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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서울 트렌드

도시 남녀를 뒤흔든 트로트 열풍
2020.03

‘뽕짝’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던 트로트가 남녀노소,
세대를 초월하는 인기에 힘입어 방송가 대세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류빈 씨는 직장인이다. 아침에는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출근하지만, 밤에는 스팽글 재킷에 머플러를 두르고 이색 직장으로 출근한다. 매일 남모르게 변신하는 그는 트로트 가수다. 평소 취미로 즐겨오던 트로트 부르기가 제2의 직업이 된 것은 3년 전부터다. 그는 2016년 전국트로트가요제에 출전해 대상을 받았고, 2017년부터 정식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멋진 트로트로 <가요무대>를 장식하는 것이 꿈인 류빈 씨에게 트로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지난해 종영한 <내일은 미스트롯>부터 최근 인기리에 방송 중인 <내일은 미스터트롯>까지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주목할 만한 점은 노년층 못지않게 젊은 층에서도 그 인기가 뜨겁다는 것이다. 단순한 붐을 넘어 신드롬이라 부를 만한 트로트의 인기,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그 거센 열풍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세계의 문화가 우리 정서와 어우러져 탄생한 장르

‘한물간 취향’으로 취급받던 트로트에 사람들이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전반적으로 매끈하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찾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최근 문화계 전반에 부는 레트로 열풍 덕분에 트로트에 대한 진입장벽이 대폭 낮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최근의 트로트 열풍에는 버라이어티한 측면이 있다. 옛날의 감성을 오늘날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게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찍이 트로트의 인기를 경험한 세대는 흘러간 옛것에 대한 그리움에서 트로트가 반갑고,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그 나름대로 ‘신선한’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디지털적인 매끈함은 서사의 깊이가 느껴지기 어려운 반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르에는 그 시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도 색다르다.

반복적인 리듬과 남도 민요의 영향을 받은 ‘떠는 창법’을 특징으로 하는 트로트는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미국의 춤곡 ‘폭스트로트(Foxtrot)’에서 유래했다.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그리고 유럽 국가의 다양한 음악이 혼합되어 지금의 트로트가 탄생했다. 트로트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오면서 민족 정서인 ‘한’과 ‘흥’을 동시에 담게 되었다. 유구한 세월동안 변치 않고 유지되어온 트로트의 ‘정서’가 옛것이 그립고 흘러간 것이 아련한 지금, 모두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레트로 즐기는 중장년, 뉴트로 즐기는 젊은 층

지난 1월부터 음원 서비스 지니뮤직에 트로트 차트가 새롭게 개설될 만큼 그야말로 트로트는 소수를 위한 장르음악이 아닌, 모두를 위한 대중음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니뮤직이 최근 분석한 조사에 따르면 트로트의 인기는 1년 새 5.8배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장년층에 머물렀던 트로트의 인기가 전 연령층으로 확대되면서 트로트 장르 음원 소비가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뮤지션들의 활동과 트렌드를 반영한 곡으로 트로트 장르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진 데 따른 현상이다.

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최근 가수 김연자가 부른 ‘쑥덕쿵’이란 노래에 애니메이션 <헬로카봇>에 등장하는 토끼 캐릭터를 더해 만든 뮤직비디오가 ‘김연자 TV’ 채널에서 164만 회, ‘원더케이(1theK)’ 채널에서 25만 회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이용한 뮤직비디오가 전통적으로 트로트와 거리가 먼 세대인 어린이 시청자마저 사로잡은 것이다. 중장년층의 사랑을 확보하며 비롯된 트로트 열풍은 강력한 전염성을 자랑하며 1020세대에까지 전파됐다. 여기에는 MBC <놀면 뭐하니?>에서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신한 유재석도 기여한 바가 크다. 여전히 예능계를 이끌어가는 유재석의 변신은 젊은 층으로부터 ‘재미있다’는 호응을 이끌어냈다.

