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기록원,
기억의 문을 열다
당신의 말 한마디가 서울의 기록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곳,
누구나 기록가가 될 수 있음을 응원해주는 곳, 바로 서울기록원이다.
서울광장 세월호 추모 기록(위의 사진) 서울광장에서 수집한 세월호 추모 기록을 모아놓은 모습. 기록물 대부분은 서울기록원 3층에 보관하고 있으며, 일부는 서울도서관 3층 서울기록문화관 내 세월호 참사 기억 공간에 전시 중이다. 8만3000여 개의 추모 리본, 450여 개의 추모 종이배, 1만2900여 장의 추모 글, 수백여 점의 그림과 문서 등이 보관돼 있다.
서울의 기억을 보관하는 숲
서울기록원이라니, 팔만대장경을 품고 있는 해인사와 <조선왕조실록>이 있는 서울대 규장각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겸허해진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서울기록원은 엄청난 문화적 자산이나 기록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울기록원은 서울의 기록물을 보존하는 저장소이자, 기록이 지닌 역사성과 현재성을 전하는 전시장이며, 시민들의 기록을 나누는 공유지 역할을 하기 위해 탄생했다. 서울시 행정의 결과물인 ‘공공 기록’부터 시민들이 함께 공유하는 사회적 기억인 ‘시민 기록’까지 총망라한다. 여기에 다양한 기록물을 모아서 분류하고, 맥락에 따라 전시해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 모두 서울기록원의 역할이다.
서울기록원이 정식 개원한 것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사실 서울의 기록을 수집하려는 노력은 2013년부터 시작됐다. 서울기록원을 건립하기 위해 시의회 투자 심사에 통과해야 했고, 일명 ‘금싸라기 땅’에 문서 창고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지역민들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완공된 건물이 기록원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는지 온습도 조절, 공기 정화, 방폭 ·방진 설비 등을 검사하는 데에도
6개월이 소요됐다. 그 결과 지금의 서울기록원이 개원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서울기록원이 무슨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알리는 활동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기록이 기억하는 우리의 모든 순간
지금까지 서울의 기록물은 서울시청 본관과 서소문별관,경북 청도의 서울시 문서고 총 세 곳에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경북 청도에 있는 11만여 권의 기록물 이전을 시작으로 올해 총 21만 권의 기록물이 서울기록원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이관된 기록물은 고도의 분류 작업을 거쳐 시민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록열람실을 통해 서비스할 것이다.
현재 서울기록원에서는 네 가지 기획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중 9월까지만 열리는 <기록의 발굴 – 일본군 ‘위안부’ 기록> 전시를 제외하곤 상시 관람이 가능하다. 당분간은 기록물 이관에 모든 집중력을 동원해야 하는 터라 다른 특별전이나 별도의 프로그램은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원활한 전시 관람을 위해 진행 도우미가 상주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도슨트 서비스도 운영한다고 하니 조
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울기록원을 방문해보자.
기억은 기록해두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야속한 존재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이런 점은 서울기록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당신이 찍는 그 사진, 남긴 메모, 저장한 파일, 끼적인 그림, 그리고 당신이 서 있는 서울의 공간, 그 모든 것이 서울의 소중한 기억이다.
서울기록원
서울혁신파크란?
서울기록원이 소재한 서울혁신파크는 시민이 공동의 참여자가 되어 일상의 혁신을 일궈내는 사회 혁신 플랫폼이다.서울 청년허브,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입주한 미래청과 50대 이상 시니어를 위한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기록원이 품은 특별한 기록유산
다양한 사람들과 수많은 단체의 협조를 통해 서울의 기록을 모으고자 노력하는 서울기록원은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욱 무궁무진한 곳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지금 진행 중인 네 가지 테마의 <기억의 힘> 전시 먼저 세심하게 살펴봤다<./p>
목동 신시가지 개발 기록
기록의 발견
목동 신시가지 개발 기록은 닫힌 창고에 있던 공공기록물이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전시다. 서울기록원은 목동 신시가지 개발 관련 행정 문서, 도면, 사진, 박물 등을 최초로 시민에게 공개해 현재의 목동이 어떻게 구상되고 형성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목동 열병합발 전소 창고에 쌓여 있던 종이 더미가 어떤 절차를 거쳐 기록물로 시민을 만나게 되었는지, 1980년대 최초의 공영 개발인 목동 신시가지 개발 사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났는 지를 살펴볼 수 있으며, 기록물에 담겨 있는 서울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둔촌주공아파트 주민 기록
기록의 발현
<기록의 발현 – 주공아파트 주민 기록>은 1980년대 서울과 인근 도심에 지어진 옛 주공아파트의 기록을 담은 전시다. 이미 재건축되었거나 재건축을 앞둔 둔촌, 개포, 고덕,과천 등에 있던 주공아파트에 대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기록 활동을 모아 조성했다. 많은 주공아파트 기록 사업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다. 몇몇 단체와 개인이 제각기 갖고 있던 둔촌주공아파트의 기억을 소환해 출판물로 만들거나, 빈 아파트에서 기록물로서 가치가 있는 물건을 직접 수집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 역할을 한 단체 ‘마을에숨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자로 숨을 둔(遁), 마을 촌(村)을 써서 ‘숨은 마을’이라고 풀이되는 둔촌동에서 따온 것. 특히 본 전시장에는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둔촌주공아파트의 소리가 담긴 ‘소리 전시물’도 마련돼 있다.
경북 청도 서울시 문서보존소
기록의 발원
경북 청도의 문서보존소에 “서울시의 기록을 지키느라 고생이 참 많았다”는 위로 한마디를 건네주자. 1968년 발생한 일명 ‘김신조 사건’, 1·21 사건을 계기로 1971년 서울에서 보관하던 기록물을 경북 청도로 이관했다. 서울의 특정 기록을 보려면 4시간을 달려 청도까지 가야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제는 청도의 모든 서울시 기록물을 서울기록원으로 이관할 예정이다. 이관된 기록물은 온습도가 철저히 관리되는 서울기록원 내에 자리한 13개 전문 서고에서 관리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기록물을 창 너머 멀리에서만 바라보는 상태이지만, 추후 분류 및 정리 작업을 완료하면 기록 열람실에서 직접 찾아볼 수도 있으니 머지않은 그날을 기대해보자.
일본군 위안부 기록
기록의 발굴
일본군 ‘위안부’ 기록이라고 하면 고(故) 박영심 할머니가 젊은 시절 임신한 채로 언덕 즈음에 기대고 있는 흑백사진이 바로 떠오른다. 그 사진을 비롯한 국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의 상당수는 서울대학교 정진성 연구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해온 것이다. 사실 2015년에는 연구가 중단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 해결됐다고 공표 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연구프로젝트의 지원을 중단했고, 정진성 연구팀 또한 프로젝트 진행에 적신호가 켜졌다. 다행히 서울시의 특별 예산으로 해당 연구는 2018년까지 계속할 수 있었고, 그렇게 발굴·연구한 기록은 서울기록원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기록원은 이를 통해 기록 발굴과 이렇게 모은 기록을 통합적으로 관리·공유하는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전하고자 한다.
글 이선사진장성용사진 제공서울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