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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나의 서울
서울 봄의 위로
그래도 봄은 오나 봄
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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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은 오나 봄

서울 봄의 위로





지방 출신인 내게 서울은 즐겨 듣는 라디오 속 오빠들을 볼 수 있는 곳(난 사실 신해철 오빠를 인터뷰하고 싶어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이자 깍쟁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응답하라 1994>에서 삼천포 김성균은 낮에 서울역을 출발해 돌고 돌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간신히 신촌 하숙집에 도착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난 나를 보는 듯했다.

원주 MBC 아나운서로 근무하던 중 계약이 해지되면서 나는 프리랜서의 길에 들어섰다. 31세에 문득 지금 안 가면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예 정리하고 서울에 집을 얻었다. 나의 서울 첫 집은 온실 같았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여름엔 엄청 덥고 겨울엔 엄청 추운 옥탑방이었다. 나는 부산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고, 아나운서가 되려면 마쳐야 한다는 방송 아카데미도 다닐 형편이 못 되었다. 하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시작한 방송 생활과 서울살이는 쉬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방송 초년생 시절, 절망할 때마다 화장실에서 울었다. 자꾸 울 수 없어 힘들 때마다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잇몸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에서 새롭게 시작한 일은 뉴스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이었다. 오전 6시에 시작하는 아침 뉴스를 마치고 나면 남산에서 아침을 먹었다. 라디오를 진행할 때까지 쪽잠을 자거나 커피를 마셨다. 남산의 봄은 좋았다. 햇살 사이로 흩날리는 벚꽃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덧 8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마치고 승진도 했고, 이직도 했고, 그리고 내 이름이 들어간 시사 프로그램을 5년이나 할 수 있었다. 성공이라 말하기엔 초라하지만 내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촌년의 봄에 남산은 큰 위로가 되었다.

마흔이 다 되어 낳은 딸이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올봄, 나는 많이 긴장하고 있다. 꼬불거리던 녀석이 혼자 걸어서 학교에 가고, 자신의 요구를 조목조목 써서 내게 내밀었을 때의 경이로움. 최근에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생명체는 바로 내 딸이다. 딸이 초등학생이 되는 올봄, 나는 온갖 걱정거리에 휩싸였다. 책가방은 뭐로 사야 하는지, 학교가 일찍 끝난다는데 그러면 또 어찌해야 하는지. 돌봄 학교도 신청 후 당첨제라는 소식에 몇 년 전 어린이집을 신청했을 때 앞의 대기자가 900명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1월에는 딸의 손을 잡고 새로 개관한 서울식물원에 다녀왔다. 영하의 날씨에 움츠리고 들어선 커다란 온실은 봄 같았다. 꽃이 피고 싹이 트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꽃과 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딸과 수다를 떨었다. 식물 종류를 검색할 수 있는 앱을 이용해 촬영해보니 이름이 없는 것은 없었다. 딸아이에게 식물 이름을 알려주니 엄마는 척척박사라며 한껏 재미있어했다. 내가 좋아하는 로즈메리와 라벤더 향을 맡으며 딸의 얼굴을 마주하고 “좋다, 그렇지?”를 외치는 순간 행복했다. 딸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올해는 서울식물원을 자주 가보려고 한다.


남산의 봄은 좋았다. 햇살 사이로 흩날리는 벚꽃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덧 8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마치고 승진도 했고, 이직도 했고, 그리고 내 이름이 들어간 시사 프로그램을 5년이나 할 수 있었다. 성공이라 말하기엔 초라하지만 내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얼마 전 방송사를 그만두고 SNS 매체에서 영상 만드는 일을 새로 시작했다. 청년들을 자주 만나는데, 그중에 장래가 유망한 한 조각가는 큰 설치물을 잘 다뤘다. 그러다 손을 다쳐 더 이상 작업이 수월치 않게 되었다. 그는 을지로로 들어와 자신과 같은 작가들이 작품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을 열심히 닦고 있다. 철공소가 가득한 그 길에 버려진 철밥으로 작품을 만들거나 철로 나무를 만들어 세우면서 청춘이 꽃피우기를 고대하고 있다. 싹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데도 그곳에서 열심히 봄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반성했다.

좋아하는 시의 한 구절을 읊어본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게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김종해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 中

새로 맞이하는 서울의 봄, 시의 구절처럼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서울 어딘가에서 꽃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청춘들과 낭만적인 식사를 하러 가야겠다.

서울홍보대사 이언경

서울홍보대사 이언경
똑 부러지는 정치 시사 토크로 유명한 아나운서 이언경.청년들의 멘토로 늘 청춘처럼 살고 있다.


이언경