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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에서 치킨으로 우주 정복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미식 이야기
닭에서 치킨으로 우주 정복
2020.05

치킨, 마음의 고향은 서울

서울은 치킨공화국이다. 이렇게 불러도 될 만하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은 치킨공화국이다’라고 해야 할 듯하다. 작년 봄 기준으로 전국의 치킨집 숫자는 9만여 개에 육박했다. 지금도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서울은 치킨의 본향이다.

치킨이라고 하면 대개 ‘프라이드치킨’을 말한다.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에서 ‘프라이드 치킨’이라고 띄어 쓰면 자동 교정 기능으로 빨간색 밑줄이 생긴다. 이미 이 음식이 문법과 달리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서울은 가장 구매력이 뛰어난 곳이므로 인류 역사상 만들어진 닭 요리의 최신 버전인 프라이드치킨집이 제일 먼저 생겼다. 외국의 유명 체인점이 처음 문을 연 곳도 물론 서울이다. 압력솥을 사용해 뼈까지 부드럽고, 빠르게 튀기는 기술을 가진 미국 업체는 서울에 문을 열면서 유행을 선도했다. 그 전까지 서울은 주로 전기구이 방식이거나 이른바 ‘옛날통닭’이라고 하는 가마솥 방식의 치킨이 유행했다.

옛날통닭의 ‘옛날’ 이야기

옛날통닭은 1960~1970년대에 밀가루를 가볍게 묻혀 기름에 튀겨내는 방식으로 만들어 팔던 것이다. 밀가루와 기름이 모두 원조 내지는 미국에서 도입한 저가의 수입 식재료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전쟁 이후에 생겨난 현대적 요리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방식을 ‘옛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폐가 있는데, 과거에는 기름이 귀해 궁중 요리 정도를 제외하면 기름을 많이 써서 딥 프라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산가요록(山家要錄)>이라는 조선 시대 초기 저서에 ‘포계’라는 닭 요리가 프라이드치킨과 유사한데, 딥 프라이라기보다는 닭지짐이나 구이에 가깝게 보인다. 닭고기를 잘게 잘라 기름을 두르고 달군 솥에서 빠르게 뒤집어가며 익힌다고 적혀 있다. 닭고기는 서울이 한양 내지 한성이던 시대에 이미 중요한 식재료였다. 도성인 한양의 주요 거리에는 닭전이 있었다. 육의전과 시전 옆에 난전이 붙을 때 닭전은 빠지지 않았다. 돼지고기는 부패하기 쉬워 팔리는 시기가 한정되었고, 소고기는 조선 후기 이전엔 국가에서 특별히 지정한 날 외에는 팔기 어려운 재료였다. 반면 닭은 산 채로 진열할 수 있으니 부패 위험이 없는 데다 별다른 사료의 공급 없이도 키울 수 있어 그만큼 중요한 육류 공급 종이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외국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많이 진출했다. 이때 서양 닭 종자가 상당히 도입되었는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그런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해방 이후 양계장은 주요 산업이 되었고, 그러면서 닭 요리가 다채로워졌다. 이미 일제강점기에 서울에 도입된 것으로 보이는 유럽식 전기구이 통닭이 이 시기에 서울의 명물이 되기도 했다. 40~50대 이상의 서울시민은 아버지가 통금 시간이 다 되어 누런 통닭 봉투를 들고 귀가하시던 기억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대부분이 전기구이 통닭이었다.

“초기 프라이드치킨은 소금을 함께 제공했다.
이 소금은 후추와 섞인 형태를 띠었다.
그리고 치킨 무를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치킨의 영원한 단짝, 맥주

짧은 시기에 닭 요리는 서울시민의 주요 음식이 되었다. 전기구이에 이어 미국으로부터 다량의 콩과 옥수수를 수입해 기름이 흔해지던 1960년대 이후 튀김 방식이 등장했다. 그 후 미국의 압력솥과 파우더를 사용하는 치킨이 입맛을 바꾸어놓았으며, 비슷한 방식의 프랜차이즈가 서울시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여러 기록과 시민들의 기억에 따르면 프라이드치킨은 배달 서비스가 도입되기 전에는 가게에서 먹거나 포장 판매가 대부분이었으며, 배달이 시작되고 여러 업체들이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선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86 서울 아시안게임, 88 서울 올림픽을 거치면서 프라이드치킨은 행복한 가정의 외식, 포장 구매, 배달 음식의 핵심이 되었다. 중산층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면서 여가 생활과 영양의 증대가 일어나던 시기와 맞물려 프라이드치킨의 역사가 도래한 셈이었다.

초기 프라이드치킨은 1970년대 생맥주 열풍과 맞물려 성장했다. 가족과 아이들의 간식 개념보다는 밖에서 술안주로 팔리는 비중이 더 컸다. 오비와 크라운이라는 양대 맥주 회사는 시장을 두고 큰 경쟁을 치렀고, 치킨집에 맥주를 공급하면서 ‘치맥’의 공식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들어 치맥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서 외식 시장의 총아가 되었다. 이즈음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하는 치킨 가게들이 속속 생겨났고, 서울 강남에서는 미국 브랜드의 치킨 전문점이 성업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만해도 프라이드치킨은 비싼 음식이었다는 것. 닭고기 가격이 지금처럼 싸지 않았고, 브랜드의 경쟁이 치열해지기 전이라 높은 가격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초기 프라이드치킨은 소금을 함께 제공했다. 이 소금은 후추와 섞인 형태를 띠었다. 그리고 치킨 무를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배추를 채 썰고 거기에 케첩이나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은 속칭 사우전아일랜드드레싱을 뿌려내는 것도 당시의 유행이었다. 양념치킨은 나중에 모프랜차이즈업체에 의해 개발되어 현재는 일반 프라이드치킨과 함께 양대 메뉴로 고정되어 있다. 간장 치킨이나 마늘 치킨, 파 치킨 등은 1990년대 이후에 개발된 신종 치킨으로 이후에 여러 가지 파생 요리법이 군웅할거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국민 간식을 넘어 세계인이 열광하는 치킨

