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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미식이야기 서울 성장의 동반자 서울 기사식당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미식 이야기
서울 성장의 동반자, 서울 기사식당
2019.12

 

박찬일의 미식 이야기 서울 성장의 동반자, 서울 기사식당

이름도 예쁜 꽃담황토색의 서울 택시를 몰고 어김없이 기사식당으로 향하는
택시 기사 덕분에 서울은 오늘도 쉼 없이 달린다.



서울 인구는 1990년에 이미 1000만 명을 넘었다. 1977년에는 750만 명, 1980년에는 835만 명이었다. 1000만 명에 약간 미달하는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대중교통은 열악했다. 1974년에 시청과 청량리를 잇는 지하철이 개통되고, 이후 2·3·4호선이 건설되었지만 엄청나게 움직이는 서울과 수도권 시민의 활동량을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그러다 보니 택시가 대중교통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1977년도 택시 수는 2만4000대. 대중교통은 부족하고 인구는 많았다. 택시에 과부하가 걸렸다. 하루에 400~500km를 달리는 기사가 흔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쉬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기사식당이라는 매우 한국적인 식당 문화는 그렇게 싹텄다.

택시 기사는 별다른 대중 미디어가 없던 당시, 중요한 여론 전달자였다. 그들이 다니는 기사식당이 이른바 맛집으 로 소문나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중·후반 이후다. 기사들은 서울 구석구석의 맛있는 식당 정보를 공유하면서 찾 아다녔다. 이들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그런 식당이 소개되었다. 이렇게 ‘기사식당=맛있는 식당’이라는 등식이 성립 되었고,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기사식당, 원조 위에 맛집

서울 기사식당의 원조 격은 ‘성북동돼지갈비집’이다. 식당을 연 것이 1970년이고, 1973년부터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는 게 창업주의 기억이다. 하루 종일 서울을 달린 기사들은 당시 한적한 성북동에서 차를 대고 밥을 먹었다. 처음에는 일반 백반이었고, 나중에 돼지갈비가 생겨났다. 한 끼 식사라도 영양가 있고 푸짐하게 먹고자 하는 기사들의 기호에 맞추어서 대박을 쳤다.

기사식당은 몇 가지 전제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혼자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기사는 혼자 다니므로 당연한 이야기다. 둘째, 고기는 원래 2인분 이상 파는 게 식당의 불문율이지만 기사식당은 예외여야 한다. 셋째, 기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이야 인터넷과 교통방송이 있지만 과거에는 도로 사정이나 심지어 교통 단속이 이루어지는 포인트에 대한 정보가 기사식당에서 흘러 다녔다. 개인택시 매매 흥정이나 스페어 기사 모집 같은 택시 기사만의 정보도 유통되었다. 무엇보다 편안하게 한 끼 먹고, 필요한 물품을 사거나 세차 등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기사식당이었다(불법 세차 서비스 등은 법령 강화 등으로 지금은 금지되었다).

서울 기사식당1

기사식당은 몇 가지 전제 조건을 갖춰야 한다.
고기도 혼자서 먹을 수 있도록 1인분 주문이 가능해야 하고,
기사들의 정보 교환이나 주차가 보장되는 사랑방 역할을 해야 한다.


백반이냐 돈가스냐, 오늘의 메뉴는?

성북동은 전통적으로 강북의 핵심 기사식당 권역이다. 돼지갈비를 파는 집으로 유명한 곳이 두 집 있고, 돈가스를 파는 곳도 서너 집이 널리 이름을 알렸다. 기사식당의 돈가스는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 보다는 크고 넓은 이른바 ‘A4 돈가스’가 기사식당에서 탄생했다. 얇게 편 등심이라 시간에 쫓기는 기사들에게 빨리 튀겨서 제공할 수 있었다. 여기에 돈가스와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쌈장과 풋고추(또는 청양고추), 김치를 함께 내어 환영받았다. 대부분 30대 이상의 남자인 기사들의 기호에 맞춘 결과였다. 어떤 이는 양식과 한식의 이런 절충 서비스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기사들의 기호에 잘 맞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한국인은 매운 음식을 자주 찾는데, 양식처럼 나오는돈가스에 매운 고추와 김치 등을 추가로 제공하는 게 호응을 얻었을 것이다.

돈가스는 남산 일대에서도 기사식당의 주 메뉴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남산은 빌딩 집합지가 아니고 도로가 비교적 한산한 시간대가 많아 기사식당이 자리 잡기 유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경치 좋은 남산이란 특수성으로 데이트족 등 일반인도 많이 찾는 기사식당 아닌 기사식당이 되었다. 양이 많고 튀김 기술이 좋다고 소문나 있다.

