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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틈에 새겨진 건축 이야기

기획 · 서울미래유산

돌 틈에 새겨진 건축 이야기
2020.03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자리하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서울의 미래유산 건축물.

세월의 흔적과 건축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오래된 근대건축물은 단순히 ‘건물’의 의미를 넘어 도시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지난해 서울시가 새롭게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 건축물들 역시 건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근대건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학로의 공공일호(구 샘터 사옥)는 한국 건축사의 주춧돌 역할을 한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의 1970년대 작품이다. 그보다도 앞선 1950년대에 지은 용산제일교회 교회동과 환일고등학교 십자관은 해방 직후 건축양식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이들 건축물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 도시관리분과 위원장 안창모 교수와 구가도시건축 대표 조정구 건축가, 두 전문가의 시선을 따라가보았다.

서울미래유산

서울시는 미래 세대에 전할 가치가 있는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발굴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하고, 보전을 지원해오고 있다.
서울미래유산은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고루 수렴해 조사와 심의를 거쳐 선정한다.

환일고등학교 십자관

돌로 쌓아 올린 배움터

환일고등학교 십자관은 1957년에 철근콘크리트와 석조를 병용해 지은 학교 건축물로, 현재까지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건물 전후면의 중앙 부분이 돌출되어 있는데, 돌출부의 1층 전면부에는 볼록 곡선과 오목 곡선이 조합된 곡선 형태의 ‘오지 아치형’ 출입구가 위치한다. 그위에는 벽보다 돌출된 형태의 내닫이창(베이 윈도)이 보인다. 건물 내부는 학생들의 쾌적한 학습 환경을 위해 모두 리모델링했지만, 외형은 그대로 보존해 세월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

주소 중구 환일길 47

안창모 교수에게 듣다

“환일고등학교 십자관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전재(戰災) 복구가 한창이던 시기에 만리재 언덕을 깎은 터에 세워졌습니다. 그 시절 철근콘크리트에 돌로 마감한 고등학교 교사가 얼마나 대단한 건물이었을지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동네의 휑한 언덕 위에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나 있음 직한 석조건축물이 우뚝 섰으니 말이죠. 어려운 시기에도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를 키워내기 위해 돌을 하나하나 쌓아서 만든 건물이 바로 십자관입니다.”

볼록 곡선과 오목 곡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오지 아치형 출입구.

공공일호(구 샘터 사옥)

대학로의 붉은 랜드마크

공공일호는 1979년 한국 근대건축의 개척자인 김수근이 설계한 구 샘터 사옥으로, 오랜 세월 대학로를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자리해왔다. 세 방향으로 뚫려 있는 건물의 1층은 앞뒤 길을 연결하며 도시와 호흡하도록 설계됐다. 2012년에 5·6층을 증축하고, 2018년에 리모델링하며 공공일호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건물의 새 주인인 공공그라운드는 공간의 외형과 역사를 보존해 미래 세대를 위한 실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1984년에 개관한 대학로 최초의 민간 소극장인 ‘파랑새극장’도 건물의 지하층에서 여전히 운영 중이다.

주소 종로구 대학로 116

조정구 건축가에게 듣다

“구 샘터 사옥은 김수근 선생이 이전에 지은 구 공간 사옥과 형제처럼 비슷하면서도 서로 달라서 흥미롭습니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곳에 위치한 공간 사옥과 달리 많은 이가 오가는 대학로의 건물 안에 길을 끌어들여 도시가 펼쳐지는 느낌을 주는 것이 이 건물의 큰 매력입니다. 1층 마당은 지금까지 대학로를 오가는 많은 사람의 지름길이자 휴식 공간이 되고 있죠. 건물 천장은 작은 보를 촘촘히 넣은 와플 모양의 ‘격자보 형식’을 취했는데, 각 층의 높이를 최대한 줄여 4층으로 만들기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위부터) 건물의 1층은 대학로를 오가는 시민들을 위해 길과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천장은 작은 보를 촘촘히 넣은 와플 모양의 ‘격자보 형식’을 취했다.

용산제일교회 교회동

마을을 감싸 안은 석조 교회

용산제일교회 교회동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에 지은 석조건축물로, 당시의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흔치 않은 건물이다. 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해 전소한 것을 목사와 교인들이 미군부대로부터 건축자재 등을 원조받아 재건했다. 크고 작은 돌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모습이 단아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원래는 이웃한 도원동교회와 하나였는데, 교파가 달라진 후에도 두 교회가 함께 성전 공간을 잘 지켜온 점에서도 공간사적 가치가 있다.

주소 용산구 새창로12길 11-18

조정구 건축가에게 듣다

“나지막한 집들이 모인 주거지 가운데에 아담한 교회가 잘 어우러져 있어 60여 년 역사의 건축적 가치만큼이나 동네 사람들과 두터운 관계를 맺어온 ‘좋은 건축이자 공간’으로 보입니다. 길보다 올라온 북사면 땅에 교회 앞마당을 두어 길에서 보면 2층, 마당에서 보면 1층이죠. 돌쌓기의 방식을 보면 돌을 45도 각도로 빗놓아 마름모 모양으로 쌓는 견치석 축대 쌓기와 비슷한 방식이고, 돌벽의 양쪽은 바르게 쌓기로 모양을 잡았습니다. 돌과 돌 사이는 내민 줄눈 미장으로 단정하게 마감했는데, 이는 베테랑 미장공이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작업해야 하는 건축 기법입니다.”

돌과 돌 사이는 내민 줄눈 미장으로 단정하게 마감했다.

전하영, 안창모, 조정구 사진 인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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