프라이드치킨이 배달 중심의 저렴한 국민 간식이 된 것은 이른바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은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구제금융 사태는 수많은 퇴직자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부부가 공동노동을 통해 운영할 수 있는 업종을 창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중에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운영 가능한 프라이드치킨집을 많이 선택했다. 주로 남편은 배달과 주간에 전단지 배부 및 판촉물 제공, 스티커 부착 같은 영업활동을 했고, 아내는 닭을 손질하고 튀기는 일을 전담하는 식이었다. 가족노동으로 가족의 미래를 걸었던 힘든 시대의 풍속이었다. 그 후 2000년대 들어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극 중 주인공들이 즐기던 치킨은 그야말로 ‘관광 상품’이 되었다. 최고의 인기 스타들이 앞다퉈 치킨 브랜드의 광고 촬영을 했고,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치킨 브랜드가 성업 중이다.

서울에는 해장국, 설렁탕만큼의 깊은 역사는 아니지만 지역에서 오래 장사한 치킨집들이 있다. 그런 맛집들을 투어하는 취미를 가진 시민도 있다. 프라이드치킨은 서울의 음식, 대한민국의 음식으로 50년을 이어왔으며, 앞으로도 오랜 시간 사랑받을 게 분명하다.

50년 동안 통닭을 튀겨온 청량리시장 남원통닭의 안경자 여사.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서울에서 즐기는 치킨 노포

치킨 로드, 옛날통닭
#TMI

반포치킨

#마늘덮은전기구이

1977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전기구이 마늘통닭의 원조 노포. 당대의 유명한 문인이던 김현 선생을 비롯한 문인들의 단골집으로 유명하다. 내외부를 붉은색 벽돌로 장식해 1980년대 호프집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전기오븐에서 기름을 쫙 뺀 치킨을 살짝 튀겨낸 뒤 특제 마늘소스를 듬뿍 올려낸다.

  • 가격 마늘치킨 1만8000원
  • 주소 서초구 신반포로 56-7
  • 시간 오전 9시 30분~오전 12시 30분
  • 전화 02-599-2825
한남동한방통닭

#1인1닭 #소화제통닭

배 속 가득 찹쌀과 마늘, 대추, 감초, 은행, 인삼을 넣고 뜨거운 참숯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통닭이 바로 이 집의 상징이다. 22년간 쉴 새 없이 기다란 꼬치에 꽂은 통닭을 부지런히 옮기는 것이 몸에 좋은 재료로 가득찬 배 속부터 기름기가 쫙 빠져 쫀득한 닭 껍질까지 완벽하게 익히는 비법이다. 이곳은 보양식 개념으로 1인 1닭을 추천한다.

  • 가격 한방통닭 1만8000원
  • 주소 용산구 대사관로34길 38
  • 시간 오후 5시~오전 2시
  • 전화 02-797-8677
삼우치킨센터

#그때그모습그대로

1973년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아빠의 통닭’집이다. 그 옛날 아빠가 사 오던 통닭처럼 복고풍 느낌의 포장지에 담아주며, 취향 따라 프라이드와 전기구이 중에 선택할 수 있다. 특히 바삭하고 고소한 맛의 프라이드치킨은 한 마리를 주문하면 닭다리 3개, 날개가 포함된 닭 몸통 3개를 제공하는 푸짐함이 매력이다.

  • 가격 프라이드치킨 1만5900원
  • 주소 영등포구 시흥대로 671
  • 시간 오후 1시~오전 1시
  • 전화 02-847-9292
남원통닭

#통닭골목의원조

1968년부터 통닭을 튀겨온 남원통닭은 신선한 닭을 염지한 후 숙성시켜 사용하는데, 여기에 고구마와 떡, 꽈리고추, 닭 모래집까지 함께 바삭하게 튀겨낸다. 믿기 힘든 가격과 4명이 먹어도 될 만큼 푸짐한 양 덕분에 오랜 단골뿐 아니라 젊은 손님도 많다. 곁들여 내는 양파와 청양고추가 들어간 맛간장과 백김치도 일품이다.

  • 가격 프라이드 큰 것 1만4000원
  • 주소 동대문구 제기동 635-1
  • 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 전화 02-968-9841
이태원숯불바베큐치킨

#숯불에지글지글

이태원 경리단길이 생기기 전인 1983년부터 뚝심 있게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곳으로, 숯불 특유의 불 맛이 그대로 배어 있는 정통 닭 바비큐를 맛볼 수 있다. 순수한 소금구이와 매콤하고 칼칼한 양념 바비큐는 촉촉한 육즙이 흐를 정도로 부드럽게 익혀 뜨겁게 달군 돌판에 올려 낸다.

  • 가격 바비큐 반반 1만7000원
  • 주소 용산구 녹사평대로 224-1
  • 시간 오후 4시~11시
  • 전화 02-795-7293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한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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