가수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를 작곡하고, <내일은 미스트롯>과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는 작곡가 조영수는 “<내일은 미스터트롯> 최종 우승자에게 작곡을 선물해주게 되는데, 시청자들에게도 이같은 트로트 열풍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류빈 씨도 “공연장에서 젊은 세대를 찾아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며 “트로트는 4분의 4박자 곡으로 누구나 부르기 쉽고, 가사 속에 우리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지금의 인기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재미’와 ‘웃음’, ‘공감’이 세대를 초월한 화두인 이 시대에 트로트만큼 모든 요소를 충족하는 콘텐츠는 없다는 평가다.

류빈(회사원 겸 트로트 가수)

“트로트가 열어준 두 번째 인생!”

아버지가 힘겹게 농사를 지으며 저희 남매를 키우셨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고단한 노동과 힘든 삶의 애환을 달래셨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다 저도 모르게 그런 노래를 부르는 꿈을 꾸게 된 것 같아요.

동요부터 뮤지컬까지, 문화로 자리 잡은 트로트

트로트를 비롯해 그리운 옛 시절의 것을 찾는 우리 사회의 복고 열풍은 문화예술계를 넘어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설에는 1980∼1990년대에 각광받은 젓갈, 전통차, 커피, 햄, 식용유 선물 세트 등이 큰 폭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건강식품, 와인, 프리미엄 상품 등 ‘럭셔리’를 찾던 2000년대 이후의 열풍과는 사뭇 대조되는 부분이다. 복고 열풍은 ‘힙지로’로 거듭난 을지로의 노포와 구한말 경성 분위기의 카페, 경양식집을 찾는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트렌드로 나타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외면 받았던 모나카, 양갱, 곶감 등 ‘아재 상품’의 판매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중장년층이 향수로 복고풍을 찾는다면, 젊은 층은 호기심과 동경심에서 복고풍에 호감을 드러낸다. 트로트 열풍은 이렇듯 레트로와 뉴트로의 결합이 빚은 산물로도 볼 수 있다.

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모두 아우르며 트로트는 이제 동요나 뮤지컬, 대학가 버스킹으로 무대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젊은 관객을 만나는 트로트 뮤지컬이나 아이돌이 출연하는 중장년층 겨냥의 트로트 콘서트, 지난해 각박한 서민 생활에 흥겨운 활력소가 되어준 트로트 열풍은 당분간 식지 않을 전망이다. 신드롬을 넘어 세대를 초월한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한 트로트는 올해도 순풍에 돛 달고 기분 좋은 순항을 이어나가고 있다.

트로트를 부르는 서울, 추억의 장소

© 정원균

돈의문박물관마을

1960~1970년대 이발소를 재현한 삼거리 이용원부터 1960~1980년대 영화를 볼 수 있는 새문안극장까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공간이 가득하다. 1980년대 결혼식장 콘셉트로 조성한 서대문사진관에서 ‘타임캡슐을 탄’ 가족사진을 남겨보자.

주소 종로구 신문로2가 7-24
연락처 02-739-6994
홈페이지 dmvillage.info

낙원동악기상가

어디선가 끈적거리는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악기 상가. 피아노, 바이올린 등 클래식한 악기부터 기타, 색소폰, 드럼 등 트로트 연주에 잘 어울리는 악기까지 두루 만날 수 있다. 오래된 악보를 판매 하는 곳도 있으니 트로트 18번 곡 악보를 찾아볼 것!

주소 종로구 삼일대로 428
연락처 1599-1968
홈페이지 enakwon.com

서울풍물시장

손때 묻은 물건부터 추억의 먹거리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곳. 1960~1970년대 서울의 상점가를 재현한 청춘1번가부터 골동품 상점까지 진귀한 볼거리들이 눈길을 끈다. 시대의 흔적을 살피다 보면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층까지 취향을 ‘저격’당한다.

주소 동대문구 천호대로4길 21
연락처 02-2232-3367
홈페이지 pungmul.or.kr

© 장성용

다시·세운

‘다시·세운’으로 옷을 갈아입은 1970년대 전자산업의 메카, 세운상가. 세운전자박물관에서 옛 세운상가의 추억에 젖어보고, 수리수리 청음실에서 오래된 LP판을 감상해보자. 메마른 도시 감성이 촉촉한 레트로 감성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주소 종로구 청계천로 159
연락처 02-2273-5505
홈페이지 sewoon.org

임지영 사진 인성욱 일러스트 한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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