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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현수동, 아니 현석동

내 사랑 현수동, 아니 현석동>
2020.07

에세이

나의 서울

장강영

내 사랑 현수동, 아니 현석동

지도에는 없는 동네

서울시 마포구 현수동은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일대다. 북쪽으로는 지하철 서강대역, 남쪽으로는 한강, 서쪽으로는 홍익대학교, 동쪽으로는 서강대학교와 신석초등학교가 경계다. 한강의 무인도인 밤섬도 현수동에 포함된다. 지상낙원은 아니지만 상당히 살기 좋고, 흥미로운 사건도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현수동은 지금까지 출간한 내 소설 네 권에서 주요 배경으로 이름이 나오고, 아예 제목에 ‘현수동’을 넣은 단편소설도 있다. 동네 역사를 꽤 자세하게 설명하는 소설도 썼고, 현수동이 배경인 소설을 쓰려는 작가가 등장하는 소설도 썼다. 그러나 서울시 지도에서 현수동을 찾을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내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가상의 동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에 언급한 지역은 마포구 현석동, 신수동·구수동, 신정동 그리고 창전동 일부에 해당한다. 현석동의 ‘현’ 자와 신수동·구수동의 ‘수’ 자를 합해 현수동이라고 이름 지었다. 동네 이름이 여럿 나오다 보니 넓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밤섬을 제외하면 광흥창역을 중심으로 반경 600m 남짓이다. 신도림동보다 작다.

골목골목 깃든 나의 추억들

나는 30대 중반에 6년 동안 마포구 현석동에서 살았는데, 그 동네를 깊이 사랑했다. 당시 내 도보 생활 반경이 그 동네들이었다. 집에서는 밤섬이 살짝 보였고,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공원으로 나갔다. 광흥창역 옆에 있는 마포서강도서관 단골이었고, 그 근처의 김밥집과 빵집도 자주 다녔다. 정치부 기자 시절에는 집에서 국회까지, 서강대교를 걸어서 건너 출퇴근했다. 그러다 보면 밤섬 위를 지나가게 됐는데, 출근하는 아침에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그 무인도가 퇴근하는 밤에는 매혹적이면서도 꽤 무서운 장소로 변했다.

현석동에서 살 때 내게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났다. 그 동네의 기운과 내가 잘 맞아서 그랬다고 혼자 믿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살기 시작한 것도 현석동에서였고, 결혼도 그곳에서 했고, 소설가로 정식 데뷔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동네라서 소설의 배경으로 사용했는데, 이제는 그러다 보니 내 소설들이 느슨하게 연결되는 셈이 되었다.

서울에서 정붙이며 산다는 건

사실 현석동에서 살기 전까지는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마을에서 살 때 얻는 힘에 대해 잘 몰랐다. 나는 소위 말하는 ‘고향 없는 사람’이다.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에서 태어났고, 워낙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주민등록 주소지이던 시군구만 해도 열 곳이나 된다. 그나마도 대부분을 아파트, 원룸, 고시원에서 살았다. 정붙일 곳이 없었다. 아니, 장소에 정을 붙인다는 것이 뭔지 잘 몰랐다.

“장소에 정을 붙인다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이야기’가 한 요소 아닐까 생각한다. 현석동과 신수동은 무척 오래된 동네라 역사적 장소도 많고 전설도 많다. 조선 중기의 시인 권필과 학자 박세채가 모두 현석동에서 살았다. 광흥창역의 이름을 따온 광흥창은 조선 시대 관리에게 지급할 양곡을 저장하던 창고인데, 태조 1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미 고려 때부터 현석동 일대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물류의 중심지였다. 신정동에는 사도세자 사당이 있었고, 창전동에는 지금도 공민왕 사당이 있다. 공민왕 사당 근처에서는 밤섬 부군당 도당굿이 매년 열리는데, 역사가 400년가량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그 특별함

나는 현석동에 살 때 그 이야기의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그럴 때마다 나의 이야기가 동네의 고유한 이야기와 서로 연결되는 듯한 기분을 맛봤다. 나와 동네가 이야기로 엮여 친구가 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노포(老鋪)에 갈 때도 그런 경험을 한다. 반대로 프랜차이즈 가게들 혹은 무슨무슨 팰리스, 무슨 무슨 캐슬이라고 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그런 감흥을 얻지 못한다.

자신이 사는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사랑하고, 또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사는 마을만 사랑할 수 있을까? 뒤집어 생각해보자면 사랑스러운 마을이 많은 도시를 만들수록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날거란 뜻도 되지 않을까 싶다.

장강명

장강명
11년 동안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기자로 일하다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다양한 장·단편소설, 르포르타주, 에세이를 펴냈으며,
<현수동 빵집 삼국지>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장강명 사진 한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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