세이

이야기가 있는 도시

스냅처럼 기억하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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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다녀오기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는 ‘미술관 다녀오기’였다. 당시엔 수원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매달 숙제를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 다녀오기만 하면 제출할 것이 없기 때문에 도록을 받아오거나 미술관 또는 갤러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오거나 하는 방식으로 숙제를 하게 되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나름대로 예쁘게 차려입고 인사동과 안국동을 돌아다니곤 했다.

그때는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기 전이라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는 게 재밌었다. 우리 학교 미술 선생님은 조금 독특한 숙제를 내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가 궁금하진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림을 그리는 것, 즉 테크닉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경험과 감각이기 때문에 단순히 수업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더 다양하게 보고 느끼라는 선생님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미술관 가기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고 있는 일종의 내 취미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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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외부 이동로, ‘걸어가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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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서 만난 여행자, ‘풍경과 닮은 여행자’

서울 여행하기

서울을 여행하고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의외로 다른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사진집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일본에 다녀왔다. 4박 5일 동안 굉장히 많이 걸어 다녀서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쓰러져버렸다. 자고 일어나니 늦은 오후였고, 이렇게 휴일을 낭비하기 싫다는 생각에 여행 짐을 그대로 들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집 앞에서 버스를 탔더니 광화문행이었다. 광화문 앞을 지나가는데 어떤 외국인이 자신의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고 가려는데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길을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내가 여행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러고 보니 일본을 여행하는 동안은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내 사진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여행하는 것처럼 서울을 기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작정 서울을 여행하게 되었다. 해외의 유명한 서점이나 미술관에 가면 뉴욕, 파리, 런던 같은 도시의 사진집은 많았지만 서울을 기록한 사진집은 없다는 것이 내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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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늘이 보여준 노을 풍경, ‘자연이 곧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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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밖에서 마주한 모습, ‘최고의 사진작가’

영감의 도시

여행하면 할수록 서울은 아름다웠다. 도시의 패턴도, 옛것과 새것의 조화도, 한강과 다리도…. 평소에 놓치고 지나갔던 작은 아름다움들을 여행하며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어떻게 여행할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중학교 때처럼 미술관 다녀오기를 시작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태원 주변을 돌아다닐 예정이라면 리움미술관부터, 안국동 주변을 둘러볼 생각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작하면 된다. 서울엔 미술관이 참 많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안국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향해 걷는 길엔 다양한 찍을 거리가 있다. 특히 광화문에서 국립현대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길은 얼마나 다채로운지. 새로 지어진 높은 빌딩들과 낮고 오래된 궁이 어우러져 굉장히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연인, 가족, 여행자, 직장인 등 풍경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머문다. 그러고 보면 이 동네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하다. 천천히 여유롭게 걸으며 세상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나도 덩달아 여유롭게 관찰하며 사진으로 기록하게 된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와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즐긴다. 걷고 관찰하며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작업이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당장 고민이던 어떤 문제의 해결책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어딘가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여행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규모가 굉장히 커서 몇 시간 정도 머물다 폐관 시간에 맞춰 나오면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만날 수도 있다. 어떨 때는 미술관 안에서 만난 예술 작품들보다 더 멋진 하늘에 감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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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형
서울에 기반한 ‘서울 스냅’을 포함해 서울 관련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해오고 있으며,
전시와 강의도 계속하는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서울 스냅>, <사진가의 기억법>이 있다.

일러스트 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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