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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되새기는 독립운동

기획 · 독립운동의 발자취

마음에 되새기는 독립운동
2020.03

자신을 희생해 조국의 ‘독립’을 이뤄낸 역사 속 영웅들.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의 숨은 이야기를 만나보고, 서울시의 독립운동 장소를 찾아가본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습격 거사의 주인공, 나석주

경북 의열단 사건의 결심 공판일이던 1926년 12월 28일, 의열단원 나석주는 서울 한복판인 남대문 부근에 있던 조선식산은행 안으로 들어가 투탄했으나 폭탄이 터지지 않았다. 이에 그는 다시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들어가 폭탄을 던지고 경부보 등 일본인 7명을 총격 살상한 후 자결했다. 자결하기 직전 그는 가두의 군중에게 “우리 2000만 민중이여! 나는 2000만 민중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희생한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분투했다. 2000만 민중이여! 분투하고 쉬지 마라!”라고 절규했다. 말을 마친 그는 세 발의 실탄을 제 가슴에 쏘고 쓰러진 후 일경에 의해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4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이 의거는 그로부터 5년 후에 일어난 경제 수탈 기관을 통격하며 민족혼을 일깨운 장거였다.

나석주 의사 의거 기념 터

위치 중구 을지로 66(현재 외환은행 본점 건물)

동아일보 1927년 1월 13일 자 호외.

진관사에서 찾은 맹렬한 독립운동의 증거, 백초월

1939년 10월 14일, 백초월 스님과 일심회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만주로 떠나는 군용 열차에 ‘대한 독립 만세’라는 격문을 쓰는 거사를 성공시켰다. 그는 중일전쟁의 구도를 깨고 만주로 끌려가는 청년들에게 민족을 절대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낙서를 단행한 박수남과 배후 인물인 백초월은 10월 23일 일제에 체포되었다. 서대문형무소 등에서 복역하고 1943년 3월 3일 출소한 백초월은 또다시 만주로 보내는 독립운동 자금에 연루되어 일제에 체포되었다. 그 후 청주교도소에 구금 중이던 1944년 6월 29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백초월의 맹렬한 독립운동은 2009년 5월 27일 아침, 그가 머물던 진관사에서 태극기를 비롯한 진귀한 독립운동 자료가 대거 발견되며 재확인되었다.

진관사

위치 은평구 진관길 73

(위) 1937년 용산역 낙서 사건의 일제 기록(왼쪽)과 일제 첩보 기록에 나타난 일심교 강령(오른쪽).
(아래)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

제2의 만세 운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투사, 이신애

1919년 11월 28일 오후 4시 안국동 경찰관 주재소 앞 광장에서 ‘대한 독립 만세’가 울려 퍼졌다. 태극기와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백기를 펼쳐 든 정규식이 만세를 선창하고, 이신애가 박정선 등과 함께 제2 독립선언서를 뿌리며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인들이 모여들기도 전에 주재소의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예심이 진행되는 가운데 1920년 3월 1일, 유관순과 같은 동에 수감되어 있던 이신애, 박정선 등은 옥중에서 3·1운동 1주년을 맞이해 만세를 부르다가 더욱 심한 고문을 당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이신애는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이상 옥고를 치른 뒤 1922년 6월 1일에 가출옥했다. 그 뒤의 행적에 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 없다. 이신애는 비밀결사인 대동단의 여성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유일한 여성이자, 우리가 잊어선 안 될 여성 독립운동가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위치 서대문구 통일로 251

대동단의 제2 독립선언서.

1920년대 서대문형무소 전경.

독립과 여성운동에 헌신한 여성 선각자, 차미리사

차미리사는 미국으로 유학해 교육 구국을 목적으로 조직한 대동교육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12년 귀국해 배화여학교 사감 겸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독립 정신,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3·1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조선여자교육회를 설립하고, 교육회 산하에 부인야학강습소를 설치해 가정부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했다. 1921년 여성으로만 구성된 전국순회강연단을 조직해 4개월에 걸쳐 전국을 순회하며 여성 해방을 고취하는 강연을 펼쳤다. 1923년 부인야학강습소의 이름을 근화학원이라 지었고, 그 후 근화여학교, 근화여자실업학교로 성장하며 조선인 여성을 위한 민족교육을 실천했다. 그러나 ‘근화’라는 명칭이 무궁화를 상징한다는 일제의 강압에 학교명을 ‘덕성’으로 바꿨다. 일생을 민족 해방과 민족 통일을 위해 노력한 차미리사는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덕성여자대학교는 올해 창학 100주년을 맞이한다.

덕성여자대학교 차미리사기념관

위치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1925년 근화학원 전경.

서울의 독립운동을 만나는 새로운 공간

문화공간 이육사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를 기념하고 지역문화를 가꾸는 복합 문화시설. 이육사와 성북구의 역사를 소개하는 청포도 라운지를 비롯해 전시실까지 총 3층으로 구성되었다. 3월 21일까지 개관 특별전 <식민지에서 길을 잃다, 문학으로 길을 찾다>를 연다.

주소 성북구 종암로21가길 36-1
문의 02-928-0264

독립운동가의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를 옥바라지했던 가족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를 기억하는 작은 전시 공간. 전시실 A동은 독립운동가 가족의 이야기를, B동은 일제강점기 무악재의 모습과 삶의 흔적을 되새겨보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주소 서대문구 통일로 251(서대문형무소역사관 맞은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 앞)
운영 시간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매주 월·일요일과 법정공휴일 휴관, 삼일절·광복절 개관)

※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 휴관 중입니다 . 방문 시 다산콜센터 120으로 확인하세요.

황혜민 사진제공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청, 동아일보,서대문형무소역사관, 조선민족대동단기념사업회, 덕성100년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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