서울의 기사식당 ‘타운’ 가운데 중요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 서부 지역은 연남동과 대흥동, 동부 지역은 자양동과 건대 쪽이다. 모두 과거에 토지 비용이 낮아서 밥값이 싸면서도 푸짐하게 제공할 수 있었으며, 주차장을 적절히 운영하기 좋은 곳이었다. 연남동은 돼지불백을 파는 ‘감나무집 기사식당’이 20여 년부터 인기를 끌었고, 인근의 순댓국집 등도 기사식당으로 크게 손님을 모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경성고등학교 앞의 속칭 생선구이 기사식당도 유명하다. 그때그때 물 좋은 생선을 구워내고, 함께 주는 반찬도 맛있다. 상호가 비슷한 집이 두 곳 붙어 있는데, 인기는 막상막하다. 모두 주거 지역과 가까워서 일반 손님이 자주 찾는 집이기도 하다.

서강대학교 후문에서 대흥동 사거리로 이어지는 ‘대흥동 기사식당 동네’도 빼놓을 수 없다. 백반, 칼국수, 육개장 등 취급하는 주 종목이 다른 집들이 연이어 있다. 이곳도 역시 주차 서비스가 좋고, 밥값이 싸며, 양이 푸짐한 전형적인 기사식당들이다. 서울에서도 특히 밥값이 아주 싸고, 맛있고, 양이 푸짐하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아시아스낵카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영동스낵카 전경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아시아스낵카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영동스낵카 전경.


강남 식당의 불문율을 깬 기사식당

강남이 성장하면서 강남에도 기사식당이 속속 생겨났다. 강북보다는 늦었지만, 인구 집중도가 높아지고 택시 운행량이 늘면서 기사식당의 인기도 치솟았다. 한티역 8번 출구 앞에는 버스로 만든 ‘영동스낵카’가 명물이었다. 버스에서 국수 같은 분식을 파는 집들이 1970년대에 서울에 생겼는데, 이 가게는 그 시절의 맥을 잇고 있다. 2015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버스를 벗어나 인근 건물로 입주했다. 그래도 이름은 여전히 스낵카다. 실내로 들어간 합법적인 포장마차가 ‘실내포차’가 되었듯이. 음식값도 강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싸다. 역삼동에는 북어찜을 파는 집이 인기가 있었는데, 이 가게는 특이하게도 주차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거의 일반인용 식당으로 전업되었지만, 오래전 단골 기사들은 여전히 어떻게든 주차를 하고 식사를한다. 기사식당은 시간에 쫓기는 택시 기사들이 주 손님이고, 주차 문제 때문에 밥을 빨리 제공하는 불문율이 있다. 5분 안에 음식을 내고 기사들도 대체로 식사 속도가 빠르다. 교통 정체와 오랜 주행 시간 등으로 기사들은 성격이 예민해져 있는데, 식사 속도까지 빨라서 위장병을 앓는 사람이 많았다. 한 기사식당 주인은 “많은 기사가 위장약을 달고 살았다”고 증언한다. 속도전을 벌이고 사느라 속 편한 날이 없던 과거 서울 택시 기사들의 애환이 기사식당에서 자주 목격되었던 것이다.

과거 기사식당에는 숨은 서비스가 있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잦아지자 기사들에게만 요금을 슬쩍 할인해주었다는 것. 기사들은 아무래도 단골이 많고, 밥값에 민감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쨌든 이제 기사식 당은 기사만의 밥집이 아니다.

한때 소설가 이호철은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을 냈다. 이 소설에도 잘 묘사돼 있지만 서울은 엄청난 인구 집중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들이 매일 바삐 움직여 벌어먹고 살던 메트로 서울의 모세혈관은 결국 대중교통이었다. 그 혈맥의 중심이 오랫동안 택시였고, 기사식당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설사 기사가 전혀 오지 않을 때가 오더라도 기사식당은 살아남을 것이다. 이미 서울시민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군침을 흘리니까.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서울에서 기사식당 즐기기

오늘 점심, 당신의 선택은?

