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및 건너띄기 링크
주 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하단으로 바로가기

붉은 벽돌집, 딜쿠샤의 비밀

붉은 벽돌집, 딜쿠샤의 비밀>
2019.03

문화

역사 산책

3·1운동 100주년 ① 이방인의 눈에 비친 3·1운동

붉은 벽돌집, 딜쿠샤의 비밀

아이콘

붉은 벽돌집,딜쿠샤의 비밀

비밀낯선 이방인이었지만 25년간 조선에 머물며 서울과 한국을 사랑한
테일러 부부의 가옥과 행적은 우리에게 역사의 교훈을 전한다.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딜쿠샤(Dilkusha)는 ‘귀신의 집’으로 불릴 만큼 사람의 발길이 끊긴 수수께끼의 공간이었다. 권율 장군의 집터로 추측될 뿐, 발굴 조사 때 나온 ‘Dilkusha 1923’이라는 정초석과 500여 년 수령의 은행나무만이 말없이 이 집의 역사와 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던 이곳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05년 한 학자에 의해 그 비밀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딜쿠샤. 놀랍게도 이 집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돕고 국내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한 앨버트 W. 테일러와 메리 L. 테일러 부부가 거주하던 가옥이었다.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은 1919년 2월, 앨버트 테일러가 미국 통신원 자격으로 고종의 국장을 촬영하고 3·1운동 관련 기사를 작성해 국외에 알린 ‘양심적인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1919년 2월 28일, 그는 아내가 자녀(브루스 T. 테일러)를 출산하기 위해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간호사들이 독립선언서를 침상 밑에 숨기는 것을 목격했다. 이날 때마침 미국 AP통신의 통신원이었던 앨버트 테일러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취재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독립운동에 관한 보도문을 급히 작성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미국으로 전하기 위해 남동생의 구두 뒤축에 기사와 독립선언서를 한 부 숨겨 직접 도쿄로 파견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3·1운동의 진실은 무사히 미국으로 전달되어 <뉴욕타임스> 1919년 3월 13일자에 기사화되었다. 그의 공적은 그뿐만이 아니다. 약 한 달 후인 1919년 4월, 수원 제암리와 전주 지역에서 일본군에 의한 학살 사건이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영국 부영사 등과 동행해 직접 현장에서 사건을 취재하고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군에게 잡힌 손병희 등 독립투사들의 재판을 서양인 최초로 취재했다(동아일보 1920년 7월 13일자).

그러나 가혹한 역사가 이 가족에게도 찾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경성에 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서울에 거주하는 서양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거나 가택에 연금했다. 테일러 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수용소에,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는 가택 연금 후 연행될 위기를 맞았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일본인에 의해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나를 꼭 경성에 묻어주오. 그리운 내 마음의 고향, 내 아버지의 무덤 곁에 영원히 눕고 싶소.”

1929년과 현재의 딜쿠샤 모습.

1929년과 현재의 딜쿠샤 모습.

1929년과 현재의 딜쿠샤 모습.



해방 후 앨버트 테일러는 미군정 통역사에 지원하는 등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다가 1948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73세였다. 메리 테일러는 평소 죽어서라도 한국에 가고 싶다던 남편의 유언에 따라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그의 유해를 운구해왔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했다.

그로부터 71년이 지난 지금, 서양 근대건축 기술을 도입한 서울의 몇 안 되는 서양식 가옥 딜쿠샤는 테일러 부부의 역사뿐 아니라 한 나라의 비운을 간직한 역사적 건물로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시는 정부 소유의 건물이지만 무단 점유로 인해 훼손되었던 딜쿠샤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해 복원 공사에 착수했다. 내·외부 복원 공사를 통해 굴뚝과 지붕, 가옥 뒷부분 등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 일부는 전시 유물을 관리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꾸며 오는 2020년 전시관으로 개관할 예정이다. 한편 서울시는 3·1절 독립운동 유적 답사 프로그램에 딜쿠샤를 답사 코스로 선정하고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3월 1일 딜쿠샤 복원 공사 현장을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을 지닌 딜쿠샤. 수수께끼의 붉은 벽돌집은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또 다른 역사 현장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소중한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 기증 유물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1919년 경성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앨버트 W. 테일러 부부의 아들 브루스 T. 테일러는 딜쿠샤를 떠나온 지 66년 만인 2006년 자신이 태어난 집을 찾았다. 그때 아버지 브루스 테일러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딸 제니퍼 테일러는 2018년 딜쿠샤와 테일러 가문의 자료 유물 1026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서울에 살았던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의 유물 중에는 경성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첩과 편지, 호박 목걸이와 은제 그릇, 태극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현재 기획전시실 B에서 3월 10일까지 기증 유물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를 진행 중이다.

이영란일러스트한성원참고 서적<딜쿠샤와 호박목걸이>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