기사식당 객관식 문제 #TMI



영동스낵카

 


영동스낵카


후루룩~ 뜨끈한 우동
기아자동차의 전신 아시아자동차에서 딱 13대 출고한 ‘아시아분식차’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86 아시안게임부터 시작해 33년째 택시 기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주차장에 들어서면 택시로 가득한 장관이 펼쳐진다. 스낵카 옆으로 깔끔한 식당이 자리하며, 간단한 분식은 물론 한 끼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정식이 주를 이룬다 .
가격 우동 4000원, 북어찜 7000원
주소 강남구 선릉로 301
시간 24시간
문의 02-558-5469

 


원조남산왕돈까스

 


원조남산왕돈까스


오늘은 칼질해야지, 돈가스
남산 케이블카를 기준으로 ‘돈가스 거리’를 만든 원조 격. 1977년부터 영업을 했으니 40년 동안 서울시민의 특별한 외식 코스 대명사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계로에서 남산로를 향해 오르다 첫 번째 만나는 집으로, 돈가스는 커다란 접시를 가득 채울 정도로 크고 바삭하며, 소스를 듬뿍 얹어 내온다. 주문하자마자 제공하는 크림수프 역시 남산 돈가스의 특징. 함께 나오는 고추와 깍두기는 화룡점정이다.
가격 왕돈가스 1만500원, 생선가스 1만1500원
주소 중구 소파로 107
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문의 02-755-3370

 


감나무집기사식당

 


감나무집기사식당


상추쌈까지 야무지게, 불백
주차가 어려운 연남동에서도 자체 주차장을 운영하는 이곳은 택시 기사뿐 아니라 20~30대 일반 손님도 많다. 은은한 숯불 향을 입은 간장 양념의 돼지불백을 주문하면 미니 잔치국수와 달걀부침, 국과 반찬 등 10개 남짓한 접시가 한 상 가득 나온다. 상추에 밥과 불고기를 올리고 마늘과 쌈장을 듬뿍 올려 먹다 보면 든든해진다.
가격 돼지불백 9000원, 양념게장 1만2000원
주소 마포구 연남로 25
시간 24시간
문의 02-325-8727

 


원조기사님분식

 


원조기사님분식


영혼이 담긴 한 그릇, 짜장면
오래된 세월의 흔적은 있지만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는 오픈형 주방과 작고 아담한 식당 내부는 바쁜 기사님들의 출출한 한 끼를 책임지는 기사식당 그 자체다. 주문 즉시 기계로 면을 뽑아내고, 끓는 물에 삶아 짜장 소스를 듬뿍 얹어주는 것이 이곳의 스타일. 튀기듯이 익힌 달걀부침은 입맛을 돋우며, 짜장면과 짜장밥이 만난 짜면밥이 일등 메뉴다. 혼밥을 하기에도 손색없는 곳. 주차는 셀프이기 때문에 일반 손님은 대중교통 이용을 권한다.
가격 짜면밥 5000원, 짜장면 4000원
주소 마포구 대흥동 139-6
시간 오전 9시~다음 날 오전 4시
문의 02-706-7825

 


박찬일 추천! #기사식당대표선수 #송림식당



송림식당1

송림식당2

청담대교 근처, 지하철 7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건대입구역 사거리를 살짝 벗어나면 한적해 보이는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높다란 주차 타워가 시선을 끈다. 승차하고 있던 택시 기사님에게 ‘송림’을 이야기하니 단번에 식당앞에 내려준다. 이곳의 돼지불고기백반은 국물이 있는 양념 고기를 두꺼운 철판에 올려 낸다. 식탁마다 마련된 화구에 올려 즉석에서 볶아 먹는 것. 철판이 달궈지면 장관이 펼쳐진다. 식탁마다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신만의 방법대로 함께 나온 상추와 김치, 반찬을 잘게 썰어 고기와 함께 볶고, 밥을 넣고 고추장까지 취향대로 넣어 푸짐한 ‘철판불백볶음밥’을 완성한다. 식당 한쪽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선짓국 또한 일품이니 놓치지 말자. 1층은 주로 바쁜 택시 기사들이, 2층은 일반 손님이 차지한다
가격 돼지불고기백반 8000원, 김치찌개 6500원
주소 광진구 자양번영로 79
시간 오전 6시~오후 11시
문의 02-457-5473


홍정남 기사님

홍정남 기사님
“예전에 택시 회사에 다닐 때부터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지금까지 거의 30년 동안 이곳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찾고 있어요. 주차 타워가 있어서 마음편하게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어 좋아요. 맛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인심도 좋고, 뜨끈하게 불백한 판 볶아 먹고 나면 일이 끝날 때까지 든든해요.”




박찬일취재 김시웅사진 장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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